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4-08-06   554

<안국동窓> 스스로 부끄러운 ‘도둑 파병’을 보고

결국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를 향해 떠났다. 자이툰은 아랍어로 올리브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부대 이름을 이렇게 지은 까닭은 자이툰이 아랍인들에게 좋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도록 이라크파병부대의 이름을 자이툰으로 지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그럴듯한 작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지난 2월 23일에 창설되었다. 그리고 8월 3일에 이라크를 향해 떠났다. 3600명의 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2000억원의 예산을 쓰게 된다. 잘 알다시피 이 부대의 정식 이름은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이다. 오랫동안 사담 후세인의 학정에 시달린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자이툰 부대는 과연 그렇게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인가?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둘러싸고 지난 3월의 ‘탄핵정국’ 때처럼 또 다시 국론이 크게 나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탄핵정국’과는 아주 다른 형태의 전선이 만들어졌다. 원수들이 갑자기 동지가 된 것이다. 놀랍게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모두 ‘참전파’로 뭉쳤다. 반면에 대통령 탄핵을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고 싸웠던 시민사회세력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해서 ‘한·조중동 연합’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말 ‘동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적극적으로 ‘한·조중동 연합’의 동지가 되고자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를테면 적어도 이라크 파병에 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한·조중동 연합’에 투항해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이 정치인가? 이런 정치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물론 이런 투항의 이면에는 유일 초강대국, 유일 깡패제국 미국의 압력이 있다. 미국의 노골적인 협박에 맞설 의지와 능력을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김선일씨의 처참한 죽음이 있었고, 수많은 국민의 간절한 파병반대의 의지가 있었으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결국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했다. 아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무기력을 넘어선 비굴함 그 자체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비판에 맞서 ‘국익론’을 펼쳤다. 도대체 무슨 국익이 있다는 것인가? 2000억원의 돈을 써가며 이라크인들의 원수가 되는 것이 국익인가? 미치광이 부시의 재선을 돕기 위해 3600명의 젊은이들이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국익인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어설픈 국익론을 펼치며 파병을 강행한 것은 너무도 치명적인, 그리고 치욕적인 역사적 과오로 기억될 것이다.

이라크전쟁은 석유를 노린 부시의 침략전쟁이다. 이라크는 ‘9·11 공격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또한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보유하지 않고 있었다. 부시는 그저 전범일 뿐이다. 이런 침략전쟁에 군대를 보내서 동참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잘못된 것이다. 많은 이라크인들이 우리를 원수로 여기고 있으며, 이제 자이툰 부대의 파병과 함께 더 많은 이라크인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정부는 테러의 위험 때문에 자이툰 부대의 파병과 관련된 사항을 일체 보도하지 말도록 언론사에 요구했다. 헌법을 어기고 파병을 하면서, 다시 헌법을 어기고 포괄적인 보도통제를 시도한 것이다. 하나의 중대한 잘못이 또 하나의 중대한 잘못을 낳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이라는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면서 헌법을 지켜준 자랑스러운 국민을 노골적으로 속이고 억압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테러의 위험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스스로도 부끄러웠던 것이 아닐까? ‘한·조중동 연합’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몰아치고 나섰다. 왜 대대적인 환송식을 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평화재건’을 위해 떠나는 자랑스러운 파병에 대대적인 환송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녕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 도착적 수구세력과 한 패가 되고 말 것인가?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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