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6-05   1426

<안국동窓> 보수 경쟁의 냉정한 결과

과연 투기규제책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는가

2004년 연말,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며 수백명의 사람들이 여의도에서 오랫동안 단식농성을 벌였다. 국회의 마지막 회기일이었던 12월 30일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하며 힘을 모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시대의 요구를 뿌리쳤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 무렵 나는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안국동窓> 2004년 12월 23일)라는 칼럼을 써서 열린우리당의 행태를 비판했다. 2004년 3월의 탄핵반대투쟁과 4월의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의 열망을 열린우리당이 ‘배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보였던 배신의 행태는 크게 두가지로 줄일 수 있다. 첫째, 국가보안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방식으로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 둘째, 전국 곳곳에서 대형개발사업을 벌이는 ‘토건국가’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

나는, 이 두가지는 모두 과거의 유산으로서 개혁의 대상이며, 따라서 한나라당이 훨씬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는 열린우리당에 미래가 없다고 썼다. 4기 지방선거의 결과를 보고 나는 결국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의 잘못을 지적했으나 열린우리당은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배신의 댓가를 치르게 되었다. 2004년 12월, 나는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를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개혁을 저버리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린우리당의 운명이다. 열린우리당의 온건개혁세력은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를 중단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적극개혁세력은 ‘열린우리당의 한나라당화’를 막아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수 경쟁’의 정치는 개혁세력이 아니라 반개혁세력을 위한 정치이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완전히 저버렸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사학법 개정, 주민소환제 등의 개혁도 이루었다. 그러나 ‘보수 경쟁’과 ‘개혁 강화’ 중에서 더욱 치중했던 것은 분명히 ‘보수 경쟁’이었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줄곧 커다란 갈짓자 행보를 보였다. 개혁에 거세게 저항하는 한나라당을 알리바이로 삼아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과 부동산 문제에 관한 미온적 대응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열린우리당은 낡은 방식으로 ‘전국 정당’이 되고자 애썼으나, 어느 신문 만평에서 지적했듯이, 그저 ‘전북 정당’이 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새만금간척사업이라는 인류적 파괴사업을 허용한 댓가로 겨우 전북지사를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중심도시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긴 광주는 물론이고 심지어 행정수도라는 엄청난 선물을 안긴 충남에서조차 열린우리당은 외면당했다. 전국적으로 펼친 ‘보수 경쟁’에서 처절하게 참패하고 만 것이다.

2003년 3월 초, KBS 제1라디오는 전국의 성인남녀 3천28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노무현 정부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46.9%), ‘매우 그렇다’(11.3%) 등 긍정적인 대답이 58.2%를 차지했다. 막 대통령에 취임한 사람에 대한 의례적인 기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정을 생각하면, 이 설문조사의 결과는 좀더 진지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부터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환멸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극적인 변화는 자기의 정체성을 착각하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데서 비롯된 마땅한 결과이다.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보수 경쟁을 벌여도 영남 지역주의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들은 지지를 철회하게 된다. 보수 세력에게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언제까지나 ‘빨갱이’이고 타도해야 할 적일 뿐이다. 대형개발사업이라는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는 결코 ‘전국 정당’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면, 열린우리당의 앞날은 더욱 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겨우 추진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열린우리당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과연 투기규제책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보수 경쟁에 골몰하느라 진작부터 적절한 투기규제책을 제대로 펴지 않았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국민들로부터 ‘무능한 배신자’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이렇게 끝나고 말 가능성이 커 보인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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