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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5.02.22
  • 242
2005년 2월, 낡고 새로운 위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한반도 핵위기의 근원에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북한의 체제생존전략이 놓여 있다. 세계적 차원의 냉전구조 하에서 1950년대 말 미국의 핵우산이 한반도 남쪽에 펼쳐지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면, 냉전 종식 이후 한반도에 남은 국지적 냉전체제 하에서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세력불균형을 막아낼 유일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선택하였다. 2005년 2월 10일 발표된 북한 외무성 성명은 냉전의 틀에 갇혀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북한의 성명은 한반도 핵위기와 관련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를 만들었으며(2002년 12월 이후), 북한을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로 규정하고 ‘제도전복’을 위해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적대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6자회담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2005년 2월 이후). 이처럼 4차 6자회담에 대한 외부의 기대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허망한 것인가를 지적하지만, 북한은 완전히 문을 닫지는 않았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북한의 원칙적 입장이며,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최종목표이다. 북한은 과거에도 종종 그러했듯이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일정한 명분과 보장된 결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이 자신들의 성명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주요 근거로 지적한 라이스 국무장관의 국회인준청문회 발언은 어떠한가. 청문회 모두 발언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과 북한이 핵무기 야욕을 버리도록 세계와 함께 단합해서 요구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데에 유리한 세력균형을 만들고, 나아가 북한을 포함한 폭정의 전초기지에서 억압받고 있는 민중의 편에 서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경 발언의 앞뒤에서 대화와 외교가 강조되고 있다. 국무장관 지명자는 두 번에 걸쳐 “이제는 외교를 할 시점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세계유일의 패권국 미국의 강경보수파 정권이 이라크전쟁의 실패를 경험하고는 큰소리를 치면서 물러서고 있지 않은가?

사실 북한과 미국의 외교당국은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도, 진부한 안보관과 위험한 협상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핵무기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유일한 억지력이라고 믿고 있는, 아니 믿어야 하는 북한 강경파가 한쪽에 있고, 세력균형의 세계질서에서 외교는 폭정의 전초기지에 대한 전쟁의 연장(선제공격의 정당화를 위한 사전 작업, 소위 매파적인 개입정책)일 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니 국민들에게 그리고 세계에 강요하는 미국 매파들이 다른 한쪽에 있다. 그들은 대화와 협력의 미래가 필요하면서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서로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혀, 그리고 불신이 야기하는 힘겨루기의 노예가 되어 위기를 반복해서 일으킨다. 반복되는 위기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실질적 적대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식구조를 드러낸다. 영원한 위기 상황에서 체제와 정권의 유지를 위해 언제나 무력에 의존해야 하는 북한 지도부, 세계화 시대 유일패권국가의 지배집단으로 남아 있기 위해 세계질서의 군사화를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 신보수주의 집단, 양 세력의 적대관계는 포괄적이고 전면적이다.

반복되는 낡은 위기는 결코 지나간 위기가 아니다. 파국을 향한 한 걸음일 수도, 해결을 위한 한 고비일 수도 있다. 지난 1990년대 1차 핵위기를 되돌아보면, 여러 번의 소규모 위기들을 거쳐서 1994년 10월의 대타협에 이르는 과정 속에는 반복되면서도 또한 고조되어 가던 위기의 순간들과 그러한 위기들을 극복하려는 무수한 노력들이 있었다. 모든 반복되는 위기는 낡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위험요소를 담고 있다. 이 위험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낡은 위기는 진정 감당하지 못할 새로운 위기로 변화할 것이다. 2005년 2월의 위기는 한반도 거주자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김승국, “북한 핵무기 보유 선언의 파장 1 & 2”, 「평화만들기」, http://peacemaking.co.kr 참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지나간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남겨둔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전쟁 직전까지 갔던 1990년대 초중반의 1차 한반도 핵위기, 복병처럼 튀어나왔던 1990년대 말의 핵시설과 미사일 위기, 2000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이어졌던 그러나 너무 늦게 타결된 협상을 우리는 기억한다. 군비경쟁에 체제의 명운을 걸었던 소련의 붕괴,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향한 질주 아래에서 민중들이 받았던 고통과 끝나지 않는 카시미르분쟁,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패권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대국 중국과 제국 미국의 한반도전략은 민족의 운명이 칼날 위에 놓여 있음을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무엇보다도 이 순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라크의 전쟁과 비극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2차 한반도 핵위기와 관련하여 교훈이 되어야 한다. 남한은 파병을 통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고 자신들의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였는가? 미국의 이라크침공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전략적으로 또는 외교적으로 정당화해 주는가? 이라크전쟁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미국 신보수주의 세계전략의 실패가 북한의 대미협상력을 높여 주었나?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은 이라크침공에서와 다르게 주변국들로 하여금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을 지지하도록 만들 것인가?

남한 정부나 보수진영은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이 제국과 자신들의 사활적 이익을 놓고 전략을 수정하고 있을 때, 동맹의 논리나 혈맹의 신화에 안주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외교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면, 그리고 대국 중국과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점점 더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면, 남한은 외교에서 상대적 자율성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확보하려는 군사전략적 유연성이 동북아시아 전체를 향한 것이라면, 남한의 외교적 유연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2년 동안의 외교정책은 이런 점에서 매우 부정적이다. 이라크 파병은 국제사회에서 남한의 외교적 역량을 향상시키기보다는 반대의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특히 현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남북관계에서 외교적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강경정책에만 핑계를 대면서, 과거 정권들이 어떤 조건 하에서 고착된 남북관계를 돌파하려고 노력했는지 평가하려고 하지 않는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는 중국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한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한미동맹의 균형적 발전을 말하면서, 중국에게 지나친 기대를 거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과 미국은 어떤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인간 사회에서, 더욱이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좁혀질 줄 모르는 국제정치에서 국가는 의도한 결과를 자신의 전략대로 쉽게 달성하지 못한다. 이라크침략의 실패에서 교훈을 배워야 하는 것은 단순히 미국만이 아니다. 언제나 나타나는 의도와 결과의 어긋남뿐만 아니라 한번 작동하기 시작하면 되돌리기 힘든 관료기구의 경직성도 보아야 한다. 미국도, 또한 북한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관료기구의 경직성이 정책의 전환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2기 부시 정부 하에서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이미 결정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상황의 변화는 이 책상(이란)에서 저 책상(북한)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그리고 책상의 끝에 놓여 있던 서류(선제공격)를 한가운데로 끌어오도록 만들 수 있다. 북한은 지나친 모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과연 미국은 책상을 옮기고 서류를 당기기 전에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안고 있는 복잡성과 가변성을 올바르게 평가할 지혜를 가지고 있을까.

문제는 우리의 운명이다. 북한과 미국이 위험한 전략적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한반도의 평화는 그리고 남북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시간으로부터 채 배우기도 전에, 종종 우리의 인생은 다하지 않는가. 정말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일까?

남한 사회가 답을 할 때이다

위기에 익숙한 사회일수록 위기를 미리 예방하려고 더 많이 노력하고, 위기가 발생하면 더 잘 대처하는가? 아마도 남한 사회의 여러 경험은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내리려는 사람들에게 더 적절한 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2005년 2월의 한반도 핵위기는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시험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남한 사회는 심각한 내부갈등을 겪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이 갖는 중대성을 지적하기보다는 핵무기 보유 논리를 이해하려는 입장에서부터 대북포용정책의 실패를 강조하면서 대북적대정책의 명시적 추진을 요구하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위기에 길들어 있기 때문에 혼란이 표면화되지 않고 있지만, 위기가 점차 고조될수록 남한 사회의 내부갈등은 남한 정부의 외교정책 혼란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남북간 협력과 대화의 확대와 심화를 통한 위기돌파와 한미공조에 기초한 위기관리 사이에서 남한 정부가 엉거주춤하는 동안, 위기상황은 남한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과연 남한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 자신이 답을 해야 할 때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북한과 미국 사이의 양자문제로 보거나 핵무기비확산이라는 국제체제의 문제로 보는 태도를 벗어나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보유와 관련된 문제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한반도 핵위기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의 선제공격이거나 북한의 방어적 대응이거나 간에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피해자는 한반도 거주자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남북의 민중은 정신적, 경제적 피해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가장 큰 피해를,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받을 것이라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에게 설득을 요청하기 전에, 한미공조를 말하기 전에, 6자회담을 말하기 전에 남한이 나서야 한다. 남한의 정부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

대외정치를 하기 전에 국내정치를 해야 한다. 분열된 국론을 가지고는 외교를 할 수 없다. 구태여 양면게임의 분석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6자회담에서 상대적 약소국의 위치에 놓여 있는 남한은 국내여론의 결집이 없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북한 핵무기의 국제정치적 의미와 국제정치에서 작동하는 힘의 논리를 생각할 때, 그리고 이미 진전된 북한과 미국 사이의 말싸움과 신경전을 고려할 때, 우리의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다. 제한된 힘이나마 제대로 발휘하여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국민적 합의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과 정보와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인식과 전망을 공유하는 폭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정 위기를 위기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번의 위기를 마지막 위기로 만들려고 한다면, 우리 내부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만일 우리 내부에서조차 최소한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북한을, 나아가 미국을 어떻게 설득해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바라지 않는 결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정부, 여당, 야당, 언론, 전문가, 시민사회 모두가 자신의 책임 앞에 조심스러워야 한다.

남한 사회가 도출해야할 최소한의 합의는 전쟁의 예방이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위기의 해결이다. 남북이 전쟁을 겪은 후 반세기 넘게 체제경쟁과 군비확장을 해 온 상태에서 전쟁을 통해 평화를 실현하거나 압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너무나 단순하고 비현실적이다. 압박과 제재는 대안이 아니라 파국을 앞당길 뿐이다. 물론 1980년대 말에 시작되어 이제 겨우 15년을 조금 더 넘긴 남북경제교류협력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야 본격화된 당국간 협의와 민간교류를 생각할 때, 남한이 북한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창리 핵시설에 대한 의혹과 대포동 1호 시험발사(1998년 8월)의 위기를 넘어서, 남북은 2000년 정상회담을 실현하고(6월)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끌어내었다(10월). 당시에는 정치권 내부의 반대와 국민적 합의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실이 이루어졌다. 당시와 비교한다면 국내 사정은 오히려 좋은 편이다. 정상회담 이후 발전한 수년간의 남북교류는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 이해의 수준을 높여 놓았으며, 대화와 평화를 외치지 않고는 정권을 잡지 못할 정치집단들 역시 화해와 협력을 통한 분단 극복이라는 기본 방향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는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로부터 북한을 설득할 창의적 방안과 국가적 차원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남북공조와 한미공조의 대립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경험하였듯이, 남북한과 미국의 삼각관계에서 북한과 미국이 아니라 남한이, 대립이 아니라 화해를 추진하는 기본축이 된다면 남북공조와 한미공조는 선순환으로 작동한다. 북한과 미국이 표출하고 있는 적대와 불신의 언어 이면에서 협상과 타협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양자를 모두 설득해 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남한 정부는 한미공조나 한-미-일 정책협조를 이유로 섣불리 남북관계의 속도를 조절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가 유일한 돌파구로 남을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남북관계의 폭을 넓히고 신뢰를 더욱 높여야 할 때이다. 나타날지도 모르는 미국과 일본의 압력은 아직도 유효한 6자회담의 형식에 의존하면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균형을 활용해서 피해야 한다. 적극적이고 현상타파적인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 후, 북미접촉과 6자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 북한이 성명에서 남한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하지 않은가.

박순성 (동국대 교수, 평화군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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