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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이야기    종로구 통인동 희망1번지

  • 칼럼/기고
  • 2003.07.15
  • 2211
변희재 정치칼럼사이트 '시대소리' 운영위원 pyein2@hanmail.net


[월간 인물과사상]과 웹진 시대소리에 <여성앵커들은 왜 젊고 예뻐야 하나?>라는 글을 기고한 뒤로 언젠가는 한번 이 문제를 다시 언급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한번'이 아니라 '될 때까지'이다.

그 글을 기고한 뒤,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남성 앵커는 40대 중반의 차장급 유부남이 맡는데, 여성 앵커는 20대 후반의 미혼녀가 맡아야 하는가?"

60을 넘어선 우리 어머니까지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그래왔으니까,', 혹은 '시청자들이 원하니까'라는 생각에서 멈춰있었다. 나의 글에 대한 시대소리의 독자 댓글 중 일부이다.

"변희재 아우님의 말은 구절구절 다 옳은 이야기이나 정연주 사장께서 그것을 시행하면 시청률의 대하락이라는 결과가 있을 것임. 내가 먼저 kbs 9시 뉴스 안 본다. 전에 황현정이 나오는 kbs를 주로 보았는데 그 여자가 얼굴이 제일 괜찮아보였기 때문임. 인상이 좋았다고나 할까. 뉴스 전달에 있어서는 사실 이 여자(남자)가 하나 저 여자(남자)가 하나 그게 그것 아닌가."

나는 직관적으로 위의 독자 댓글이 맞다고 생각한다. 마치 사람들이 신문을 하나의 이념적 선택의 품목으로 보지 않고, 자전거와 함께 보는 무가지로 보고 있듯이, 텔레비전의 뉴스 역시,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고급 여가 수단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식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방송사의 맥빠진 뉴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항상 현실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방송을 하는 사람, 혹은 조금이나마 개혁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대중들의 의식이 발전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야 한다. "대중은 원래 그런 거야.", "현실은 항상 그래."라는 논리로 끝나면, 운동은 중단된다.

1991년 외국어대 김강석씨의 석사학위 논문, "TV앵커와 앵커제에 대한 일 연구"에서는 시청자들이 앵커의 자질이나 기준은 대체로 개성과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며 앵커맨의 멘트 역시 간단한 브리지 형태보다는 심도있는 비평이나 깊이 있는 분석이 좋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첨부하였다.

무려 10년 전부터 한국의 시청자들은 앵커에게 더 깊은 분석능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물론, 텔레비전에 관해서라면, 여론조사는 신빙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여론조사 결과만 보면, 항상 오락프로그램 철폐에 찬성을 보내는 대중들이, 실제로 오락프로그램에게 높은 시청률을 보내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방송 제작자들 역시, 이런 시청자들의 교과서적 발언에 대해서는 거의 ale지 않는다. 그들에게 시청률만이 가장 명확한 정답이자 지침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변해야 할 것이 명확하다면, 누군가 계속해서 그 문제를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시청자들도 그런 여론에 따라 판단을 다르게 내릴 수도 있고, 시청률도 거기서부터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연구원의 김명혜씨는 <겉모양만 앵커, 속은 뉴스 캐스터>라는 글에서 여성 앵커의 역할을 이렇게 평가했다.

"남녀 앵커가 보도하는 뉴스의 양은 71.6 대 28.4로 여성 앵커가 전달하는 뉴스의 비율은 남성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 이에 대한 이유로 남성 앵커들은 대부분 보도국 소속에 기자 경력을 지니고 있어 보도국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반면, 여성 앵커들은 대부분 경력이 짧은 아나운서 출신인 점을 들 수 있다. 여성 앵커들의 특징은 모두 20대의 미온에 미모였고, 또 기자 출신의 SBS 한수진을 제외하고는 역대 여성 앵커들은 대부분 아나운서 출신이었다. 남성 앵커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뉴스 진행 방식으로 기억되는 반면 여성 앵커들은 주로 미모로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지난 글에서 이런 뉴스의 생산구조야말로 명백한 성차별이며,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안'에 위배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방송사에서 누군가 한 명 법에 호소하면 방송사 사장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명확한 사안에 대해서, 그 누구도 깃발을 들고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그래왔기 때문이다. 40대 유부남과 20대 미혼녀가 진행하는 뉴스를 보면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게 아니라,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뉴스앵커 문제가 만만한 게 아니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한국 여성들의 지성에 대해서 묘한 이중성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머리에 든 것이 없으니 새 대가리들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정작 똑똑한 여성이 나타나면 그를 기피한다. 여성 앵커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직업 중 하나인 여 교사의 학습에 관한 말을 들어보자.

"독서내용은 주로 교양 분야였고 그러한 의도 역시 자기 계발로서가 아니라 남성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려는데 있다. 그러나 그러한 대안이 근본적으로 열등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 지적 추구의 내용이란 결국 남편을 잘 보조하는 현모양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좀더 교묘해지고 복잡해졌을 뿐이다."

애초에 여성의 지성의 범위를 남성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 정도로 한정지어버리고, 지적인 여성이란 그 선을 넘지 않았을 때만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이런 성차별적 지식구도를 상징화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화면에 비치는 남녀 앵커들의 모습이다.

남녀 앵커에 관한 원조들의 공식은, 가능하면 두 사람이 연인처럼 또는 부부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남성이 정치와 경제를 담당하고, 여성이 문화와 예술을 담당하는 절묘한 역할 분담을 황금시간 때에 공중파를 통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매일같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하도 공공히 고착화되다 보니 여성들조차도 이 구도에 문제의식 자체를 상실해버린다.

백지연이 한국에서 가장 닮고 싶은 여성으로 뽑히고, 여성앵커우먼이 가장 닮고 싶은 분야의 여성들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백지연은 "그 기사를 보자 누가 말없이 내 등을 툭툭 두드려주는 듯해서 웬지 기운이 났었다"라는 표현을 쓰며 흐뭇해 했다. 그러나 제 정신을 가진 여성이라면 등이 아닌 누군가 머리를 툭툭 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다. 닮고 싶은 해외여성들은 대처, 힐러리, 올부라이트 등 기라성 같은 여성전사류인데, 어째서 한국여성은 모든 언론학자가 다들 인정하듯, 뉴스의 꽃 여성앵커에 불과하냐는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여성앵커들은 시집과 결혼의 대명사로 자라매김하고 있다. 문제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지, 여성앵커들의 모순점은 단지 어린 나이와 외모 뿐이 아니다. 무시무시한 '학벌 카르텔'이라는 폐단도 함께 지니고 있다.

SBS의 곽상은 앵커는 이화여대 영문과, KBS의 정세진 앵커는 연세대 영문과, MBC의 김주하 앵커는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출신이다. KBS 11시 뉴스의 김경란 아나운서는 이화여대 철학과, MBC 7시 뉴스의 이주연 앵커는 연세대학교 국문과, 다들 알다시피, 황연정 앵커는 연세대 영문과, 황수경 앵커는 이화여대 영문과, 한수진 영커는 연세대 신방과 출신들이다.

가끔가다 서울대와 고대 출신들이 끼어드는 것 말고는 이화와대와 연세대학교를 벗어나지 않는다. 메인앵커 자리를 꿰찬 여성 앵커들 중,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라인을 벗어난 경우를 보지 못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온갖 비판의 칼을 다 던지던 사람들이, 1년 365일 공중파를 통해 매일 같이 성차별적 메시지를 전국민에게 세뇌시키는 여성 앵커문제에 입을 다무는 것이 혹시 그들간의 학맥 때문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이다. 미스코리아는 만만하지만, 여성앵커들에게는 그들의 학맥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고나 할까. 의식있는 여성들조차도, 지성과 외모와 학벌을 갖췄다는 그 허구성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백지연은 "어떻게 하면 언니 같이 살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는 자신의 팬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우선 목표를 확실히 하세요. 그리고 그 목표가 요구하는 재능을 정확히 알아보세요.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노트에 적어보세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필요로 하는 재능을 자신이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보세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본 뒤에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분명한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는 자신을 던지듯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겁니다."

만약 나의 여자친구나 내 딸이 여성앵커를 하고 싶은데, 외모가 딸려서, 그리고 학벌이 딸려서 좌절한다 했을 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백지연이 말한 재능은 다 갖췄는데 외모와 나이와 학력 때문에 안 되는 그런 직업이, 대한민국의 전 여성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재능을 갖추기 위해 노려하라는 말을 그 누가 당당히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아예 그런 일들이 물밑에서 벌어지면, 눈 감고 살면 되는데, 내가 TV를 켜고 뉴스를 볼 때마다, 성차별, 외모차별, 나이차별, 학력차별 등 세상의 모든 차별이 뉴스에서 튀어나오는 엽기 괴담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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