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청년사업 2015-02-06   1396

[인턴후기] 기억될 만한 수요일 : 수요집회, 전쟁기념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참여연대 15기 인턴프로그램은 세상을 뒤흔들 상상력으로 가득 찬, 20대 청년친구들 24명과 함께 2015년 1월 2일(월)부터 2월 12일(목)까지 6주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 6주 동안 우리 인턴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애드보커시 방법론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며, 직접행동을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됩니다. 이번 후기는 ‘장한슬’ 인턴이 작성해주셨습니다. 


1.제 1162차 수요시위에 다녀오다.

 

 부끄럽게도 이번 21일 나는 처음으로 수요시위에 참가했다. 한일 과거청산 및 역사문제에 꽤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정작 가까운 곳에 열리는 수요시위는 처음이었다. 수요시위의 정식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다. 1992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단일 주제로 열린 시위를 두고는 최장의 기록이라고 한다.

 

20150105-0212_참여연대 인턴 15기_(35)

 

 참여연대 인턴들이 찾은 1월 21일은, 1162번째 수요시위가 열린 날이었다. 우리들은 손수 꾸미고 오려 붙여서 만든 피켓을 들었다. 통인동에서 조금만 걸으면 닿는 곳에 일본 대사관이 위치해 있었다. 사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앞으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야지 다짐했다.

 

OD20150121_수요집회, 전쟁기념관_ (38)

 

 우리가 만든 피켓에는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들의 아픈 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기억하는 한, 잊지 않는 한”, “55분의 힘겨운 나비, 이 겨울이 끝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등 다양한 문구가 등장했다. 암행어사 그림과 함께 “아베 이노옴!”이라고 써 붙인 피켓, 독일에서 온 루이자가 “Wir verlangen eine erliche entschuldigung!(우리는 진실한 사과를 요구합니다)”라고 쓴 피켓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50105-0212_참여연대 인턴 15기_(28)

 

 수요시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참가자가 고등학생 등 나이 어린 친구들이었다는 거다. 반크 등 학내 동아리를 통해 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또, 네덜란드와 같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국에서 온 사람들을 비롯해서 해외에서 온 이들도 꽤 보였다. 아무래도 위안부 문제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국민적 공감을 불러오는 이슈이고 국제적인 사안이기에 다른 시위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듯 했다. 다행인 일이지만 조금은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대학 내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면 지지를 받지만, 노동문제 등을 말하면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서 한발 짝만 나아가면 박정희 시대의 ‘한일협정’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안도 정치적이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여러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남겨둔 채 수요시위가 끝났다. 

 

2.전쟁기념관의 불편함

 

 소녀상을 뒤로하고 우리가 후다닥 달려간 곳은 용산의 전쟁기념관이다. 사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소풍 단골 장소였다고 하는데, 부산에서 온 나에게는 생소한 곳이었다. 맞은편에 위치한 웅장한 국방부 건물, 드넓은 광장과 커다란 조형물들 덕에 들어가기 전부터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한홍구 선생님의 글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 ‘평화’는 없다

유인물을 미리 읽고 간 터라, 전쟁기념관에 별 기대는 없었지만 직접 접하고 난 뒤에는 실망을 넘어서서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OD20150121_수요집회, 전쟁기념관_ (48)

 

 전쟁기념관은 한마디로 전쟁에 대한 미화와 변명의 초상이었다. 전시 내용의 팔 할은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불리한 전쟁이었음을 설명하고, 그 어려움을 우리 힘으로 극복했음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한강대교를 폭파하고 혼자 도망갔던 남한 정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했던 사람은 전쟁영웅이 되어있었고, 2003년 정부에 의해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으로 밝혀진 제주 4.3사건은 좌익들의 폭동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실은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지난여름, 일본 야스쿠니 신사 내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인 유슈칸에서 본 풍경은 이번에 전쟁기념관에서 본 모습과 닮아있었다. 유슈칸에는 전쟁에 대한 반성 없이 피해자로서의 일본만을 그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전쟁기념관도 마찬가지였다. 학도병을 영웅화하는 부분에서는 유슈칸에서 봤던 가미카제 특공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어야 했던 개인들의 삶, 미군과 국군에 의해 자행되었던 민간인 학살, 무능하고 이기적인 정부……. 이런 것들에 대한 반성이 없는 공간에서 평화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3.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수요일의 마지막 일정은 바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방문이었다. 박물관은 웅장한 전쟁기념관과는 다르게 주택가의 골목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임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이 인쇄된 티켓을 받고, 아담하지만 왠지 정이 가는 박물관을 둘러봤다. 할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아픈 시간들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지냈던 어둡고 좁은 방안을 엿보기도 하고, 직접 그린 그림을 보기도 했다. “한국 여성들 정신 차리시오! 또 당합니다.”라는 김학순 할머니의 외침이 마음 깊숙하게 와 닿았다. 박물관의 한편에는 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인들이 저질렀던 만행이 전시되어 있었다. 피해자로서의 역사만이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역사도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함을 강조하는 듯 했다.

 

20150105-0212_참여연대 인턴 15기_(26)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이번 수요일의 경험은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전쟁기념관’과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이라는 극명한 대비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할 것이냐는 고민을 안겨주었다. 힘 있는 자들에 의해 기록되는 역사에는 무엇이 빠져있는지를 전쟁기념관을 갔다 온 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거다. 힘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기록되지 못한 것을 기억하고 끄집어내려는 노력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한, 진실은 절대로 감춰지지 않을 거다.

 

20150105-0212_참여연대 인턴 15기_(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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