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2-10-24   2244

[칼럼] 평화권 ② – 군사기지 막는 시민들, 참전 거부하는 군인들

지난 10월 19일(금),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 서울지방변호회, 평화권연구모임 공동 주최로 “평화권 원탁워크숍 – 평화권의 국제적 논의와 한국에서의 수용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이신 김재명 선생님께서 프레시안에 평화권 관련 기고를 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총 3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군사기지 막는 시민들, 참전 거부하는 군인들

일본, 미국, 독일의 판례


김재명 프레시안 기획위원. 국제분쟁전문기자. 성공회대겸임교수 

 

 

21세기 들어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잇달아 전쟁이 터졌고, 바로 이 땅에선 이른바 SKY(쌍용, 강정, 용산)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 가운데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전쟁이나 군사기지 건설 같은 국가적 사업은 국가안보나 국가이익을 내세우면서 그 뒤에 숨은 자본의 이익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국가폭력의 성격을 지녔다.

 

아프간과 이라크전쟁, SKY(쌍용, 강정, 용산) 사태 등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몸과 마음을 다쳐 지금도 아픔을 겪는 사람들은 곧 우리 인간의 타고난 권리 가운데 하나인 평화권(평화적 생존권)을 국가폭력으로 빼앗긴 희생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워낙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니 어지럽고 의문투성이다.

 

베트남 전쟁 개입 반대 시위가 지구촌을 들끓게 했던 격동의 1960년대를 고민하며 살았던 프랑스의 지성 레이몽 아론은 “어지러운 시절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아프간 전쟁이나 SKY 사태가 무슨 의미를 지녔고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 한다.

 

10월 19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인권법센터, 서울지방변호회, 평화권 연구모임이 공동 주최한 평화권 원탁 워크숍 ‘평화권의 국제적 논의와 한국에서의 수용 가능성’은 사람들의 그러한 궁금증을 올바로 풀어주는 모임이었다. ‘평화권’을 잣대로 삼아 국가폭력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그와 관련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모색해보려는 것이 모임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평화권’은 20세기 후반기에 국가폭력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비판하면서 떠오르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그 용어조차 익숙하지 않은 형편이다. 따라서 이에 관심을 가져온 법학자들과 시민활동가들이 일반 시민 학생들과 함께 모여 8시간 동안 진지한 의견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평화권 원탁 워크숍’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프레시안>은 평화권 논의가 지닌 현실적 의미와 시의성을 고려해, 모두 3회에 걸쳐 평화권 워크숍에서 다뤄진 발제내용을 소개한다. 이미 소개한 ‘평화권이란 무엇인가?'(세션 1) 에 이어 ‘평화권 및 평화운동 해외 입법 및 판례'(세션 2)에서 3명의 법학자들이 각기 일본, 미국, 독일의 사례를 중심으로 발제한 내용을 간추려 본다.

평화권
▲ 평화권 워크숍에서 일본과 미국, 독일의 사례를 발표하는 법학자들. 오른쪽부터 오동석 아주대 교수, 이경주 교수, 박경신 고려대 교수, 박진석 변호사(사회자). ⓒ김재명

 

일본의 평화적 생존권 (이경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경주

▲ 이경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평화적 생존권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권리로서의 구체성을 결하고 있다는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군사대국을 꿈꾸고 있는 일본 정부가 수십년간 변치 않고 내고 있는 붕어빵 논리 그대로이다.” ⓒ김재명

“평화적 생존권이 일본에서 헌법담론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다. 일본국 헌법의 비무장 평화주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가 1950년대 이후 특히 한국전쟁 이후 자위대를 창설하고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이 국민 일반의 평화적 생존을 침해할 가능성이 농후해지면서부터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 일본국 헌법 전문에 있는 ‘평화 속에서 살 권리’라는 개념을 체계화한 것은 호시노 야사부로(星野安三郞)이다. 호시노는 1962년 ‘평화 속에서 살 권리’를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말로 체계화하면서 일본국 헌법을 평화국가의 헌법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평화적 생존권은 구체적으로는 일본국 헌법 제2장 제9조(전쟁포기 군비금지)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평화적 생존권은 다름 아닌 일본국 헌법 제9조의 인권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미사일 기지 건설은 평화적 생존권 침해”

 

“이 격랑의 와중에 주민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은 후쿠시마 시게오(福島重雄)라는 판사였다. 후쿠시마 판사는 1973년 ‘일본 헌법에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 규모로 보나 장비로 보나 군대에 해당하는 자위대를 두는 것은 헌법원리에 반하며, 따라서 자위대의 일부인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해제는 공익과 무관하다’고 판결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보안림 해제처분이 일본국 헌법 전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나이키미사일 기지가 설치되면 유사시 상대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는 바,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자위대 사격연습장의 철조망 끊다

 

“평화적 생존권이 법원에서 주장된 것도 이와 비슷한 시기(1960년대)이다. 홋카이도에서 목장을 경영하던 노자키 형제가 목장에 인접한 육상자위대의 사격연습에 의한 피해를 호소하다가 결국은 연습장의 철조망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였는데, 특별변호인을 맡았던 홋카이도 대학의 후카세 타다카즈(深瀨忠一) 교수는 ‘평화적 생존권은 사법적 구제수단에 의해 재판상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라고 주장하였다”

“1969년 나가누마(長沼)소송은 (일본 항공자위대가) 나이키 미사일기지를 홋가이도의 나가누마에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보안림 지정을 해제하고 이 자리에 소련을 겨냥한 미사일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였는데, 지역주민들은 이에 반발하여 보안림지정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역주민들은 ‘공익’을 이유로 보안림지정을 해제하는 것은 정부의 행정편의이자 정부가 생각하는 공익일 뿐이지 주민들의 공익, 곧 평화적 생존에 대한 배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항변했다”

“용기 있는 지역주민과 헌법 원리에 충실한 재판을 하고자 했던 판사의 양식이 어우러져 헌법학자뿐만 아니라 평화애호세력을 흥분시켰던 1심판결은 이후 초점이 흐려지고 말았다. 상급법원에서는 자위대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갖는 국가적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이른바 ‘통치행위론’이라는 논리로 평화적 생존에 대한 즉답을 피한 것이다. 결국 나가누마에는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가 설치되었다. 현재는 나이키미사일 대신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어 오늘도 가상의 적을 노리고 있다”

 

하쿠리 기지 건설 반대투쟁

 

“평화적 생존권은 다시 동경 부근의 하쿠리(百里) 기지 소송에서 제2라운드를 맞이하였다. 이번에는 군사기지 건설을 위한 국가의 토지매매계약이 평화적 생존권 등 일본 헌법에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주장에서 비롯하였다. 일본 방위청은 1956년 항공자위대 하쿠리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주민들은 자위대는 일본국 헌법 제9조가 금지하고 있는 군대에 해당하며 군부대가 들어서면 평화적 생존이 저해된다는 이유로 격심하게 반발하였다.

 

“한 반대파 주민은 하쿠리 기지가 완공되면 관제탑이 들어설 자리의 땅을 땅 소유자로부터 미리 사들이고 대금의 일부를 지급하고 소유권 이전 가등기까지 마쳤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원래의 땅 소유주를 회유하여 잔금채무 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취소하도록 하고 결국 국가 소유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였다. 법원은 국가가 체결하는 사법상의 계약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국가의 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서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사법판단을 회피하였다”

 

해외파병 막으려는 ‘시민평화소송’ 봇물

 

“평화적 생존권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일본 정부가 군사대국화를 지향하여 자위대의 해외파병 실적을 쌓고자 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걸프전쟁에 대한 자금지원, 전쟁 종결 후 기뢰제거 명목의 파병, 전투 중 후방지원 명목의 파병, 전투 중 비전투요원의 파병이라는 식으로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점차적으로 넓혀갔기 때문이다. 이에 위기 위식을 느낀 평화애호 세력들은 평화적 생존권의 이름으로 일본정부의 반평화적인 공권력 행사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련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1991년 걸프전 참전 다국적군에 대한 일본정부의 전비부담행위의 위헌성을 묻는 ‘시민평화소송’이 동경, 오사카, 나고야, 가고시마 등의 각지에서 제기되었다. 걸프전 종결 후 기뢰제거를 명분으로 한 자위대 파병에 대해서도 이를 위헌이라고 하는 소송이 제기되었으며, PKO법에 근거한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병에 대해서도 1993년에 동경, 나고야, 오사카 등지에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사이타마에서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에 대한 평화소송이 이어졌으며,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소송이 이어졌다”

 

한국과 일본 법원, 같은 붕어빵 논리

 

“이러한 소송들은 공통적으로 청구취지를 파병집행정지로 하고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청구권은 파병집행정지의 근거로 평화적 생존권과 납세자의 권리로 하고 있다. 국가배상의 피침해 이익으로서는 법적 보호가치가 있는 인격적 가치 등이 주장되는 등 평화적 생존권은 이러한 일련의 ‘시민평화소송’의 핵심적 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법원은 이러한 일련의 소송에 있어서, 나가누마 소송의 1심에서와 같이 평화적 생존권에 대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언급한 논리 즉 ‘평화적 생존권은 그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권리로서의 구체성을 결하고 있다’는 논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군사대국을 꿈꾸고 있는 일본 정부가 수십년간 변치 않고 내고 있는 붕어빵 논리 그대로이다. 군사대국이 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 논리를 일본에서의 평화적 생존권 관련 논의의 전부인양 치부하고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보다 주권자에게 물어보는 정치 중요”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규범이 아니라고 문전박대 당하게 되면, 일반인과 일선 공무원은 물론 일부 헌법연구자조차도 마치 헌법재판소가 사형선고를 내린 것으로 이해하게 되고, 평화운동의 주체들조차도 새로운 활로가 없는 것으로 낙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헌법재판소에 물어보는 정치’가 아니라 ‘주권자에게 물어보는 정치’, ‘주권자의 대표들에게 물어보고 다그치는 정치’가 평화적 생존권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에 의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평화적 생존권 개념을 더욱 엄밀히 벼리는 작업과 더불어 평화운동의 지평 확대를 위한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치규범으로서의 평화적 생존권의 내용을 벼리는 작업도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강정마을, 평택 등 기지이전 및 건설의 문제로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이 논란이 되었던 곳에서 이를 평화적 생존권의 차원으로 격상시켜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에서의 평화권 논의: 불법적인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에서 법률가들 사이에서의 평화권 논의는 매우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또 실제로 ‘평화권’을 하나의 권리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2년 7월 UN인권이사회가 시리아, 수단, 중국 등이 지지하는 평화권 결의를 통과시킬 때 유일하게 반대를 하였다. 평화권 선언이 제7조에서 ‘외부점령(foreign occupation)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여 미국정부에 대한 테러를 정당화한다는 이유였다”

 

“실제 미국에서는 미국이 ‘평화’, ‘인권’등을 확립하겠다는 명분으로 미국 영토 밖에서 전쟁을 일으킨 사례들이 많아, 평화권 논의가 미국 국민들이 미국 정부에게 요구할 긴박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도 하며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 또는 ‘보호의무(responsibility to protect)’ 논의와 같이 ‘전쟁을 일으켜야 하는가?’에 대한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전쟁을 일으켜도 되는가?’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아 보인다”

 

박경신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법률가들 사이에서의 평화권 논의는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차원에서 특히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 입장에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재명

 


이라크 참전 거부한 청년장교


“그러나 법조계를 떠나 시민들의 차원에서 특히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 입장(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라는 측면)에서 ‘전쟁을 일으켜도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어렌 와타다(1978년생) 중위가 한 보기다. 그는 2003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9.11사태에 충격을 받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8년 계약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그러나 군에 입대한 후 2005년경 자신이 이라크에 배치될 것을 알게 되자 2006년 6월 ‘이라크자유’ 작전의 소집명령에 불응하였다”


“어렌 중위는 이라크에는 전쟁의 근거가 되었던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어 ‘침략전쟁’을 금지하는 UN헌장, 제네바협약, 뉴렌버그 원리 등을 모두 위반할 뿐만 아니라 미국헌법 및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를 위반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이라크전쟁은 국제법 및 미국헌법 상 불법적인 전쟁이며 이 전쟁에 자신이 참여할 경우 자신은 ‘전범’이 될 수밖에 없다며 소집에 불응했다”

현역군인이 전쟁 불법성을 재판에서 입증하면…

 

“어렌 중위는 ‘9.11사태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길 요청하였으나 군은 불응했다. 군은 이라크에 비전투부서에 발령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이번에는 어렌 중위는가 거부하였다. 이에 미군은 그를 군사재판에 회부하였다. 존 헤드 군사판사는 2007년 군사재판에서 전쟁의 합법성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소집명령은 유효하고, 어렌 중위는 그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유효한 명령인지 어렌 중위가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 입증할 준비를 검찰이 전혀 하지 않자, 재판의 무효(mistrial)을 선언하였고 어렌 중위는 아무런 징계 없이 2009년에 전역했다”

 

“재판의 무효선언에는 소집불응죄(missing movement)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배경이 된다. 즉 단지 소집에 불응해서는 아니 되며 ‘소집에 응할 의무가 있음을 알면서’ 소집에 불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소집불응죄를 위와 같이 특별한 의도를 가진 소집불응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앞으로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전쟁의 합법성/불법성에 대한 믿음’에 따라 소집에 불응할 공간을 창출한 것으로 여겨진다. 즉 군인들이 진정성 있게 전쟁의 불법성을 믿었고 이를 재판에서 입증할 수 있다면, 소집불응죄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 평화주의의 구현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은 일본과 함께 대표적인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서 군국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헌법 규정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군대의 입헌적 개혁을 하였다. 국제평화주의에 충실한 헌법은 전쟁수단으로서의 군비를 축소ㆍ제한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독일기본법 제26조 제2항은 ‘전쟁수행용으로 지정된 무기는 연방정부의 허가를 얻어야만 제조ㆍ수송ㆍ거래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군비에 대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

오동석

▲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독일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군인들은 비판적도 읽을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국가안보 지상주의의 병영국가이다. 헌법조차 군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 군대는 ‘국가 안의 국가’이다.” ⓒ김재명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국제평화주의를 구현하는 방법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조항도 있다. 양심적 반전권이란 자신의 종교적 혹은 양심적 신조에 반할 경우 군복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독일기본법 제4조 제3항이 이에 해당한다. 독일기본법 제4조 제3항은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집총병역을 강제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베를린 티어가르텐 법원의 판결을 참조할 만하다. 이 판결은 유엔(또는 유엔안보리)의 승인을 받지 않은 무력사용의 국제법 위반여부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이 재판의 리클레더 판사는 독일법 상의 일반적 해석에 따를 때 선택적 집총거부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법한 병력동원을 회피하고자 하는 병사에게는 탈영이나 군무이탈의 길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참전거부 호소도 무죄 판결

 

“1999년 3월 24일에 개시된 나토의 코소보 공습에 독일군도 참여했다. 크리스티디스씨 등은 독일군 참전에 반대하면서 참전 독일군인 등에게 직접 반전평화를 호소했다. 그것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후의 재판은 크리스티디스씨와 함께 호소문을 실은 평화연구자 폴커 뵈게의 경우를 통하여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는 1심에서 범죄행위를 공공연히 호소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2심과 베를린 주 최고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다만 무죄판결의 근거는 나토군의 코소보 공습에 대한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 의사표현의 자유였다”

 

“군사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의 경우에는 국제적 조류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군 사법개혁마저 군 지휘부가 반발하여 실패한 경험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은 독일군을 폐지하였으나 동서간의 냉전질서가 공고화되자, 독일은 1955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이 되었고, 연방군을 창설하였다. 1956년 3월에 남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헌법규정을 신설하고 병역법을 제정하였다. 수 천 명의 청년들이 헌법상의 양심적 병역거부권(제4조 제3항)을 원용하며 병역을 거부하자, 1960년에 대체복무법을 제정하였다.

 

‘제복을 입은 시민’

 

“독일은 군대에 관하여 많은 헌법규정은 물론 많은 법률을 제정하였다. 예를 들면, 군형법, 병역법, 군인지위법, 군인징계법, 군인소원법, 국방감독관법, 군내양성평등법, 병역거부법, 대체복무법, 대체복무자대표위원법, 군인참가법, 군인급여법, 부양보장법, 일자리보호법 등이다. 독일의 군대 개혁은 민주적 헌정국가의 관념을 군사적 영역에 확장시킴으로써 군조직이나 활동에 대해 입헌적 통제를 가동하는 것이다”

 

“독일에선 ‘제복입은 시민’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기원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나오는 ‘무기를 든 시민’에서 찾고 있다. 민주적 시민적 지휘도 맹목적 군인상을 극복하고 독자적인 판단을 통해 비판적이고 시민적 용기를 발휘하는 깨어 있는 군인상을 전제한다. 제복입은 시민 개념의 근본적 함축은 군인도 우선은 일반시민과 동일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독일의 군인은 능동적 시민이고 정치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현역 독일군 소령의 항명

 

“종교⋅양심⋅신조의 자유권은 군인에게도 인정된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라는 상관의 명령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이 있다며 개발을 거부한 장교의 행위를 연방행정법원은 양심의 자유에 속한다고 판단하였다. 독일군 파프 소령은 2003년 4월에 군사용 소프트웨어의 개발명령을 불법적인 이라크 전쟁과의 관련성을 이유로 거부하였다. 이에 군당국이 강등조치를 취하자 항소하였다”

 

“파프는 연방군이 쿠웨이트에 주둔하는 점, 독일군이 공중경계관제체계(AWACS) 비행에 관여하는 점, 독일내 미군기지를 보호감시하는 점, 이라크에서 전투중인 미군의 영공 통과와 착륙을 지원한다는 점을 아울러 비판하였다. 소령은 이러한 행위들도 헌법과 국제법에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나토협정이나 독일과 미국 간의 군사협정이 유엔헌장에 반하는 전쟁을 수행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연방행정법원은 소령의 직무위반행위를 증명할 수 없고, 복종의무 위반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독일행정법원은 양심의 자유는 군대의 명령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군인은 군복무가 양심에 반한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언제든지 군대를 떠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종래에는 대체복무를 해야 했지만 현재는 징집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징병제를 폐지하지 않았지만 2011년 7월 1일부터 징집을 중단하였다”

 

비판서적 읽을 수 있고 노조 가입할 수도

 

“독일 군인은 시민과 동일하게 정부정책이나 시대에 대하여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도서를 읽을 수 있다. 헌법 제5조 제1항 2문상의 알권리는 공동막사에 거주하는 군인에게도 전면적으로 인정된다. 따라서 군인은 온갖 종류의 신문, 도서, 인쇄물을 수령할 수 있고, 라디오를 청취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다. 도서를 읽을 권리는 헌법 제5조의 표현의 자유에서 가장 내면적인 정신활동에 속하는 것으로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거나 책을 출판할 권리보다 두텁게 보호된다. 시민사회의 법원이 금지시킨 도서라면 군 당국이 금지할 수 있다는 규제동일성의 원칙이 이 문제에 대한 합당한 해법이다”

 

“독일헌법 제17조의a가 군인의 집회의 자유를 법률을 통하여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군인의 집회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지는 않았다. 군인법 제15조 제4항은 정치적 행사에 제복을 입고 참여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군인은 조합이나 단체를 결성할 수 있다. 군인법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군인은 헌법 제9조 제2항의 단체활동의 한계(형법 헌법질서 국제친선에 반하는 단체의 금지) 안에서 결사의 자유가 인정된다. 헌법 제9조 제3항의 노동조합과 직업단체의 가입⋅조직⋅활동권과 비가입⋅탈퇴권이 군인에게도 인정된다”

 

“한국은 병영국가, 군대는 국가 안의 국가”

 

“한국은 국가안보 지상주의의 병영국가이다. 헌법조차 군사주의를 탈피하지 못하였다. 예컨대 헌법 제27조 제2항 일반국민이 군사법원 재판을 받을 가능성, 헌법 제74조 제1항 대통령의 국군통수권, 헌법 제77조 제3항 비상계엄시 기본권 또는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대한 특별한 조치 그리고 일제의 계엄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계엄법, 헌법 제110조 군사법원 조항, 특히 동조 제4항의 단심제 및 “사형” 규정, 헌법 제27조 제2항 군인의 국가배상청구원 부인 등이다”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 군대는 ‘국가 안의 국가’이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부정, 이른바 ‘불온서적’의 영내반입 금지, 군형법 제92조의 ‘계간 기타 추행’죄 등과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무능력과 반인권성이 문제이다. 군사적인 문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압도한다. 불법이 난무한다. 주한미군의 무상 주둔과 미군기지의 환경 오염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한 손해배상 및 주한미군기지 이전 관련한 한국 정부의 금전 지출 등이 문제다. 제주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결론적으로, 군대에 대하여 인권적이고 입헌적이며 의회민주주의적인 통제 그리고 군인의 인권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또한 문민통제 원칙의 재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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