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03-07   484

‘바람의 딸’ 이라크 간다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스프링(spring)같았다. 통통 튀는 목소리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수철의 탄력성이, 방긋 웃는 얼굴에서 봄의 화사함이 피어올랐다. 세계의 오지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 같다. 이젠 그 힘으로 난민들의 시름을 달래 주기 위해 이라크로 떠난다.






▲ 한 팀장의 바람은 전세계의 긴급구호팀이 없어지는 것.

오지여행가에서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활동가로 변신한 지 두 해를 넘긴 한비야 씨. 이라크 전에 대비해 각국 월드비전의 일원들이 모이고 있는 현지에 그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파견된다. “나 한 명으로 한국구호활동가들의 수준을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깨가 많이 무거워요.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차적으로 꾸려진 선발팀은 현재 이라크 국경근처인 터키, 시리아, 쿠웨이트 등지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이라크 난민들을 돌보고 있는 상태다. 물, 식량, 의약품, 천막 등을 적재적소에 확보할 인력배치도 끝났다. 한 팀장이 하게 될 일은 긴급구호 홍보다. 현지의 상황을 살펴보고 어떤 물자와 도움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지원금이 필요한지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 오는 6월 파견될 예정이지만 언제 전쟁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의 촉각은 곤두서 있다.

“만일 전쟁이 시작되면 파견장소에 5-60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해요. 대기조예요. 현장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아요. 한순간의 오판이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니까요. 긴급구호팀원들에 대한 훈련시간이 길고 호된 이유죠.”

‘보고’라는 업무특성 때문에 한 팀장의 역할이 언뜻 종군기자들과 같아 보이기도 한다.

“전혀 다르죠. 종군기자들은 군인의 눈으로, 정치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서요. 상황이 어떤 지 건조하게 질문하는 그들에게 난민들은 입을 다물어요. 하지만 구호단체들은 다르죠. 우리는 당장 무엇을 도와주는 게 그들에게 가장 좋을지 고민하니까 그들 역시 속깊은 얘기를 꺼내요.”

“전쟁을 위한 명분은 어떠한 것도 있을 수 없다”

지금 세계의 눈은 온통 이라크에 쏠려 있다. 아프간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멀어져가고 있다. 이미 월드비전 한국지부 차원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프간을 지나칠 수 없는 한 팀장은 이라크에 앞서 내주 아프간의 자완트라는 곳으로 떠난다.

“물자배치나 인력배치 등 기존사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다음해 사업을 구상하러 갑니다. 주민들과 만나 많은 얘기들을 나눌 예정이에요. 특히 아프간의 여성들의 경우 산파가 없어 출산을 하다가 죽는 사례가 너무 많아요. 이번에 가면 산파들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 “현장에서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아요. 한순간의 오판이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니까요.”
구호사업은 크게 ‘긴급구호사업’과 ‘개발사업’으로 나뉘어진다. 전자가 ‘응급수술’이라면 후자는 ‘회복’을 돕는 것. 아프간의 경우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제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라크에 전쟁이 일어나면 긴급구호사업이 즉각 진행된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

그는 아프간 난민들을 돕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일 하나를 소개하고 싶어했다. 한국정부가 민간단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지원한 자금 10만 달러(1억 3천여만 원)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린 것이다. 1만 원이면 2주일동안 아이들에게 밀가루와 콩가루, 설탕이 섞인 영양죽을 먹일 수 있는데 이 돈으로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을 겪었던 우리가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어요. 큰 자부심거리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들 역시 나중에 지도를 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은혜의 릴레이가 되겠죠?”

그가 말하는 긴급구호요원의 자격요건은 세 가지다. 추진력과 배짱, 고품질 인정! 한 팀장이 보기에 이런 요건은 “한국인에 딱이다”. 그는 특히 고품질 인정을 손꼽는다. “상대방의 처지에 그대로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은 단연 한국사람이에요. 그 인정 아무도 못따라가요.”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라지만 한국사람의 그러한 끼를 십분 발휘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바로 한 팀장이 아닐까. 그가 느끼는 전쟁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전쟁을 위한 어떠한 명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 팀장의 바람이 “전세계의 긴급구호팀이 없어지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행가로서 난민들을 만났을 때 가슴아파하고 안타까워한 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한비야 팀장. 그는 여행가의 옷을 벗어버린 지 오래였다. 난민들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그의 몸에는 이미 긴급구호요원의 옷이 꼭 맞아 보였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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