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5-08-15   1253

<안국동窓> 무솔리니, 히틀러 그리고 히로히토

2차대전이 끝나고 어느덧 60년이 되었다. 우리에게 60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가 어울려서 60개의 갑자를 이룬다. 따라서 60년마다 자기가 태어난 갑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올해는 2차대전이 끝나고 1갑자가 되는 해이다. 갓난아기가 늙은이가 되는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2차대전의 상처는 모두 잘 아물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공식적으로 56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파악되었고, 실제로는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1945년의 세계인구는 20억명 정도였으니 세계인구의 1/20이 2차대전의 직접적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1갑자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수의 직접적 피해자가 살아남아 있으며, 또한 그들 중의 많은 수는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2차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추축국이 일으킨 전쟁이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유럽 및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1937년부터 유럽의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일본은 중국침략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4년 뒤인 1941년 12월에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해서 이른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1942년 6월에 미국이 미드웨이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은 패전을 향해 치닫게 되었다.

추축국 중에서 가장 먼저 항복한 것은 이탈리아였다. 1943년 7월에 무솔리니(1883년생)는 반군에게 체포되었다. 이어서 같은 해 9월에 이탈리아는 무조건 항복했다. 1921년에 파시스트당을 세우고 1922년에 ‘로마로의 진군’이라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무솔리니는 결국 1945년 4월 28일에 총살되었다. 두번째로 항복한 것은 독일이었다. 히틀러(1889년생)는 1921년에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어서 1934년에 합법적으로 ‘총통’이 되었다. 그리고 1939년에 폴란드를 침공하여 2차대전을 일으켰다. 그러나 1944년에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 히틀러의 지배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무솔리니가 총살되고 이틀 뒤인 1945년 4월 30일에 히틀러는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자살하였다. 1945년 5월에 독일은 무조건 항복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지배자는 1926년 12월에 천황이 된 히로히토(1901년생)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켜 2차대전을 사실상 가장 먼저 시작한 일본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항복에도 단연코 항복을 거부했다. 천황은 ‘옥쇄’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 2차대전에 관한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일본이 이미 항복하기로 했는데 미국이 무리하게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에 발굴된 사료는 일본이 ‘결사항전’하기로 했으며, 핵폭탄의 투하는 이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거의 ‘악’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어떤가? 2차대전의 3대 전범인 히로히토의 이름이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함께 다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사형당하거나 자살한 뒤에도 전쟁을 강행하여 결국 핵폭탄 투하라는 극한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보자면, 히로히토는 무솔리니와 히틀러보다 훨씬 더 악랄한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지기는커녕 아예 전범으로 다루어지지도 않고 있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최초의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사흘 뒤인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다시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그리고 8월 15일에 천황은 조칙을 발표했다. 핵폭탄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문명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끝낸다는 내용이었다. ‘항복’은커녕 ‘패전’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오직 ‘종전’이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인류문명을 위한 종전’이었다. 2차대전 뒤에 전범재판에서 히로히토는 어떤 재판도 받지 않았다. 1946년에 ‘신’에서 ‘인간’으로 변했다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히로히토의 모든 죄는 묻히고 말았다. 전범으로 처벌받은 자들은 모두 히로히토의 부하들이었다. 결국 최고 명령권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으나 그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벌인 자들은 처벌을 받는 모순적 상황이 빚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일본의 지배세력은 전범재판이 승전국이 패전국에 가한 부당한 처벌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주장의 연속선에서 그들은 일본이 저지른 침략과 학살과 약탈의 역사를 여전히 ‘해방’의 역사로 제시하고 있다.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역사 왜곡의 뒤에는 올바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자리잡고 있다. 2차대전의 3대 전범인 히로히토를 부당하게 용서한 역사가 결국 모든 전범의 부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0년 동안 유태인은 히틀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모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히로히토는 동양의 히틀러이며, 동양의 무솔리니이다.

전범 히로히토와 전범국 일본의 부활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소산이다. 미국은 히로히토를 사형대에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을 이용하여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히로히토를 살리고 일본의 죄를 제대로 묻지 않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일본이 우리의 ‘원수’라면, 그 배후는 바로 ‘미국’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직계인 일본의 지배세력은 미국과는 싸우지 않으나, 미국의 힘을 배경으로 한국이나 북한이나 중국과는 싸울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의 지배세력은 일본을 ‘사실상 핵무장국가’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노력은 이미 충분히 큰 성과를 거두었다. 동북아는 물론이고 이미 세계 전역에 ‘일본 핵위협’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일본의 지배세력은 일본이 핵폭탄의 피해국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무도한 세력은 이런 식으로 일본 국민을 또 다른 전쟁과 패전으로 이끌고 있다. 동북아 평화는 세계 평화의 한 축이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전범국 일본의 정체를 널리 잘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전쟁과 패전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의 지배세력을 제어하는 것이다. 히로히토를 역사의 법정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와 같은 자리에 서게 하는 것은 그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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