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의 핵폐기 경험을 배워라 (John Wolfstahl, 2005. 10. 25)

(출처: 문화일보)

1991년 미국 의회는 옛 소련 붕괴에 따른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창의적인 실험을 제안했다. 소련 붕괴 후 모스크바의 핵무기가 다른 나라에 이전되거나 테러리스트에 의해 탈취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기조달용으로 책정된 4억달러를 러시아 핵무기 및 핵물질을 안전하게 협력적으로 사용하는데 쓸 것을 결의한 것이다. 이것은 후에 ‘협력적 위협제거(CTR)’ 프로그램으로 알려지게 됐다. 지난 9월 북한의 핵포기 선언이 실행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정해볼 때, 미국과 한국, 그리고 회담의 다른 참여국들은 어떻게 북핵프로그램을 제거할 것인가에 대해 창의적인 방안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이럴 경우 미국과 옛 소련이 협력적으로 위협을 제거했던 경험은 앞으로 몇년간 북핵을 제거하는 데 있어 아주 유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미 의회가 승인한 4억달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사용됐다. 이 기금은 미국이 러시아와 협력해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그리고 벨로루시에 있는 핵무기를 러시아로 안전하게 이전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있는 핵물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데 사용됐다. 또 옛 소련의 핵과학자들에게 직장을 제공하고, 핵시설 관리자들과 노동자들이 돈이나 식량을 얻기 위해 핵무기를 팔지 않도록 하는데도 투입됐다.

이같은 모든 프로그램은 미국과 옛 소련당국간의 긴밀한 협조하에 가능했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첫 몇달간 양국 군인과 정부관계자들은 상호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협력을 진행시키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양측엔 신뢰관계가 싹텄고, 프로그램은 진전되기 시작했다. 옛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 밖에 산재했던 모든 핵무기는 1994년까지 안전하게 러시아로 이전됐다. 오늘날 미국은 매년 이같은 작업을 위해 10억달러씩 제공하고 있는데 이 기금은 러시아의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 폐기, 핵무기급의 원자로 폐쇄 및 변환, 핵과학자의 재교육, 냉전시대 핵무기 경쟁에 따라 파괴된 환경 복원 등에 투입되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잠재적으로 북한에 활용될 수 있다. 핵심 아이디어는 북한과의 협력적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한편 기금을 마련,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제거하도록 제공하는 일이다. 북한의 플루토늄을 제거하고, 영변 25㎿ 원자로를 폐쇄하거나 해체하며 북한의 핵과학자 재교육을 위해 기금을 제공하고 공동참여함으로써 6자회담의 나머지 참여국들은 북한에 비핵화의 재정비용을 혼자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 비핵화 합의를 실행하는 과정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더욱 더 깊게 관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공식적인 검증의 룰에 따를 필요없이 상호신뢰하는 수준에서 진행하면된다. 핵시설의 제거와 함께 북한에 의무와 인센티브가 동시에 부여된다는 것을 구체적인 공동작업을 통해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와의 협력적 위협제거작업의 기여국이 아닌 만큼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CTR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한 나라들로부터 얻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6자회담의 협상과 실천과정을 돕기 위해 한국의 외교부와 통일부, 국방부, 과학기술부는 러시아에서 진행된 CTR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북한에 대한 응용방안을 검토해야할 것이다. 국회 또한 전문가들을 초빙해 러시아에서 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됐고, 이 경험이 어떻게 북한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활발한 의견교환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미국과 러시아의 관련기구들이 과거 경험을 브리핑할 경우 한국은 이 프로그램을 북한의 맥락에서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미국 국방예산을 지난 40여년간 적으로 규정했던 나라에 지원하고 협력한 것은 그 일의 과감성만큼이나 아주 논쟁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북한과 협력해 자금을 제공하고 북한의 과거 핵과학자 등을 지원하는 일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러시아에 쏟았던 노력 덕분에 현실에 나타날 수 있었던 핵악몽은 제거될 수 있었다. 이같은 성공적 사례는 북한의 비슷한 위협을 해결하는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러시아에서와 같은 결과를 북한에서도 얻기 위해 한국은 지금 당장 과거의 CTR경험을 면밀히 검토해 미국 및 다른 회담참여국들과 이 사례를 북한의 핵문제해결에 적용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존 울프스털 / 국제전략문제硏 비확산담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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