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0-07-13   1422

[제65호 쓴소리] 매향리 폭격장 폐쇄와 SOFA 전면 개정

대통령님,

먼저 매향리주민대책위 전만규 위원장이 황원탁 외교안보수석과 한 시간쯤 대화한 뒤 결론지어 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쓴소리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는 "다 필요 없다. 진상 조사도, 손해 배상도 필요 없다. 폭격장만 폐쇄시켜라. 미국 이전도 반대다. 그런 폭격장 옆에선 미국 사람도 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매향리에선 "사람 죽이는 게 무슨 안보고, 통일이냐? 폭격장 폐쇄하라!"는 소리가 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불순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요? 결코 아닙니다. 지난 50년 간 미군 폭격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수십 명이고, 난청이나 불면증·신경쇠약·정신착란 같은 병으로 고생하다 자살한 사람도 수십 명입니다.

매향리는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50년입니다, 50년. "일제 때도, 인공 때도 살아봤지만, 목숨 잃지 않았고, 어장 빼앗기지 않았는데, 도와주러 왔다는 미군 때문에 목숨 잃고, 불구자 되고, 황금어장마저 빼앗겼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매향리 주민들의 주장은 너무나 당연하고 당당한 주장이라고 봅니다.

그분들의 한맺힌 삶을 접한 전국 수백 개 시민사회단체가 <매향리폭격장폐쇄 범국민대책위원회>라는 단일 조직을 만들어 뒤늦게나마 돕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국민의 정부'가 가면을 벗더군요.

원천봉쇄는 물론, 할머니·할아버지 가리지 않고 방패로 찍고, 돌로 까고, 군홧발로 짓밟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잘 아실 문정현 신부님이 스무 살짜리 전경들에게 매일 얻어맞으십니다. 시위대를 담밑으로 몰아붙이고 훽훽 소리나게 돌도 던집니다. '다리 몽댕이 부러뜨린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그러는 건 처음 봤습니다.

이마와 머리를 열댓 바늘씩 꿰매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 명씩이고, 두 달 동안 중경상을 입은 사람이 2백 여명입니다. 박정희나 전두환 군사독재 때도 이러지 않았다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오키나와에서 "민중의 안보를 위한 오키나와 국제 포럼"이 열렸습니다. 70여 평화운동가들이 모여 2박3일 꼬박 토론한 끝에, '나고시 헬리포트 건설 중단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첫 번째 요구안으로 정한 결의문과 한미 두 나라 대통령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채택했습니다.

'전만규 위원장 즉각 석방, 매향리 폭격장 즉각 폐쇄, 불평등한 한미 SOFA 전면 개정'이 그 내용입니다. 곧 받아보시게 될 겁니다. 연금 생활하실 때 일본 대표 자격으로 동교동 자택을 찾아뵈었던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박사, 필리핀대학교 월든 벨로 교수와 클린턴 미대통령의 동창생 평화 운동가 조셉 거슨 박사 같은 분들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홍콩에서도 '아시아 센터'가 세계 1백여 나라 평화 운동 단체에 "한미 두 나라 대통령에게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요구하자"라는 내용의 '긴급 제안'을 전자우편으로 보냈습니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주소와 이-메일, 팩스 번호까지 공개했더군요.

지난 5월 유엔 본부에서 열린 "밀레니엄 포럼"에서도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매향리는 이제 세계 평화 운동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눈앞에 두신 분으로서 매향리 때문에 세계 평화운동가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시길 빕니다.

시위대가 폭격장 철조망을 걷어냈다는 보고 받으셨죠? 최종수 신부를 비롯한 14명이 미군 폭격의 표적인 농섬에 들어갔다는 보고는요? 그 때 우리는 미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 한국 국방부에 전화를 걸어 '사람이 있으니 폭격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도 미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폭격과 사격을 계속하더군요. 최 신부는 그 때 정말 죽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고 하고,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사람이 있는 섬에 대고 그렇게 폭격을 해대는 까닭이 뭘까요? 한반도 평화나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서라고요? 택도 없는 소립니다.

단언하건대 무기 판매와 신무기 제조 실험을 위해섭니다. 매향리 폭격장 관리 책임자가 록히드 마틴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 사람은 전 세계 정계에 뇌물을 바치고 무기를 팔다가 일본에서 '록히드 스캔들'을 통해 마각의 일부를 드러냈던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소련이 무너진 뒤 전쟁마저 잘 안 일어나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겁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화 분위기 때문에 남한 무기 판매도 전처럼 쉽지는 않을 테죠. 매향리에서마저 폭격을 못하게 되면 공장 문을 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군수 공장 문 닫지 않게 하려고 매향리 주민을 실험용으로 바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매향리 폭격장을 폐쇄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께서도 록히드의 로비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으실 것입니다.

끝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통일된 뒤에도 주한미군은 주둔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미국이 통일을 방해할까봐 그러시는 거려니 좋게 봐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하세요. 진짜로 그렇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반민주적이거나 머리가 나쁘기로 소문난 역대 대통령 누구도 그런 소린 안 했습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말 안 해도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와 6조에 따라 미군은 '무기한 주둔'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조약의 파기를 통고하고 1년이 지나야 파기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도 '통일 이후'라는 말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그 부분에 대해 입을 다물어 주십시오. 꼭 말씀을 하셔야겠다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SOFA의 유효 기간을 다른 나라들처럼 5년이나 10년으로 고치는 걸 포함해서 전면 개정하겠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고치려는 의지를 보여 주십시오. 미국의 반대 때문에 안 되는지 대통령께서 알아서 기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50년을 참았습니다. 10년 더 못 참겠습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옛 소련이 맺었던 '조-소 군사조약'도 10년이잖습니까? 어느 쪽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5년 자동 연장되지요. 지금 SOFA 개정 협상에서 미국이 오만방자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인종우월주의 때문만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예속적 태도에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통일된 뒤에도 매향리 주민들이 폭격 속에 살아가야 한다면, 그 통일은 누구와 무엇을 위한 통일인가요? 부디 이 쓴소리가 약이 되어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김용한 | 매향리폭격장폐쇄범국민대책위, 불평등한SOFA개정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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