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10-08-23   1302

[논평] 미국의 일방적 이란 제재에 동참해서는 안된다

유엔 안보리 결의 넘어서는 독자제재는 명분 없는 자가당착
대미추종 맹목 외교 지양하고 실용외교·평화외교 시작해야 

미국 정부는 이란 멜라트은행의 서울지점 폐쇄 등 미국 수준의 이란제재에 동참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고 이명박 정부는 지난 9일 외통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미국이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포괄적인 이란제재에 동참할 의사를 밝힌 것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독자적인 이란제재는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정책적 일관성이나 국제사회의 정의라는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과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강요에 따라 유엔 안보리 결의를 넘어선 수준으로 별도의 독자제재를 추진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우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이란 핵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란이 국제사회 제재에 반발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란제재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확증이 아니라 가능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애당초 우라늄 농축시설을 신고하지 않는 등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협정을 위반했지만, 그 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았다. 이에 이란은 의혹이 해소되었다고 생각하는 반면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한 국가들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의도적으로 신고하지 않았고, 이란의 핵확산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란의 농축시설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라늄 농축기술은 핵무기용 고농축기술로 발전될 수 있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의거 평화적 핵이용으로 인정되는 2중용도 기술이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수준은 핵무기용 90%는 물론, 평화적 핵이용으로 인정되는 수준인 20%에도 밑돌기 때문에 우라늄 농축만으로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우라늄 농축기술을 보유한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제재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란에 대한 제재 시도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며 형평성 측면에서도 적절하다 할 수 없다.

올해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대이란 제재 결의안이 정당성을 완비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이란은 이란 핵 문제의 해법으로 이란의 저농축 우라늄을 러시아에서 농축한 후 이란으로 재반입하는 안에 합의했지만 이란내부 의사결정문제로 좌절되었다. 하지만 그 후 브라질-터키-이란은 러시아가 아닌 터키로의 반출이라는 3자 합의를 도출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안보리 제재를 피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며 바로 그 다음 날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를 밀어붙여 대이란 제재를 강행했다. 그 결과 터키와 브라질이 대이란 제재 결의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렇듯 3자 합의의 유효성에 대한 적절한 평가 없이 채택된 결의안은 외교적, 평화적 해법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국제적 합의와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폐쇄하고 국제사회와 협상하도록 하는 것이 안보리의 목적이지만, 정작 이란은 제재에 수긍하기는커녕 우라늄 농축시설 증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반발하고 있어 과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엔 안보리 이란제재의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국내법으로 제정한 포괄적 이란제재는 더 큰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우선 미국의 이러한 일방적 행보는 국제사회의 합의 수준을 벗어난 것이다. 미국은 당초 결의안 논의 시작부터 이란 중앙은행 및 석유와 같은 에너지 자원 수출에 대한 제재를 추진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의 반대로 안보리 결의안에 포함되지 못하자 미국은 이를 포함하는 국내법을 제정했다. 국제사회 합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못했다고 국내법을 제정하고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게 동참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성이 부족하며, 패권주의적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안보리 결의안 수준 이상의 포괄적 이란제재 동참 요구는 안보리 결의안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29호는 “이 결의안의 어떠한 조항도 국가들이 이 결의안 범주를 넘어선 조치나 행동을 취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이 충분한 근거를 대지 않은 채 동맹국 미국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안보리 수준 이상의 이란 제재를 단행하는 것은 안보리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핵 비확산에 대한 이중 잣대 적용이 이란에 대한 압박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미국은 NPT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이스라엘, 인도에 대해서는 ‘민수용’이라며 핵교류를 추진했고, ‘핵 없는 세상’, ‘중동비핵지대화’ 등을 주창하면서도 정작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대로 NPT 가입국인 이란이 ‘평화적 핵 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이란이 해외농축계획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란 중앙은행 제재를 통해 이란 경제의 중심부를 직접 타격하는 국내법을 제정했다. 이란의 핵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미국 국내법 제정을 통해 미국 기업은 물론 타국 기업과 은행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것까지 제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과도한 조치이며, 패권주의적 행태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의 대이란 독자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정당성, 타당성 면에서 매우 중대한 한계를 안고 있고 그 실효성도 불투명하다. 중동 비핵지대화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한편, 그 반대급부로 한국 기업과 시민들이 부담해야 할 정치경제적 비용과 손실은 명확하고 심각하다. 한국의 대이란 수출 규모는 자동차, 가전, 중소기업 제품 등 40억 달러에 이르고 관련 중소기업들이 2,100여 개에 이른다. 그런데 이미 이란에 수출하는 업체 3곳 중 1곳이 아예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석유의 안정적인 수급도 문제다. 한국은 세계 제2위의 석유 매장량을 지닌 이란으로부터 해마다 전체 원유수입량의 10% 정도 수입한다(2009년은 9.5%, 47억 달러). 만에 하나 한국-이란 관계 악화로 이란산 원유 도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뒤에 미국-이란과의 관계악화에 따라 일어난 제2차 석유파동으로 한국경제가 겪었던 악몽이 다시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동맹관계를 앞세운 미국에 의해 오랜 경제협력의 동반자 관계인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취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주창해온 실용외교는, 그 구체적 실험을 시작한 바도 없지만, 이미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진퇴양난의 외교적 난국에 처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일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호기롭게 미국과의 ‘전략동맹’을 선언하고 ‘세계안보수요에 공동으로 부응한다’는 비실용적인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의기양양했을 때, 이러한 비용을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초기부터 기존의 남북합의를 무시하고 미국에 편승하여 중국과 사실상 적대하며, 아프간 재파병을 강행하는 등 실용과는 무관한 냉전적 동맹외교에 자족하고 있을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국내합의도 없이 천안함 문제를 국제무대로 가져가 냉전시대의 대결외교를 답습하면서 허울뿐인 안보리 결의를 무리하게 도출하기 위해 미국 외교력에 의존했을 때, 이미 예상되었던 자업자득의 청구서이기도 하다. 무리한 것을 지원했으니, 무리한 일을 지원하라는 식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자가당착적이고 맹목적 거래로 피해를 보는 것이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한반도 주민, 특히 남한의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또 이란제재가 경제문제가 아니라 안보문제라고 변명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좇아 유엔안보리 결의안에도 포함되지 않은 이란에 대한 독자적 제재를 단행할 경우, 핵에 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한 한국에 대해 이란과 중동국가, 그리고 적지 않은 비핵국가들이 크게 반발할 것이다. 전 세계 비핵군축 시민사회 세력들의 지지도 크게 얻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원칙의 보편적 적용만이 핵 없는 세상을 가능케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이란에 적용한 이중잣대가 북한에도 적용될 것으로 비춰질 경우, 이는 북핵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데 일조할 것이고 한반도에 심각한 안보딜레마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패권국가인 미국이 입을 경제적 손해는 별로 없지만 중동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어정쩡한 한국이 입을 피해는 막심하다. 이쯤 되면 이란 제재는 이명박 정부가 표방해온 글로벌 외교의 두 축인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안보에는 역효과, 경제엔 치명타를 안겨줄 외교정책이 총체적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 시청률이 80%에 이르는 우호적인 나라이며 중요한 경제협력 국가인 이란에 우리가 무슨 이유로 군사적 도발에 필적하는 초강경 봉쇄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말인가?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미국의 포괄적 이란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맹목이며 외교의 파탄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맹목을 중단하고 실용으로 돌아와 이란제재 동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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