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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동맹
  • 2002.07.19
  • 973
  • 첨부 7

청소년들,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의 목소리



7월 17일 3:10 PM


▲ 학생들이 지하철에서 선전전과 함께 모금운동을 벌이는 모습
의정부역으로 향하는 국철 안. 바로 옆 칸에서 갑자기 '붉은 악마'가 들어섰다. 10명 정도의 남녀학생들이었다. 무슨 일이지? 표정들이 하나같이 진지했다.

순간 들려오는 씩씩한 여학생의 목소리. "승객여러분, 저희는 미군의 궤도차에 의해 숨진 여중생의 억울한 사건을 알리기 위해 나온 청소년들입니다. 미군은 사건의 진상을 숨긴 채 면피용 사과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불평등한 소파 협정 때문에 우리 손으로 재판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승객들은 여학생의 당찬 주장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지갑에서 돈을 꺼내 학생들이 들고 있는 모금함에 넣었다.

한 학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서울지역 고등학생들로 신용산역을 출발, 모금운동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단다. 그들 역시 이날 4시부터 의정부 역에서 있을 청소년 공동행동의 날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들보다 앞서 의정부 역으로 간 학생들 역시 이와 같은 선전전을 지하철에서 벌였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의정부 역에 도착한 '미군 잡으러 가는 붉은 악마들'의 걸음은 급했다.

이날은 서울지역 청소년들이 주축이 된 청소년대책위가 고 신효순, 심미선 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미군을 규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청소년 공동 행동의 날"을 마련, 집회를 열기로 했었다. 이미 21C 청소년 공동체 '희망'(http://www.no-usarmy.wo.to)이 인터넷을 통해 '행동의 날'을 알려온 터였다.

7월 17일 4:00 PM

집회를 시작하기 전 공연패 '천명'이 선보인 상황극은 실감나는 재연으로 집회 참가자들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금새 광장을 채운 청소년들은 바닥에 앉아 "청소년들 앞장섰다" "주한미군 각오하라"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 고 심미선 양의 오빠 심규진 군
그들 앞에 선 심미선양의 오빠 심규진(경민고 3년)군은 "친구생일 갔다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 다음에 본 미선이는 거대한 장갑차 앞에 깔려 있었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지는 심군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이렇게 처참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미군이 아직 밝히지 않은 진상들을 끝까지 밝혀낼 것"이라며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심군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너무 일찍 떠났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단다. 더 잘 대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효순아, 미선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사랑해...잘가..." 계속해서 스피커를 통해 지난 장례식에서 녹음되었던 효순이와 미선이의 친구들이 편지를 읽는 목소리들이 울려퍼지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까지 흐느끼고 있었다.


▲ '멈추지 않는 눈물...' 학생들은 함께 아파했다.
역 주변을 지나치다가 집회를 지켜보던 시민들 역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던 기자들 중에는 사진을 찍다가 눈물을 훔치느라 카메라를 내려놓기도 했다. 효순이와 미선이는 이미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의 여동생이자 시민들의 딸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곧 피붙이의 죽음으로 다가서 있었다.

7월 17일 5:00 PM

발언대에 오른 구본웅(송현고, 2년)군은 "인생의 3분의 1도 채 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고싶어 할 것"이라며 "제 2의 피해가 없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힘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힘없는 정부를 원망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미군이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명희 양은 "이제 청소년이 나서야 할 때"라며 "뭉치면 어떤 어른들보다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당찬 의지를 보였다. 또래 혹은 선후배들의 발언에 학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공감이 가는 말들에 박수를 보내며 호응을 해주었다.




7월 17일 6:30 PM

청소년들은 의정부 역을 출발하여 미 2사단 앞까지 행진을 하기로 했다. 행진을 하는 도중 만난 한 아주머니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일부러 집회에 참석한 분이었다. 강원도 철원이 고향이라는 아주머니는 어릴 적 미군들로부터 당했던 피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번번이 집 바로 앞까지 미군들이 탱크를 밀어붙였다고. "걔네들은 우리들이 어떻게 되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며 "우리 세대는 당하고만 살아왔는데 아들세대는 이 현실을 꼭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에 애를 데려왔다"고 말했다.

친구와 꼭 손을 잡고 땀을 흘리며 행진하고 있던 홍지현(광명북고, 1학년)양은 학교에서 집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친구와 나왔다. 미국에 대해서는 9·11테러 때까지만해도 동정을 했었다는 홍 양은 "오노 사건때 반감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더욱 그런 마음이 커졌다"며 "오만한 미국의 태도에 대해 정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7월 17일 7:10 PM


▲ 청소년 대표학생이 결의문을 낭독하는 모습
집회를 시작한 지 3시간여가 지났지만 청소년들은 여전히 다부진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미 2사단 앞에 도착하자 집회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이 자리에서 청소년대책위는 결의문을 통해, 사건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판관할권 포기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집회, 결사의 자유를 허락할 것을 학교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서 전해진 바에 따르면 몇몇 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갈 데가 아니다"며 집회 참가를 금지했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재판관을 포기하라" "미군은 한국 땅을 당장 떠나라"가 적힌 빨간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미 2사단을 향해 힘껏 던졌다. 전경들이 겹겹이 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탓에 까치발을 들고 멀찌감치 던지는 비행기를 좀처럼 부대 안으로 떨어트리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을 촬영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선 사진기자들은 보다못해 학생들로부터 비행기를 넘겨받아 부대 안으로 넘기기도 했다.




▲ 학생들이 종이비행기를 힘껏 던지고 있다


이날 청소년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는 "중, 고등학생이 이렇게 거리로 나오면 사회가 변한다고들 했다. 우리 역사가 그러했다. 지난 4·19 이후 처음으로 학생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들은 정통하고 있었다. 무엇을 요구해야 하고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그들은 머리로서만이 아닌 가슴으로서 느끼고 있었다. 오늘 그들은 함께 울고 함께 소리를 질렀다. 그들, 청소년들이 있기에 우리사회는 '변혁'을 꿈꾼다.


청소년 결의문

지난 6월 13일 10시 반쯤 조양중학교 2학년 심미선, 신효순 두 친구가 생일 잔치를 하러가다가, 미 2사단 44공병대(캠프하우즈)소속 워커 마크 병장이 운전하던 전차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날 사고를 낸 차는 도로보다 30센티미터 정도가 더 큰 전차여서 이미 예정된 사고였으며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는 등 아직도 이 사건의 정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난 후 주한미군은 훈련 도중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라며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죽은 두 학생들에게 모두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했다. 또한 미군은 어느 누구의 과실도 없었으며 자신들은 규정에 따라 운행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책임은 두 여학생들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비판여론이 높아지자 사건 발생 22일만에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했지만 책임자에 대한 자체 처벌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하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법무부가 주한미군 측에 재판관할권 포기 요청서를 내보냈으나 거부하였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이와 같은 현실로 인해 가슴아파하고 분노한다. 고 심미선, 신효순 두 학생은 15살 어린 나이에 쓰러진 우리 모두의 친구이며 동생이다. 더이상 우리 동생들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게 다 함께 모여 외치자. 아직은 힘이 약한 우리들이지만 뭉치면 그 어떤 어른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으며, 그 누구보다 정의로울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우리 "청소년 대책위"는 다음과 같은 요구를 적극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의 요구

하나.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여 공정하고 정확한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한다.

하나.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을 유족과 우리 국민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 이 사건의 관련자와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 주한미군은 이 사건에 대한 형사관할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 학교는 헌법과 <아동에관한국제규약>에 명시된 학생들의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2002년 7월 17일 "청소년 대책위"

김선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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