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은 자주국방 초석이 아니라 한미일 확장억제 시스템으로의 종속

이미 대북 억지력 충분, 방어충분성에 입각한 군사전략 세워야

한미일 확장억제 정책 전면 재검토하고 MD 편입 거부 명문화해야 

 

 

지난 10월 5일 탄도 미사일 사거리를 300킬로미터에서 800킬로미터로 늘리기로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미 미사일지침이 개정되었다. 정부는 이번 개정이 ‘미사일 주권’ 제약을 일부 해소했다며 긍정적 측면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것이 미국에의 군사적 예속성 완화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도리어 이미 한미연합전력이 북한에 대해 충분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내세워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을 완성하는데 기여하는 새로운 군사종속의 일환으로서 한미일 MD 체계 편입과 동북아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한미 미사일지침은 1979년 처음 만들어져 2001년 한 차례 개정되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300킬로미터·탄두중량 500킬로그램으로 제한해왔다. 대신 미국이 핵우산으로 한국의 안보를 대신 보장한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한국이건 중국이건 북한이건 주권국가의 기술문제를 특정국가가 인위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미사일이 대량살상무기이므로 국제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도 사거리를 스스로 통제하고 나아가 이를 제한하는 국제조약 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가야 옳지 쌍무적으로 특정국가의 기술개발을 제약하는 것은 한국에게든 중국에게든 북한에게든 옳지 않다. 이 점에서 한미 미사일지침은 한미 간의 불평등성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미사일 통제 시스템의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한 이번 미사일지침 개정을 한미 군사관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자주국방의 진전으로 보는 시각은 이 문제의 일면만을 보고 있다. 만약 이번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실제로 국방분야에서의 독립성 확보로 연결되거나 국제미사일 통제시스템의 개혁으로 귀결된다면 일리가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한국의 대미 종속성 완화 혹은 국제미사일 통제시스템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번 개정은 한미연례안보협의회 등에서 공언한 한미 간 ‘확장억제’ 강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으로부터 독립적인 군사전략으로 나아가는 맥락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도리어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추진하는 한미일 확장억제(핵우산과 미사일방어) 네트워크 강화에 종속적으로 편입되는 방식으로 이번 개정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핵심 축이 한미일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미국의 공격적 군사전략에 보조를 맞추고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에 편입할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하다. 천영우 외교안보수석 비서관은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편입되는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을 취했지만 미사일 사거리 연장 대가로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프랭크 로즈 국무부 부차관보는 독일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 호주와 탄도미사일방어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이미 이지스함 구입 이후 미국과 미사일 방어와 연관된 데이터 링크 훈련 등을 실시해왔고 미사일 정보도 공유교환하고 있어 사실상 미국, 일본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에 편입되어 왔다. 정부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이며 저고도에 국한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한미일 MD편입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전체 미사일 방어체계의 일부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국방부는‘개정된 미사일 지침을 토대로 우리의 미사일 능력을 대폭 확충할 것’이라며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기 위한 미사일 개발과 북한의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요격하는 일련의 시스템 ‘킬 체인(Kill Chain)’ 구축,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를 위한 국방예산 증액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 4월 국산 지대지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발표하면서 “현재는 필요시 북한의 어느 곳이라도 즉각 타격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와 파괴력을 지닌 미사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혀 이미 충분한 대북억지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게다가 F-15 편대 등으로 종심폭격 능력을 구비한 공군력은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 이미 북한의 전력을 압도하는 충분한 군사력을 구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미사일 사거리가 연장되지 않으면,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미사일 전력은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선제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충분전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그 자체로서 매우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구상이다. 게다가 이를 빌미로 방만한 방위산업 연구개발(R&D) 분야에 2조 이상의 돈을 퍼붓는 것도 현재로서는 현명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국방부는 미국의 MD에 편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국민 앞에 밝혀야 하며, 미국의 군사정책이 아닌 방어충분성에 입각한 독립적인 군사전략을 세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명분으로 적정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국가재정을 낭비하려는 움직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미사일개발과 같은 군비증액이 아니라 한반도 긴장악화 조치를 해제하고,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 그리고 비핵화 실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한발씩 나갈 수 있도록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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