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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7.03.16
  • 669
지난 2월 14일 미국 내 대북강경 목소리를 내오던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연구원을 만나 짧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2.13 초기조처 합의 이후 북미간 최대 논란이 될 수 있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HEUP) 존재에 대한 그의 판단을 물어보았다. 스스로 네오콘이라고 말하는 그의 대답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2년 10월 당시만 해도 북한이 HEU를 통해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던 미 행정부가 최근에는 확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는 ‘중간 수준’의 확신을 하고 전하면서 “미 행정부의 2002년 당시 입장과 현재 입장 중 하나는 거짓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 그의 답변은 최근 미 행정부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언론도 한국과 미국이 6자회담 및 실무회담에서 북한에 고농축우라늄(HEU)이 아닌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한 신고를 요구하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북한이 시도한 것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고농축이 아니라 에너지 발전용으로 사용되는 저농축(LEU)일 수도 있고, 북한도 이를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북한의 HEUP 존재에 대한 미국의 최근 태도는 6자회담 진전을 위한 전략적 후퇴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문제시 할 HEUP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지금까지의 상황을 추적해보면 후자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미 측이 북한의 HEUP 개발을 확신한다며 그 근거로 내놓은 것은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북한에 20여 기의 원심분리기와 설계도 등을 넘겨주고 북한을 방문해 기술을 지도했다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북한이 우라늄을 고농축할 수 있는 2000여개의 원심분리기가 존재한다던가, 시설 혹은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은 2002년 11월 ‘북한이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중이며, 2005년이면 공장을 완전 가동해 매년 두개 이상의 핵무기를 생산할 것이다’라고 의회에 보고했다. 물론 이 보고서를 뒷받침할 근거는 없었지만 이후 부시 행정부는 실질적으로 제네바 합의의 종료를 선언하고 대북압박에 나섰다.

이는 이라크가 알루미늄 튜브관 반입을 시도한 것이 대량살상무기(WMD) 제조를 위한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WMD 보유와 개발의혹을 기정사실화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보실패 혹은 정보조작이 분명해지면서 북한의 핵개발 의혹 자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 북한을 방북하고 돌아온 핵과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북한이 보유한 원심분리기는 약 20기 정도로 고농축우라늄(HEU)을 생산하기에 부족하며, 북한이 커다란 원심분리기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2002년의 미국 정보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 북 측의 HEUP 관련 정보는 애초 한국 정보당국이 미 측에 전달한 것이며 이 정보를 접했던 한국과 일본 정부는 크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2005년 3월 20일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지(Washington Post)는 북한의 핵물질 이전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의도적인 정보왜곡을 보도한 적이 있다. 부시 행정부가 리비아에 6불화우라늄을 판매한 국가가 북한이 아니라 파키스탄이었다는 것을 알고도 한중일 3국에 ‘북한이 판매원’이라고 통보했으며, 이에 대해 미 정보기관은 리비아와의 핵물질 거래에 북한이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미 행정부에 보고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마이클 그린 미 NSC 아시아담당 국장은 한중일 3국을 방문하여 ‘리비아에 핵물질을 이전한 것이 북한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통보했었다. 당시 북한은 리비아에 핵물질을 판매한 국가로 지목된 것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였으며 미국 내 전문 연구기관이나 IAEA 관계자들 역시 부시 행정부의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었다.

북한의 HEUP 보유 의혹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북한이 실험실 수준의 HEUP는 보유하고 있으나 생산시설 수준의 HEU 프로그램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깨기 위해 정보를 조작한 것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부시 행정부가 남북, 북일 관계가 급진전할 움직임을 보이자 HEUP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북한측이 HEUP 보유를 시인했다'는 미 측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켈리-강석주 대화록을 요청했으나 미 측이 거부했다는 당시 정부 당국자의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HEUP 의혹 제기는 한반도 정세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미 측이 제네바 합의에 따른 대북 중유 제공을 중단하고 이에 북한이 NPT 탈퇴 선언과 봉인되었던 폐연료봉의 재처리로 맞서면서 한반도 2차 핵위기가 고조된 것이다. 그러자 문제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지 않고 제재와 고립을 고집하는 동안 북한은 플루토늄을 계속 추출하여 결국 핵실험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되었던 HEUP 의혹은 온데간데 없고 북한의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과 이에 대한 저지가 더 ‘급한 불’이 된 것이다.

현재 많은 이들에게 미 측이 제기한 북한의 HEUP 개발 의혹은 의혹으로 남아있지 않고 진실이 되어 버린 듯하다. 북한이 오래 전부터 은밀히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왔으며, 94년 제네바 합의를 먼저 깬 것도 북한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북한은 믿을 수 없고 결코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한 TV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도 그 같은 인식수준을 보여주었는데, 송 의원은 북한이 핵실험에 사용한 핵연료가 HEU인지, 플루토늄인지 구별하지 못한 채 미국이 제기했던 의혹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HEUP 의혹에서 시작된 핵 위기는 지난 몇 년 동안 한반도 주민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대 현안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 조야에서는 ‘2002년 의혹제기’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껏 HEUP에 대한 근거를 보여준 적이 없는 미 행정부가 갑자기 그 근거를 제시하며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예전과 다른 확신수준을 갖고 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정보결함이었든, 정보조작이었든 지금과 달리 2002년 당시에 부시 행정부가 HEUP를 확신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그 이유 말이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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