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1-05-03   893

[제103호 개혁정론] 비정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바랍니다

대통령님,

'비정규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비정규 공대위)' 사무처장 조진원입니다. 개혁통신을 통해 대통령께 두 번째 올리는 글입니다. 그 당시 저는 정부가 비정규노동자 보호를 위해 법개정 발의에 적극 나설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지금까지 실제적인 조치가 취해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작년 10월 노동부는 하나의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즉, 1년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반복 계약하는 비정규노동자를 정규노동자로 간주하는 대신,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금하고 있는 3년기간의 계약직을 허용하는 방안 – 이를 일부에서는 '물타기 안'이라고도 합니다만 – 을 마련했으나, 이마저도 경제부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자 이 사안을 '노사정위'로 넘겨 버렸습니다.

그래도 대통령께서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올 3월 '국민과의 대화' 자리에서 비정규노동자의 보호에 관해 언급하셨기에 그나마 비정규노동자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후 한국 역사상 기업단위로는 최대의 인원(7,000명)이 해고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이 목동전화국을 점거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하였습니다. 벼랑에 몰린 비정규노동자들의 요구와 현실의 변화속도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23개 시민·사회·여성·종교단체들이 비정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게 된 데에는 비정규노동 문제가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느 사안과는 달리, 매우 복잡한 성격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비정규노동 문제는 근대적 차별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1953년 제정된 현행 근로기준법은 전근대적인 남녀차별이나 신분적 차별만을 금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반세기만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봉건적인 제도를 철저하게 청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인도처럼 카스트제도의 전근대적인 굴레를 쓰고 사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끔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사회에는 고용형태를 빌미로 한 근대적 차별이 등장한 것입니다.

둘째, 여성문제입니다.

이미 70%에 육박하는 여성노동자가 비정규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도 딸이 하나 있습니다만, 앞으로 한국의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죄 아닌 죄로 정규직 일자리 근처에 가보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남녀차별이 없어진 듯하지만 얼굴을 바꾸어 여성들을 다시 짓누르고 있습니다.

셋째, 인권문제입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기업주의 부당한 처우나 불이익 강요에 대해 항변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기업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들은 기업주가 계약기간 종료를 이유로 해고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넷째, 사회안정망의 문제입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실직과 취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고용보험의 경우,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일용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정규 노동문제의 복잡성으로 비추어 볼 때, 그 해결은 철저한 인식과 결단을 필요로 하는 사안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노동문제를 다루는 데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사정위가 사회적 합의(social dialogue) 기구라고는 하지만, 단체협상(collective bargaining)의 성격을 기본으로 합니다. 말 그대로 bargaining이란 임금인상처럼 깎고 내리고 주고받는 것을 뜻합니다. 혹시라도 비정규직 양산구조는 그대로 둔 채 적당히 현실의 문제를 봉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희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들의 의견을 말씀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 비정규노동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즉,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해야 합니다. 출산육아와 질병부상 등 일시적 결원이 있는 경우, 계절적 노동의 경우, 그리고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해야 합니다.

▲ 기간제 노동을 엄격히 제한하고 계약이 반복 갱신된 경우 정규직화 해야 합니다. 법원의 판례도 나와 있습니다.

▲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균둥대우를 보장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에게 비정규직이 강요되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고쳐져야 합니다.

▲ 또한 사업의 창의성도 필요로 하지 않고, 경제적 위험성도 없이 단지 기업주의 사업에 편입되어 노무를 제공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경기보조원 들에게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상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무쪼록 대통령님의 혜안과 결단을 기대하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조진원 (비정규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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