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5-06-23   1004

<안국동窓> 전방 참사와 투기 재해

154마일의 휴전선에서 끔찍한 참사가 빚어졌다. ‘비무장지대’라는 공식명칭과는 달리 총과 포로 중무장하고 있는 이 무서운 곳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국적변경을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활용한 자들은 역시 자기들이 탁월한 선택을 했노라고 내심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슬프다. 졸지에 세상을 떠난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부상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장병들의 쾌유를 빈다.

전방 참사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나도 자연스레 군 생활을 떠올리게 되었다. 전방의 현역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한 후방의 방위생활이었지만, 나의 군 생활도 결코 즐겁고 보람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 군대는 참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병역비리부터 내무생활에 이르기까지 군대의 조직과 운영의 모든 면에서 아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것이 없다. 왜 그럴까?

‘그대 그리고 나’라는 주말 드라마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 인기를 끌었던 주말 드라마였다. 군대를 기피하려다가 실패하고 입대한 송승헌이 인기 연예인이 된 드라마였다. 이미 인기 연예인이었던 차인표가 색다른 모습을 보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차인표는 육군 병장으로 나왔다. 그가 제대를 해서 부대를 나서며 하는 대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다시는 이 부대 쪽을 향해 오줌이라도 누는가 봐라.”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말을 읊조렸으리라.

이렇게 군대를 혐오하기에 군대에 관해 공식적으로 얘기하기를 싫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멀쩡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것이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 진지하게 논의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대의 조직과 운영에 관해서는 연구나 증언은 거의 없고 술자리의 무용담만이 무성하다. 이제라도 군대의 조직과 운영에 관해 치밀한 연구와 증언이 이루어져야 한다. 군대의 문제가 제대로 연구되고 공표되어야 군대의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전방 참사 때문에 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재해에 대한 관심이 잠시 수그러든 것 같다. 투기 재해가 그것이다. 판교 로또를 계기로 분당과 용인과 강남의 아파트값이 폭등하고, 이어서 창원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아파트값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투기꾼들이 엄청난 돈을 동원해서 벌이는 치밀한 계획으로 끔찍한 투기 재해가 일어났다. 한줌도 안 되는 일부 투기꾼과 그 연합세력을 빼고는 사실상 모든 국민이 참담한 피해자가 되었다. 동남아 쓰나미보다도 더 무서운 투기 재해가 나라를 휩쓸고 있다.

사실 전방 참사와 투기 재해는 여러모로 비교될 수 있다. 전방 참사는 한국 군대의 억압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군의 잘못된 비밀주의가 이 해묵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게 했다. 전방 참사는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투기 재해는 한국 사회의 투기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투기를 투자라고 우기는 한국의 천민자본주의가 이 해묵은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게 했다. 투기 재해도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전방 참사와 투기 재해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전방에서 일어난 일이 후방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조적 잘못을 바로잡지 않고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뇌관이 터지고야 만다. 한줌의 투기꾼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목을 비틀고 있는 이 끔찍한 상황을 내버려두면, 결국 극단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고야 말 것이다. 증오범죄의 양상을 보인 이번의 전방 참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더 큰 증오범죄를 잉태하고 있는 투기 재해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투기꾼들은 이미 이 나라를 상당 정도로 파탄지경에 몰아넣었다. 한줌의 직업적 투기꾼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꿈을 빼앗아간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투기꾼들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라 전체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나아가 공급자 위주의 부동산정책은 사실상 투기꾼을 위한 부동산정책이 되고 말았다.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 바로 투기꾼이기 때문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사실상 투기꾼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말라고 협박하는 자들이다. 그만큼 직업적 투기꾼들은 이미 엄청난 돈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을 내버려두는 것은 이 나라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다시는 전방 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입영과정부터 군대생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방 참사에서 교훈을 얻어 더 큰 참사를 막아야 한다. 나라가 한줌의 투기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한줌의 투기세력은 피해자인 대다수 국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와 박탈감을 안겨 준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투기 재해는 투기 참사로 이어질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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