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8-11-11   862

북-미 관계의 진전과 삐라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는, 2008년 6월 북한에 대한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종료했고, 10월에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북한도 환영으로 화답했다. 이 두 조처는 북한과 미국의 적대관계 종언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많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깊은 이해에 기초하여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다른 국내법으로 경제제재를 지속할 수 있다. 북-미 관계의 역사를 볼 때, 이 사건이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이 한반도 냉전질서 해체와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 협력의 중심에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는 우리의 이익이자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태도는 모호하고, 시민사회는 분열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두 조처에 대한 한-미 협의가 있었음을 강조하면서도, 검증 결과 북한의 핵신고서가 적절하지 않으면 두 조처를 되돌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반미보수’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사회 세력의 형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양보’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작지만, 북한의 ‘양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북-미 관계의 ‘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다원성이 유감없이 표출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다원성이 낳은 문제 가운데 하나가, 민간단체가 남에서 북으로 보내는 ‘삐라’다. 북한은 자신들이 제안해서 열린 두 차례의 남북 군사실무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인신공격에다 현찰까지 담겨 있는 삐라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전단을 지칭하는 일본식 영어표현인 삐라는, 적의 위협을 전제로 성립된 냉전질서의 산물이다. 냉전시대에 북에서 남으로 보낸 조악한 삐라를 통해 북한은 자신들이 원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삐라는 독재정권의 사회통제 강화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했을 뿐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시민들 스스로 일구어낸 것이다. 북으로 보내는 삐라는 북한 사회의 퇴행적 변화를 부를 수도 있다.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북한 정부는 삐라 살포를 ‘절박한’ 군사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북한 정부가 삐라 문제로 그들이 표현한 것처럼, 남북관계를 전면 차단하는 ‘중대결단’을 내리게 될 경우, 남북관계는 2000년 6·15 선언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 회귀를 원하는 남북의 세력들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에게도 북한에게도 손해다. 냉전적 남북관계는 당면한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남북 모두 세계경제의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군사적 긴장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북이 상호 비방을 금지하기로 한 약속은 준수되어야 한다. 이익 관점에서도 윤리 관점에서도 그렇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음에도 적대적 타자를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이익 때문이었다. 즉 양보가 이익이었다. 경제를 생각하는 정부라면, 삐라를 살포하지 않도록 민간단체를 설득해야 한다. 북-미 관계의 변화로 생긴 기회를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고만 있어서도 안 된다.


북-미 관계의 진전과 삐라 문제는 우리 안과 밖의 타자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우리는 타자들과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윤리와 규범을 기초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정치사회 세력이든 당파적 이익의 관철을 위해 한반도 평화와 같은 공공의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면, 차이를 인정받기 어렵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

* 한겨레 신문 2008년 11월 11일자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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