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3-11-05   640

<안국동 窓> 테러방지법이 아니라 파병철회가 답이다

주의깊은 독자라면,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정보원이 ‘테러방지법’이란 것을 제정하려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격렬한 저항과 공동행동이 있었고, 당시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 반인권, 위헌적이라는 이유로 법제정에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그때 우리는 ‘테러방지법’이라는 괴물의 탄생은 막을 수 있었다.

그후 월드컵은 테러방지법 없이도 무사히 치러졌고, 촛불시위와 대통령선거를 통해 참여정부가 출범하였다. 그런데 2003년 11월, 참여정부의 개혁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테러방지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국정원은 기존 법안의 몇 개 조항을 일부 수정한 후 연내입법을 목표로 국회와 정부를 전방위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일단 테러방지법(안)의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법안의 핵심은 테러방지를 위해 국정원이 주도하는 ‘대테러센터’를 설립하는 것인데, ‘대테러센터’는 테러정보의 수집외에 대테러활동의 기획·지도 및 조정을 하고 관계기관에 테러사건대책본부를 설치하여 국정원의 지도를 받도록 하며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운영하고 특수부대나 군병력의 출동을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테러센터 설립을 통해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과거 인권침해와 간첩조작으로 악명높았고,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각종 게이트 개입으로 ‘제버릇 남 못주었던’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해서 어디다 쓰겠다는 것인가. 그 개념조차 불분명한 테러를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또 얼마나 많은 악행이 발생할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국정원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국정원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후보시절 국정원의 국내사찰업무일체를 중지시키고, 해외정보만을 다루는 해외정보처로의 전환을 공약했다. 이회창 후보도 국정원의 국내정치관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국회와 감사원을 통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편 한나라당은 현정부 들어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에 반발하면서 국정원을 폐지하고 해외정보, 대북정보, 대테러정보의 수집업무만을 전담하는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기로 당론을 모으고 추진기획단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그후 6개월이 지났지만 국정원개혁은 감감무소식이다.

국정원 개혁방향은 명확하다. 정보기관이 가져서는 안되는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고, 국내정치사찰의 근거가 되어왔던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권한’을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이관하는 한편, 국정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예산회계특례법 등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시급한 개혁과제는 외면한채 왜 난데없이 테러방지법을 들먹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정원이야 생존논리상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국회가 여기에 부화뇌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회의 임무는 테러방지법 제정이 아니라 국정원법과 예산회계특례법 등 등 관련법규의 개정을 통해 국정원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다.

국정원에서는 법안제안이유로 이슬람테러의 확산위험을 들고 있다. 한국군의 추가파병방침에 따라 이라크와 이슬람세계에서의 반한감정이 높아지고, 다국적군에 대해서도 공격을 불사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는가 하면, 실제로 바그다드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과 한국 기업인이 이라크인들에게 납치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테러의 위협이 높아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라크 추가파병에 따른 테러위협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테러방지법을 제정한다는 논리는 본말이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테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파병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이라크전쟁이 침략전쟁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명백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미국 국민들까지도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CNN과 USA 투데이가 지난달말 실시한 설문결과, ‘이라크전쟁이 정당했다”는 응답은 4월의 71%에서 52%로 크게 줄었다. 반면 “군사개입이 불필요했다”는 응답은 25%에서 46%로 급증했다. 미국의 어느 석학이 지적한 것처럼 이제 미국인들은 ‘정글없는 베트남’을 보기 시작했다.

테러에 대한 대처는 테러발생원인에 대한 사려깊은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간과하고, 단순히 강제력에 의해 테러를 진압하는 미국식 방식은 절대로 테러방지에 효과적이지 않다. 이라크에서 본격적으로 반미게릴라전이 시작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도 자해폭탄테러와 보복살인이 끊이지 않고 있음이 그 증거이다.

테러방지를 위해 인류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문명간 이해를 통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미국의 침략적 행동은 더 큰 테러를 발생시킨다. 아니 미국의 행동 자체가 거대한 테러이다. 우리 국회와 정부, 특히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은 테러방지법을 통해 정보기관의 권력을 강화하고, 이로써 시민의 자유권을 침해하고 법치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 추가파병방침을 철회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행위를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중단시키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아니라 ‘파병철회’가 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테러방지법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켜야겠다면, 이 법을 통해 막고 싶은 테러의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테러의 예로 설명한다면 이럴 것이다. “테러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후 실제로는 석유에너지와 세계패권을 위해 벌이는 전쟁을 말한다. 본질은 침략전쟁이면서 겉으로는 자유를 위한 전쟁이나 해방전쟁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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