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9-03   884

조선일보, 말 같은 말을 하라

수구언론의 시민단체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 언제나 처럼 조선일보가 아젠다를 세팅하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뒤따르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와중에 어느새 시민단체들은 돈받고 친정부 활동을 하는 관변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뒤질세라 수구적 논조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문화일보도 한술 거든다.

이들 보수신문의 논지는 간단하다.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일부 시민단체의 활동이 친정부적으로 보인다-정부 돈이 흘러들어간 단체들이 참여한 2004년 낙선운동은 친정부적 정치활동의 대표적 사례다”가 이들의 주장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가 속한 참여연대는 정부로부터 일체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넘어가야 겠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일보가 참여연대 특별취재팀을 만들어서 뒤를 파고 또 팠다고 하니, 정부 돈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대문짝만하게 기사화되었을 일이다. 참여연대는 1만5000 여명의 회원이 매달 5000원, 1만 원씩 내는 회비로 운영하고 있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 참여연재 재정상황은 매월 인터넷참여연대(peoplepowre21.org)에 공개된다. ( 참여연대 재정보기>>> )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일하는 참여연대가, 1만5000 회원의 회비로 알뜰살뜰 버티는 참여연대가 정부 돈받고 일하는 관변단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참여연대가 주도한 2004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정부 돈받고 추진한 것이라는 기사제목이 대문짝만하게 나고 총선시민연대에 정부돈이 흘러들어갔느니, 순수성이 어떻게 되었느니 하는 사설이 난무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런데 그 기사 어디에도 참여연대가 정부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없다. 총선시민연대 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한 참여연대를 빼고 자신들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9월 2일자 동아일보 사설이다.

‘2004 총선시민연대라는 이름으로 특정후보 낙선운동에 관여했던 일부 시민단체 조직 중에 정부 예산을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낙선운동 자체에 대한 합법성 시비도 있었지만 정부 돈이 흘러 들어간 운동이라면 낙선한 후보들이 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9월 1일 조선일보는 ‘정부가 시민단체에 돈을 줬다, 돈 받은 단체 중에 총선시민연대 소속단체도 있더라, 이거 문제다’ 라고 했는데, 하루 사이에 동아일보는 거두절미하고 ‘총선시민연대에 정부 돈이 훌러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만, 2004총선연대는 참여연대가 여러 시민단체에 제안해서, 사실 부담스러워하고 머뭇거리는 다수의 시민단체들을 어렵게 설득해서 조직을 꾸리고 낙선운동을 전개했다. 정치개혁운동을 중심사업으로 하는 단체는 참여연대를 제외하고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구나 2000년 낙선운동 일선에 나섰다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같은 환경단체들은 환경단체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회원들로부터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다른 분야의 단체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나도 정치는 여전히 개판이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몰아내야 환경도, 문화도, 언론도, 교육도 나아질 수 있다는 당위에 이들 단체들은 어려움을 각오하고 동참했던 것이다. 4년 전 악몽이 떠올랐겠지만 아무튼 이들 단체들은 참여연대의 주장에 (꾐에?) 동의하고 총선연대에 참여하게 된 셈이다.

2004총선연대에는 329개 단체가 참여했다. 그러나 2000년총선연대에 비해 2004총선연대는 활동력이 그리 높지 않았다. 단체들의 결합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그나마 단체규모별로 10만 원, 30만 원씩 책정되어있던 분담금도 단체별 재정사정이 좋지 못해 다 걷지 못했다.

총선 연대가 3개월간 사용한 전체 재정은 2400만 원 정도이고 이중 각 단체의 분담금으로 들어온 돈이 850만 원, 합숙회의와 행사 등을 하면서 참가비로 거둔 돈이 250만 원, 온라인 시민후원금으로 들어온 돈이 600만원정도, 그래도 부족한 700만원은 생짜로 참여연대가 부채로 떠안았다. 참여연대가 제안하고 주도했으니 어쩔 수 없이 떠안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 돈이 흘러들었다? 재정을 책임진 총선연대 사무처장이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주장이다. 조선일보가 열거했던 단체들, 소위 정부지원을 받은 단체들이 총선연대에 낸 돈 10만원, 30만원이 문제란 말인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 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상근자 급여 주기도 빠듯하다. 연대사업에 10만 원, 30만 원 내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나마 참여연대는 회원들이 꼬박꼬박 내주시는 회비가 있어 상대적으로 숨통이 트여있는 것뿐이다. 시민단체가 무슨 정부 돈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친정부활동 하면서 엄청난 대가를 받는 것처럼 기사를 써대면 정말 시민단체 활동가들 눈물나고 억장 이 무너진다.

다음은 소위 정부의 NGO보조금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만 보면 엄청난 정부지원금(411억)이 시민단체에 쏟아졌고 이들 대부분이 총선연대 참가단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조선일보의 이미지 조작일 뿐이다. 앞면에서 정부지원금 총액 411억 이야기를 대문짝만하게 쓰고 그 다음 면에는 총선연대 단체들 중 정부지원금을 받은 단체들을 열거하니까 마치 그 어마어마한 돈이 이들 단체에 쏟아진 것처럼 보이는 환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를 자세히 보면 총선연대 참가단체들이 지급받은 프로젝트 비용은 11억 원 정도이다 또한 ‘정부 돈 받고 낙선운동’이라는 제목을 보라. 정부 돈을 지원받은 것과 낙선운동에 참여한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이 두 사안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환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관계자들은 ‘사실’을 나열한 것처럼 제목을 뽑았지만, 두 개의 사실이 마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효과에 얼마나 만족했을 지 눈에 선하다.

정부의 NGO보조금이라는 것은 한나라당의 집권기인 김영삼대통령 시절에 현재 한나라당의 김덕룡 원내대표가 정무장관으로 재임하면서 공익적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공공프로젝트를 국민세금으로 지원하기 위해 신설한 제도이다. 관변단체에 대한 재정지원이 너무 문제가 많아서 이를 해결해보겠다고 만든 것이다. 조선일보가 열거하고 있는 시민단체들 상당수는 김영삼정부, 김대중정부 시절에도 비슷한 형태의 공익적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으며 이에 따른 용역사업비를 받았다. 조선일보식 논리라면 이들 단체들은 정부지원금을 받고 김영삼정부시절에는 김영삼정부를 위해, 김대중정부시절에는 김대중정부를 위해, 그리고 드디어 노무현정부에 들어서는 노무현정부를 위해 친정부활동에 앞장서왔다는 것이 된다.

더구나 조선일보가 열거한 단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액수의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는 단체들은 문제를 삼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이들은 용역사업비가 아닌 실질적인 운영비 보조를 받고 있다. 그 가운데는 노무현정권 규탄, 반정부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보수적 단체들도 많다는 사실은 이번 조사에 열과 성을 다했던 조선일보가 더 잘 알 일이다. 사실이 이럴진대 정부의 공공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재정지원을 받은 사실만을 놓고 모두 친정부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논리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수행하고 있는 공공 프로젝트라는 것은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사회통합을 위해 수행하는 공익적 목적의 활동이다. 대부분의 선진국가가 NGO에 대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재정적, 세제적 지원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바로 국가와 공공기관의 역할이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점차 이를 민간이 대체하거나 보완해나가는 것이 현대사회의 국가와 시민사회, NGO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일보가 문제삼은 환경운동연합의 경우 2003년에 행자부의 민간단체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습지와 물새 조사활동’이다. 이 활동을 하겠다고 5000만 원의 프로젝트 비용을 신청해서 ‘공익사업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되었다. 이 공익심사위원회에는 ‘안티낙선운동’ 주창자로 유명한 경실련 전 이석연 변호사도 포함되어 있으며 시민단체 때리기에 전문성이 있는 중앙일보 이창호 전문기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포함된 위원회가 회의를 열어 환경운동연합의 프로젝트에 지원하자고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이 이 돈을 받았다고 낙선운동에 참가했을까? 환경운동연합이 이 돈을 받았으니 썩은 정치인 몰아내는데 입닥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제발 말이 되는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국가가 직접 수행할 수 없는 일들을 시민단체들이 대신 수행하며 재정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해당단체의 계약관계일 뿐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를 놓고 해당단체의 정치적 독립성을 따지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개별단체들의 정치적 활동은 보수단체가 자기의 고유활동에 따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부지원을 받으면서도 반정부활동에 앞장서는 것에서 보듯 전혀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지원 공공프로젝트와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이라는 전혀 별개의 사안을 하나로 묶어 마치 시민단체들이 친정부활동의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있어 국가와 시민사회, NGO의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의 소치이던가 시민단체들을 친정부 관변단체로 덧씌우기 위한 악의적 의도가 꾸며낸 억지논리라고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자다가 날벼락이라고 총선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이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돈받고 친정부활동 하는 단체로 전락했다. 전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분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총선연대에 참여했던 단체들은 그래서 이들 신문사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하고자 한다. 이번만큼은 왜곡보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고 싶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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