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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이야기    종로구 통인동 희망1번지

  • 개혁통신
  • 2000.10.12
  • 762
저는 '비정규노동자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조진원입니다. 단체의 이름이 너무 길지요. 그러나 굳이 이를 다 외우려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분도 안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조직의 성격이 '대책위원회'이고, 목적은 '기본권보장'과 '차별철폐를' 추구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개념중심으로 파악하신다면 한결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대책위원회는 26개 시민·사회·종교단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개혁통신 지난 호를 읽으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 노동 문제는 단순한 노사관계의 문제로 보기에는 사회·경제적 약자인 비정규노동자의 고통이 너무 크고 인권까지 침해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이로부터 발생하는 이러저러한 폐해를 종국에는 사회가 부담(사회적 비용등)하게 된다는 우려 속에서 우리 시민 사회단체들이 하나둘 모여 의논하다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6월26일 발족 이래, 공청회를 거쳐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청원운동과 국민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켐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참여연대의 '개혁통신' 담당자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을 공개적으로 쓰는 데 익숙치 않을 뿐더러, 오랫동안 비정부단체에서 활동해 온 터라 '혹시라도 괜히 처신 잘못해 조직에 누가 되지 않을까' 신경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서민의 애환과 고통이 담긴 글을 읽고 개선된 조치가 취해진다면 하는 데에 이르자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언로(言路)라는 단어가 함께 떠오르면서 말입니다.

먼저 비정규노동자의 규모부터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통계청 발표입니다. 올 7월 현재 임시직이 462만명, 일용직이 248만명으로 비정규노동자는 도합 710만명에 이릅니다. 전체 임금노동자(1,340만명)의 5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험설계사, 경기보조원, 지입차주 등 특수고용관계에 놓인 노동자까지를 포함하게 되면 비정규 노동자는 거의 800만 명에 육박합니다. 우리는 이미 정규노동자보다 비정규노동자 더 많은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래적 의미에서 무엇이 정규이고 무엇이 비정규인지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말에 "허리가 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고용은 유연하다 못해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그런데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한국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맹신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를 사용하는 주된 이유가 저임금, 쉬운 해고, 기업복지에서의 배제, 사회보험 부담금 회피 등일진대, 여기서 한 국가의 경쟁력이 나온다는 말을 과연 화려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 지배하는 21세기에도 믿어야 할까요? 짧게 보면, 기업들은 정규노동을 쓸 때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국가의 경제적 기초가 튼튼해졌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이 논리가 '품질경쟁'보다는 저임금에 바탕을 둔 '가격경쟁'에 익숙한 한국의 기업의 오랜 관행을 옹호해 주는 정책과는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기술개발과 인적자원개발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 하면서 말입니다. 더 이상 싼 인건비와 노동통제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거나 청산해야 할 한계기업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 한국경제의 자화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홈페이지(www.workingvoice.net)에는 하루가 멀다 않고 비정규노동자의 '아우성'이 올라옵니다. 체불임금, 해고, 노조인정 요구, 그리고 심지어는 폭행과 성희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로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메일과 전화를 통한 상담도 줄을 잇습니다. 그나마 노조라도 결성한 사업장의 경우에는 사용자와 싸우면서 대중매체에 기사 한 줄이라도 실리지만, 개별적으로 상담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사용자가 명백히 법을 어겼기에 억울해하면서도 막상 '노동부에 진정하라'고 조언하면 망설입니다. 그놈의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자칫 잘못해서 밥줄이라도 날아가지 않는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정규노동자의 신세입니다. 또 6개월 또는 1년마다 근로계약을 새로이 맺어야 하는 불안감과 고통이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은 3개월마다 근로계약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의 이면입니다.

지금이라도 비정규노동문제에 용단을 내려 주십시오. 정부정책을 다시 수립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비정규노동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을 경우(출산.육아, 질병.부상, 계절적 사업 등)에만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반복해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경우 정규노동자로 간주해야 합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이 조항이 없어 사용자들이 악용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보험모집인·캐디·학습지교사·접대부·지입차주 등 특수고용형태의노동자를 노동자로 규정하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이 독립사업자이지, 실제 수입과 근로조건은 여느 노동자보다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셋째로는, 고용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명시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해야 합니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적 기준이고, 이런 기준과 원칙이 없을 때 형평이 무너지고 분란의 소용돌이에 싸이며, 이를 해결하는 데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4일 경제부처장관회의에서도 비정규노동문제에 대한 대책이 논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정부발의로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라면, 이에 앞서 우리의 절실한 요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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