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②] 삼거리 식당 밥 한끼의 힘은 세다

강정마을에 한 번이라도 와봤던 사람이라면, 삼거리 식당의 맛있는 밥 한 끼를 기억할 것입니다. 구럼비로 가는 길목 중덕 삼거리에는 누구에게나 열린 식당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온 연대의 식자재와 마을 삼촌의 정성으로, 강정에 온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채워줬던 삼거리 식당. 지금 그곳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귀포시는 최근 제주해군기지 옆 크루즈터미널 진입도로 건설을 위해 삼거리 식당과 해군기지 공사를 감시해왔던 망루, 지킴이들이 살고 있는 컨테이너 등 시설물을 강제 철거하겠다는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보내왔습니다.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삼거리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던 강정의 식구(食口)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연속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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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 ①] 제주 강정마을 삼거리 식당 밥, 기억하시나요? >> 클릭 
[연속기고 ②] 삼거리 식당 밥 한끼의 힘은 세다 >> 클릭 
[연속기고 ③] 저들은 왜, 밥 먹는 자리를 철거하려 할까요 >> 클릭

[연속기고 ④] 원희룡이 잠룡? 동의할 수 없습니다 >> 클릭

 

삼거리 식당 밥 한끼의 힘은 세다

[강정마을 삼거리 식당을 지켜주세요 ②] 우리는 여전히 강정앓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교사

 

 

마을 삼촌들은 종환 삼촌을 중덕이 아빠라고 부른다.

종환 삼촌은 내가 1학년 때부터 구럼비 바위에다 중덕사라는 천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그때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다 키웠는데 그 개가 중덕이다. 종환 삼촌은 중덕이랑 같이 구럼비 바위에서 살면서 할망물 식당을 열었다. 어렸을 때부터 구럼비 바위에서 낚시하는 거 좋아해서 동무들이 중덕 바닷가를 ‘종환이덕’이라고 할 정도였다는 종환 삼촌은 아직까지도 구럼비 바위가 그리워 자주 눈물을 짓는다.  

 

중덕 바닷가로 가는 길이 막히기 전인 지난해 여름 내내 은지와 나는 중덕 바닷가에서 살았다. 중덕사에서 자고 밥은 할망물 식당에서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할망물이 넘쳐흐르는 아래 샘에서 설거지를 했다. 할망물에 비누나 세제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밥을 깨끗이 먹고 물로만 설거지를 했다. 구럼비 바위에서 지낼 때는 할망물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됐다. 목마를 때, 설거지할 때, 발할 때 언제나 할망물이 다 해결해주었다. 그 할망물은 물길이 막히고 다 깨져 나갔을 거다. 그럼 할망물을 지켜주던 할망신은 어디 갔을까? 붉은발말똥게랑 맹꽁이랑, 새뱅이랑 함께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할망물 식당도 문을 닫았다. 종환 삼촌과 마을 삼촌들은 할망물 식당을 다시 중덕 삼거리에다 만들었다. 그 대신 이름을 ‘삼거리 식당’으로 바꾸었다. 평화지킴이들과 강정에 오는 손님들이 할망물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것처럼 요즘은 삼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김중미 글, 도르리 그림, 2013. 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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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김중미 글, 창작집단 도르리 그림 ⓒ 도르리

 

지금은 흉측한 해군기지가 되고, 하수처리장이 된 구럼비 바위를 그리워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은 그 구럼비 바위에서 아침기도를 하던 모습, 구럼비 바위 곳곳에 세워졌던 방사탑, 바위틈에서 만나던 붉은발말똥게, 구럼비 바위 틈에서 멱 감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할망물 식당에서 밥을 먹던 기억이다.

 

2011년 7월, 우리 ‘기찻길옆작은학교’ 청소년, 청년들이 인형극을 들고 강정으로 갔다. 우리는 구럼비 바위 위에 무대를 세우고, ‘개리 한 솥 밥’ 라는 인형극을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연이 예정된 그 날 중덕 삼거리에 컨테이너를 놓으려는 주민과 해군 간의 몸싸움이 있었고 인형극은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 학교 청소년, 청년들은 이미 강정앓이가 되어 있었다. 구럼비 바위와 아름다운 강정마을을 둘러 본 뒤, 어떻게든 강정마을과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3박 4일 일정을 끝내고 인천으로 돌아오기 전, 작은 학교 청년 넷은 일주일이라도 더 머물겠다며 강정마을에 남았다. 그들은 그 여름을 구럼비 바위에서 지내고 할망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해군기지 펜스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해 8월, 중덕 삼거리에서 문정현 신부님의 평전 <다시 길을 떠나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날 북적거리던 중덕 삼거리 한구석에서 나는 강정의 평화가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강정마을은 우리 작은 학교의 이웃마을이 되었다. 작은 학교 식구들은 강정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울고 웃었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고 애를 썼다.

 

삼거리 식당은 그저 밥 한 끼를 때우는 곳이 아니었다

 

2011년 9월, 중덕 삼거리로 가는 길이 막혔다. 그리고 할망물 식당을 지키던 중덕이 아빠 종환 삼촌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할망물 식당은 중덕 삼거리로 옮겨 와 삼거리 식당이 되었다. 삼촌이 감옥에 있는 동안 중덕이는 삼거리 식당을 지켰다. 그리고 평화 지킴이들과 주민들이 중덕이와 삼거리 식당을 지켰다.

 

그즈음, 보리출판사에서 발행하는 ‘개똥이네 놀이터’란 잡지에 강정 이야기를 연재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어느새 강정앓이가 된 나와 우리 청년들은 마음을 모았다. 나는 글을 쓰고 청년들은 ‘도르리’라는 창작집단을 만들어 삽화를 담당했다. 그리고 2년간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강정을 오가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삼거리 근처의 민박에 짐을 풀고 강정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취재를 하고, 공사장 정문 앞에서 하는 미사를 드리고 나서는 삼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그림

▲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 김중미 글, 창작집단 도르리 그림 ⓒ 도르리     

 

삼거리 식당은 그저 점심 한 끼를 때우는 곳이 아니었다. 한 밥솥의 밥을 나눠 먹는다는 것은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이었다. 강정 주민, 강정 지킴이들뿐 아니라 강정앓이가 되어 강정을 오가는 육지 사람들, 우연히 올레길을 걷다 강정마을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 일부러 강정을 찾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곳이었다. 나와 도르리도 그 삼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강정 식구가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우리 ‘기찻길옆작은학교’ 식구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그 삼거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 밥의 힘으로 강정의 평화를 비는 마음을 지속할 수 있었다.

 

삼거리 식당에는 우리 작은 학교 아이들이 그린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삼거리 식당이 사라지면 그 그림도 함께 사라질 거다. 그렇지만 그 걸개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의 마음, 강정마을의 오랜 역사와 공동체, 아름다운 자연이 더는 짓밟히지 않기를 비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강정앓이

기찻길옆작은학교에서 그린 그림
▲  기찻길옆작은학교에서 해군기지 펜스에 그린 그림 ⓒ 기찻길옆작은학교     

 

구럼비 바위로 가는 길이 막히고, 강정평화미사가 중단되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상징이었던 삼거리 식당마저 행정대집행이 진행되면 강정마을 저항의 상징들이 사라지고 만다. 어쩌면 해군은 그렇게 주민들의 저항의 의지를, 강정마을과 함께하던 연대의 끈을 그렇게 꺾고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구상권 청구 소송으로 주민들의 기를 꺾어 놓은 김에, 강정마을에 남은 저항의 보루인 삼거리 식당을 하루빨리 철거하고 만세를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폭력에 의해 짓밟힌 400년 역사의 마을공동체, 평화의 꿈은 구럼비 바위가 사라지고, 거리미사가 막히고, 삼거리 식당이 무너져 내려도 무너지지 않는다. 삼거리 식당에서 밥을 한 끼라도 먹어 본 사람은 안다. 함께 먹는 밥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강정생명평화미사가 멈추고, 쉐프 종환 삼촌의 삼거리 식당이 없는 강정마을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도 나는, 우리 작은 학교 식구들은 여전히 강정앓이로 강정과 손을 잡을 것이다. 삼거리 식당이 더는 없다 해도, 여전히 그곳에는 강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2016년 6월 18-19일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강정삼거리 생명평화 문화예술제>가 열립니다. 삼거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해주세요. 

강정삼거리 생명평화 문화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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