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4-04-07   534

내전 치닫는 이라크, 올 것이 왔다.

쿠르드 지역도 내전 화약고, 막가파식 파병 추진 중단해야

올 것이 왔다. 이라크 팔루자에서의 미국 사설 경비업체 관계자들의 피살사건과 이에 대한 미국의 반격에 더해,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 알 사드르가 이끄는 시아파 강경세력과 미군정 간의 무력충돌이 확대 일로를 겪고 있다. 내전 수준의 충돌이다. 이 와중에 한국 구호단체 직원 2인이 억류되었다 풀려나는 사건도 있었다.

지금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친후세인 또는 수니파 계열반군의 공격행위가 아니라 이라크 최대 정치·종교집단과 점령당국간의 정치적 갈등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는 이라크 점령을 둘러싼 본격적인 새로운 갈등의 국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라크 내 시아파 강경세력이 전국 주요도시에서 연합점령군에 대항하는 사실상의 봉기를 일으키게 된 데는 미군정의 이라크 점령정책 실패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며 예상되었던 결과였다. 그들의 전쟁목적은 이라크 민주화와는 상관없는 것이었고, 그들은 이라크와 이라크인들을 위한 세심한 준비와 계획도 없이 이라크를 점령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와 의회 내에서도 군사작전 외에 점령 후에 대한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의 이라크 사태는 점령정책의 파산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대량살상무기·테러 관련성 등 미국이 내세웠던 전쟁명분이 거짓으로 판명되자 궁색해진 미국이 뒤늦게 내세웠던 이라크 민주화와 인권의 명분마저도 사실상 함께 파산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는 미 위스컨신 대학의 졸탄 그로스만 교수가 지난 해 3월 개전 직후 미국 반전사이트 Z-net 기고를 통해 예언적으로 분석했던 다음의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우리의 입장을 대신하고자 한다.

“종교적·인종적 측면에서 이라크는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만큼이나 복잡하며, 소말리아보다는 훨씬 복잡하다. 이라크를 점령함으로써 미군은 새로운 복마전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 복잡무비한 나라에서 미국은 곧 나름대로 ‘좋은 친구’와 ‘나쁜 놈’을 가르기 시작할 것이며, 그럼으로써 내부 권력투쟁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이라크인들은 2003년 미군에게 꽃을 던질지 모르지만, 2004년에는 수류탄을 던질 것이다….군사적 승리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쉬운 부분이다. 부시는 이번 전쟁을 쉽게 이길 수는 있겠지만 평화를 잃을 것이다. 가장 깨기 어려운 저항은 후세인의 추종자가 아닌, 그의 반대파로부터 나올 것이다…. ” – The Next Stage, 졸탄 그로스만, 미 위스컨신대 교수, 지리학

한국이 파병할 쿠르디스탄 지역-이르빌, 술라이마니아 등은 이 본격적인 분쟁의 예외지대인가? 우리의 주관적 희망과는 달리, 이르빌과 술라이마니아는 아직 분출되지 않은 잠재적 갈등의 활화산 같은 곳이다. 전쟁 피해도 입지 않은 쿠르드 산악지역에 평화재건을 명분으로 도착한 한국군은 2000 여 년간의 민족-국경-종교 갈등의 틈바구니에 낀 자신을 발견하게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파악하기로는 쿠르드 지역 파병을 환영하는 정치세력은 쿠르드 여러 분파의 일부일 뿐이며, 다른 쿠르드 분파들과 이들은 지금도 이미 십 수년째 ‘전쟁 중’이다.

내전양상으로 치닫는 이라크 어디를 가든지 한국군의 주둔은 이라크 시민과 한국인들에게 재앙의 불씨가 될 것이다. 어제의 한국인 억류 해프닝은 악몽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조금이라도 진실을 보고자한다면, 임박한 미래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지고 예측하려 한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정부는 막가파식 파병 추진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라크 내 주요 쿠르드 정치세력과 한국군 파병

— 이라크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 국제협력팀 2004. 4.

* 이 자료는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국제협력팀(팀장 : 정경란, 평화를만드는여성회)이 2003. 11월 작성한 것으로 주요 내외신, 국제반전평화NGO, 이라크 모니터 단체들의 기사 또는 웹 페이지를 참조하여 작성한 이라크 정치상황 보고서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1. 주요 쿠르드 정치세력 및 약칭

KDP 쿠르드 민주당

PUK 쿠르드 애국연맹

KIU 쿠르드 이슬람 연맹

IMK 쿠르드 이슬람 운동

–> Ansar al-Islam 안사르 알 이슬람(Supporters of Islam)

PKK 쿠르드 노동자당 (Partiya Karkeren Kurdistan, Kurdish Worker’s Party)

–> KADEK 쿠르드자유민주회의

2. 각 정치세력 개요

(1) 쿠르드민주당(KDP)

북부 이라크에 있는 주요 쿠르드 정당으로 현재 마슈드 바르자니가 지도하고 있다.

1945년 12월 테헤란에서 물라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창당하였다. 1931년 마흐마드 바르자니가 주도한 이라크로부터 쿠르드 독립을 위한 반란을 계승하고 있다. 이라크 전쿠르드지역에서 지지를 얻었지만 주요 지원은 바르자니, 바라두스티와 수르치 부족으로부터 왔다. 이라크 정부와 대립와 화해를 반복하였다. 1970년 자치정부로서 이라크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원을 받고 북부이라크 지역에 행정을 담당했다. 그러나 1974년 쿠르드 지역에 반란이 다시 발생했다.

1980-88 전쟁에서 이란과 동맹을 맺고 PUK에 호의적인 시리아와 관계는 약화되었다. 1987년 PUK와 유화정책을 펴고 1987년 이라크 쿠르드 전선(IKF)를 형성했지만 PUK가 PKK와 연대하자 문제가 발생했다. KDP는 터어키정부와 협정을 맺어 터어키정부가 이라크내 PUK/PKK를 공격하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에 KDP가 터어키 영토 통과를 얻어냈다.

걸프전에서 중립성을 유지. 이라크 쿠르드전선이 걸프전후 북부이라크에서 봉기를 이끌었지만 이라크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었다. INC(이라크 민족회의, 반 후세인 부족연합, 찰라비가 주도) 성립에 참여하고 주요한 활동을 하였다. 1993년 8월 3개 쿠르드 소정당을 흡수. 1996년 8월 PUK에게 빼앗긴 이르빌 지역을 다시 찾고 쿠르드 지역에 있는 INC/미국 시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라크 군을 요청했다. 1998년 PUK와 관계를 회복해 쿠르드 자치지역의 공동운영관련 협정을 체결하였다. KDP가 키르쿠크에 대한 주장을 하지 말것을 터키가 요구해서 2002년 2월 이후 터키와 갈등을 빚고 있다. 터키는 이것이 쿠르드 민족주의 강화에 기여할 것을 우려하였다. 2002년 7월 1일 헌법초안을 작성했는데 1개의 아랍 지역과 1개의 쿠르드 지역으로 구성되는 이라크연방공화국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란과 관계향상을 추구하고 있다. 2002년 9월 SCIRI(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 시아파 조직)와 군사문제와 정치문제 조정에 합의하였다. 마슈드 바르자니는 과도통치위원회에 합류하고 호쉬아드 지바리가 임시외무장관에 취임했다.

(2) 쿠르드 애국연맹(PUK)

1975년 3월 바르자니 부족에 대항하는 레닌주의를 지향하는 반정부그룹으로 형성되었다.

자랄 탈라바니가 지도, 시리아 정부과 긴밀한 연대(훈련과 무기 지원), 이란과 연대 회피, 리비아 중개자 역할을 했었다. 1983년 이란-이라크 전쟁시기에 이라크 지역인 하지 움란에서 이란 정부와 KDP가 공동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비판하고 이라크 정부와 자치에 대해 공개토론을 시작하였다. 1985년 1월에 이라크 정부와 협상은 자치 지역에 대한 논쟁으로 중단되고 PUK는 바트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반란을 시작하면서 이란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1986년 이란과 협력조약을 맺고 바트정권 붕괴까지 공동투쟁할 것을 서약하였다. 이런 조치에 따라 PUK를 이란의 지부로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이란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터어키 지원을 추구했다.

탈라바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고 2002년 8월 이라크 해방을 위해 PUK군대가 미국과 협력할 것을 주장했다. PUK는 PKK와 갈등상태이다. 동북부 이라크에서 미국과 터어키 기업과 함께 2003년 5월부터 3개의 석유 개발 프로젝트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3) 쿠르드 이슬람 연맹 (Kurdistan Islamic Union)

무슬림 형제당의 일부로 원칙적으로 독립적이고 정책적으로 직접 책임을 지지만 실제로 여러 아랍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쿠르드인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데 노력하고 학생의 활동이 활발하다. 비폭력을 주창하고 이슬람쿠르드연합(Islam Kurdish League)을 지지한다.

(4) 안사르 알 이슬람(Ansar al-Islam, Supporters of Islam)

쿠르드가 통제하는 이라크 북부지역에 근거지를 둔 수니 이슬람 그룹의 하나이다. 근거지는 이란과 접경지역인 비야라와 타웨라 계곡에 있다. 2001년 이슬람군인(Jund al-Islam)이란 이름으로 조직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원하는 급진적인 쿠르드 이슬람 그룹으로 이 조직은 탈레반과 알카에다와 연계.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장 급진적인 조직이라는 평가가 있다.

쿠르드애국연맹(PUK)과 전쟁상태이다. 2001년 쿠르드민주당(KDP)의 고위간부 암살에 책임이 있고 쿠르드민주당이 지도하는 이라크 쿠르드 지역정부의 수반 부르한 살리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1991년 10월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이라크 정부가 철수하자 쿠르드군이 이 지역을 통제한 후 다양한 반정부조직이 활동했다. 이라크 쿠르드지역에서 1987년에 세워진 쿠르드이슬람운동(Islam Movement in Kurdistan)이 이슬람 정치세력을 대표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쿠르드이슬람운동은 KDP와 PUK의 뒤를 있는 제3의 정치군사세력이었다. 1992년 쿠르드 의회 선거에서 패배한 후 쿠르드공동자치정부에 협조하기 보다 IMK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에 행정, 정치, 경제 시설을 개발하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지역들은 PUK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과 가까워 PUK와 무장투쟁을 하였다.

IMK가 쿠르드자치정부와 협력을 하자 3분파로 분열되고 2001년 9월 이 분파들은 다시 결합하여 Jund al-Islam으로 통합된다. 이 그룹은 “이슬람의 진실한 길”을 주장하며 이 길에서 이탈한 세속적인 다른 정당에 대항해 성전을 선포했다. 이 그룹이 이후 안사르 알 이슬람으로 변화했다.

(5) 쿠르드자유민주회의(KADEK, Kurdish Freedom and Democracy Congress)

KADEK는 ‘세계 최대의 소수민족’으로 불리는 인구 2천5백만명의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쿠르드 최대규모의 무장독립운동 단체로,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터키, 이란과 옛 소련지역에 걸친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독립국가건설을 위해 오랜 투쟁을 벌여왔다.

KADEK는 지난 80년대초부터 쿠르드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해온 쿠르드노동자당(Kurdish Worker’s Party, Partiya Karkeren Kurdistan or PKK)의 후신이다. 쿠르드노동자당은 1974년 동남부 터키에 거주하는 쿠르드인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독립적인 쿠르드국가를 추구했다. PKK는 1960년대 터어키 좌파 학생그룹이 발전한 것으로 이 조직의 지도자였던 압둘라 오잘란은 광범위한 좌파혁명보다 쿠르드의 해방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1978년 PKK는 디야르바키르 지역에 공식적으로 조직되고 공산주의혁명을 통해 독립적인 쿠르드 국가를 추구했다. 이 조직은 경제적, 인적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강도와 마약 거래와 관련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1970년대 말 지하활동을 하고 1984년 쿠르드민족해방전선을 조직하였으나 지지를 받지 못하자 오잘란은 비마르크스주의자와 종교적인 쿠르드인의 견해를 고려하여 광범위한 연합체를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쿠르드인민해방군을 조직하고 쿠르드국가 수립을 추구해 터키 보안대와 민병대와 대립하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유럽에 있는 터키 외교관과 기업인, 터키관광산업 등을 공격했다.

1990년대 후반이후 PKK는 군사적인 수단보다 정치적인 수단을 중시해 2002년 4월 조직이름을 쿠르드자유민주회의(KADEK)로 개칭하였다. KADEK는 산간지역을 이용한 게릴라전에 능수능란하며 지난 10여년간 터키군과의 싸움에서 3만명 이상의 엄청난 전사자를 냈다. KADEK은 지난 99년 전설적인 게릴라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체포된 뒤 터키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은 바 있다. 그러나 터키 정부가 약속과는 달리 구금 중인 쿠르드족 지도자들을 사면-감형해주지 않고 반군의 투항을 강요하자, 2003년 9월 1일 다시 게릴라전으로 전환하기로 방침을 정한 뒤 휴전 조치를 4년만에 일방적으로 취소하여 이라크 북부 등의 정세가 악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 1차조사단에 참여했던 박건영 교수는 당시 파병예정지였던 모술(쿠르드 자치지역 인근)에 주둔할 한국군이 KADEK에 대한 소탕작전에 휘말려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3. 쿠르드 그룹들의 특징과 한국군 주둔

– 쿠르드 자치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단일하지 않다. 독립 또는 자치 문제, 주변국과의 관계, 종교에서 상이하다.

– 이들은 각각 무장조직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치외교노선과 종교에 따라 종종 주변국 및 각 정치세력간에 무력갈등의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르빌에서 두 차례 일어난 전 후 최악의 폭탄테러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갈등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 KADEK와 안 사르 알 이슬람 등 서로 입장이 다른 강력한 반군조직이 쿠르드 자치지역의 북부와 동부를 각각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주변국 또는 여타 쿠르드계 정치조직, 이라크 점령 미군정에 대해 무장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 이들 모두에게 환영받는 주둔은 불가능하며, 쿠르드 지역 주둔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응도 충분히 조사해보아야 한다.

이라크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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