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7-02-08   834

<안국동窓> 6자회담, 파란 신호등 켜질까?

결국 돌고 돌아 94년 제네바 합의로 귀결되나. 오늘(2월 8일)부터 시작되는 3단계 5차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동결과 사찰 수용 그리고 대북 에너지 지원 및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등에 대한 타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는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폐기했었던 제네바 합의의 내용과 유사하다.

물론 양자협상이 아니라 다자간 협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제네바 합의의 경로를 밟는다는 것은 북미간의 핵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이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부시 행정부가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6자회담의 진전을 막연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라크 등 중동정세를 고려하여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같은 상황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6년 동안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대북정책을 감안하면 무리한 분석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냉소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우선 긍정적인 신호가 지난 12월 6자회담 재개 이전에 미국으로부터 나왔다. 핵폐기 대가로 종전선언과 대북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BDA 동결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내걸던 북한의 태도 역시 지난 1월 북미간 베를린 회동 이후 분명한 변화가 있는 듯하다.

최근 보도된 미 국무부 2008년 회계연도 업무계획 보고서도 북한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해체 및 검증 시작을 목표로 2008년 내내 대북 핵협상을 지속하고 미사일 협상도 개시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북한과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북 측의 입장을 알 수 있는 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사찰 수용 의사를 미국에 이미 전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플루토늄 추출을 잠시 중단하겠다는 단순한 동결을 넘어서는 조치이다.

‘북한이 핵시설 동결의 대가로 경수로를 요구할 것’이라며 6자회담의 난항을 예고하던 일각의 보도도 즉각 부인되었다. 발언의 당사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과 조엘 위트 전 제네바 군축회담 대표는 북한이 ‘핵시설 동결과 사찰에는 에너지 지원과 제재 해제’, ‘해체에는 경수로 제공’이라는 2단계 핵폐기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2002년 미국의 북한 핵의혹 제기 이래 북한과 미국이 지금과 같은 적극적인 협상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국면을 기대하게 했던 9.19 공동성명도 북미간의 힘겨루기 끝에 채택되었으나, 이내 미 측의 후퇴로 1년 이상의 교착국면이 이어지지 않았던가. 최근 북미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핵폐기의 방향과 상호조치에 대한 큰 틀의 합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 경우 다른 참가국들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타결이 이루어진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총론이 아니라 각론이다. 우여곡절 끝에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지만, 그 이후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있었고 그것은 유엔차원의 대북제재로 이어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요구해야 할 조치들은 더 많아졌으나 스스로는 나름의 명분과 협상을 이유로 결코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각자의 요구목록은 길어졌고 이행에 관한 계산은 더 복잡해졌다.

폐기할 북한의 핵시설, 사찰 및 검증의 방식과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나 핵포기의 대가로 북한에 지원할 정치적, 경제적 조치들을 어떤 방식과 경로로 할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미국은 ‘북한의 모든 핵의 신고와 검증, 폐기’를 요구하고 있으나 현 시점에서 북한은 영변 핵시설 이외의 핵시설 폐기나 알려지지 않은 핵 프로그램의 신고는 협상에서 제외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북한이 요구하는 에너지 지원이 어떤 형태의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중유제공은 장기적인 에너지 대책이 될 수 없기에 다른 방식의 에너지 지원이 요구될 수 있다. 9.19 성명에는 5개국의 대북 에너지 지원과 남한의 200만 KW 송전 그리고 경수로 제공 논의를 담고 있는데 대북 에너지 제공문제 때문에 회담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처럼, 각국이 얼마만큼 분담할지에 대한 기대치는 상이하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없이 대북지원 없다’는 입장까지 밝히고 있다.

경수로 제공문제는 분담방식 이전에 북한에 핵발전소를 짓느냐 마느냐로 논쟁이 될 수 있다. 9.19 성명에는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해석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지난 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 청산작업에 들어간 상태에서 이것을 복원하는 것도, 새로 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큰 틀의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이행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최소한의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북한의 플루토늄이 쌓이는 만큼 핵폐기를 위한 문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이 느끼는 안보불안은 한층 커질 것이고,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남한과 일본은 지금보다 더 군비증강에 나설 것이다. 어떤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악순환이다.

먼저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야 한다. 안 그래도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지 않은가.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