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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 2003.02.14
  • 817

한국에 사는 이라크인 3인 연쇄인터뷰



이라크전쟁이 임박한 현실에서 반전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전세계 평화운동가들은 오는 2월 15일 400여 개국 동시반전집회를 통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힐 것이며, 넬슨 만델라에게도 '인간방패'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쟁과 평화,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머나먼 타국에서 가슴만 애태우는 이라크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라크출신 이주노동자들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체류중인 이라크출신 이주노동자는 총 12명. 그중 3명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라크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전해준 상황을 전달하며, 이라크 공격에 나선 미국에 대한 견해, 후세인 정권에 대한 입장을 토로했다.

스스로 '보통사람(Iraq normal people)'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은 한국 시민사회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라크 민중을 도와달라고 수 차례 당부했다. 혹시라도 닥칠 지 모르는 신변위협 때문에 모두 가명으로 인터뷰에 응한 점을 미리 밝혀둔다.


걸프전 종전 12년, 남은 건 가난과 질병

▲자그로스 마흐모드 집에 모여 심경을 토로하는 이라크출신 이주노동자들. 아흐마드 알리씨와 요셰프 핫산씨는 신변위협을 이유로 사진촬영을 불허했다. 왼쪽 끝의 여성은 자그로스씨의 부인인 다니엘 피카드씨.


입춘이 지났는데 삼각지에는 눈보라가 쳤다. 가로등이 비추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낼름 눈을 받아먹다 상념에 빠졌다. 경계 위에 선 사람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라크인들은 적어도 기자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 "미국도 후세인도 이라크 민중의 편은 아니"라는 판단. 그들의 생각은 객관적으로 틀리지 않다. 그들이 무심결 털어놓은 고백처럼 "정말 불행하게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전쟁을 찬성할 수도, 그렇다고 독재를 지속할 수도 없는 형편. 기자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그들의 내면을 솔직히 털어놓을 생각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의 현실이 더욱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건 우리가 딛고 선 현실이 분단조국이기 때문일까.

"1980년 이란·이라크전쟁 때 친형이 죽었습니다. 저와 정말 친한 대학친구도 죽었지요.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의사가 돼 있을 텐데…. 아주 슬픈 현실입니다. 나는 정말 전쟁이 싫어요.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요셰프 핫산(Yousief Hassan 34세·가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되뇌였다. 물기가 촉촉이 어린 그의 눈가엔 오랜 전쟁으로 남은 깊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걸프전이 끝난 지 12년 됐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가난과 질병뿐이에요. 전쟁 이후 후세인과 그의 가족은 부강해졌지만 이라크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지금 전쟁을 맞닥뜨린 이라크 민중들은 우유 한병 제대로 살 수 없는 형편이에요. 누구를 위해 전쟁을 벌입니까. 전쟁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획책하는 미국도 싫지만, 34년간 국민을 암흑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싫어요. 지금 이라크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 인권, 정의, 민주주의입니다."

요셰프 핫산은 한국에 온 지 5년 됐다. 그는 후세인정권의 쿠르드족 탄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한국에 망명신청을 낸 바 있다. 선적회사에서 통역을 하며 '쿠르드인 해방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빚을 전쟁의 참극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바스라에서 온 전언

한국에 온 지 1년쯤 된 아흐마드 알리(Ahmad Ali 32세·가명). 그는 인천 동암역 부근에서 사출 일을 하고 있다. 걸프에 면한 이라크 남부 최대의 항구도시 바스라가 고향이다. 그에 따르면 10명의 가족들이 바스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미 많은 친지들이 두 번의 전쟁으로 사망했는데, 또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족을 만날 수 없을 지 모른다며 불안한 눈길로 기자를 바라보았다. 지난 주, 그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그의 가족이 전달하는 바스라의 현실은 참혹했다.

"제가 이라크에 있는 가족과 자유롭게 통화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한국은 민주주의국가니까. 그러나 우리는 사담 후세인과 그 권부가 겨누는 총에 언제나 노출돼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발언을 할 수 없어요. 언제 어떻게 죽임 당할 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죠. 지금 이라크는 한국의 설날과 같은 하지 시즌이랍니다. 그런데도 가족들은 전화를 통해 음식과 약이 없다고 호소했어요. 지난주에 통화한 제 동생은 절더러 고통에 처한 가족을 도와달라고 울먹였지만 제가 그들을 위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답답합니다."

그는 이라크 민중들의 삶이 너무나 불행하다고 털어놨다. 후세인과 후세인의 가족, 권부는 풍족하게 살 수 있지만, 후세인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0명당 114명의 어린이, 우유가 없다

자그로스 마흐모드(Zagros Mahmoud 29세)는 한국에 온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전쟁과 독재에 숨막혔던 그는 2001년말 자유와 인권을 찾아 한국에 왔다고 고백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도착하고 출국심사를 마친 후에야 드디어 독재정권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젖었다는 그는 우울한 마음으로 이라크의 현실을 개탄했다.

▲자그로스 마흐모드씨와 그의 부인 다니엘 피카드씨. 한국에서 결혼한 두 사람은 미국이 벌이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분명히 밝혔다.


"이라크 민중들은 고통에 시달리는데, 사담 후세인은 자기 가족들을 위한 궁전을 20개나 지었습니다. UN이 가난한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 약과 음식을 줬지만 후세인은 그걸 나눠주지 않고 있어요. 인구 1000명당 114명의 아이들이 우유가 없어 먹지 못하고 있어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제도 심각한 문제지만, UN이 제공한 필수품을 국민에게 나눠주지 않는 후세인도 문제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피력했다. 자그로스 마흐모드씨의 말이다.

"한국도 군부독재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광주학살도 알고 있지요. 민주화투쟁 끝에 한국이 민주주의를 찾은 것은 부럽습니다. 우리도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후세인정권은 이라크 민중에게 결코 좋은 정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새로운 정부를 갈망합니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으로 우리도 한국 사람들처럼 핸드폰도 갖고 싶고, 지하철도 타고 싶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이라크전 반대하는 이유는 자국이익 때문?

그는 최근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특히 세계의 정치인들은 이라크 민중이 처한 심각한 현실보다 자국의 '이속 차리기'에 바쁠 뿐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자그로스 마흐모드씨의 생각이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진정으로 이라크 민중들을 생각해서 전쟁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통독 이후 40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길 정도로 독일경제가 심각해졌는데, 이라크 문제에 대해 그렇게 관심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독일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반대를 명분으로 걸었을 것이고, 이라크 내 석유개발권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는 이번 전쟁으로 후세인정권이 날아가면 그게 수포로 돌아갈까봐 그러는 겁니다. 전쟁이 터지면 프랑스는 아마도 석유 때문에 울게 될 지 모릅니다. 이집트나 시리아도 마찬가지로 독재국가이지요. 그들 역시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서 물러나면 자기들의 자리에 위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아랍국가들은 이라크 사람들이 죽는 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걸프전 당시 이라크 사람들은 이집트인 40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줬지만 지금 이집트는 이라크 사람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아 입국할 수 없어요. 그건 일종의 배신이지요."

"평화적으로 이라크문제 해결해야"

지금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반전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요셰프 핫산씨는 최근 한국인 3명이 '인간방패'로 떠난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전달했다.

"한국의 평화운동가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 이라크로 떠났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혹여 그게 후세인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합니다. 그리고 또, 자유를 원합니다. 지금 벌어지는 전쟁은 진정한 의미의 지하드가 아닙니다."

그들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국제적으로 이라크 문제를 이라크 민중의 시각에서 제대로 알리고, 이라크 내의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한 인도적인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약과 음식을 제공해주고, 이라크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했다.

2월 15일 오후3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펼쳐질 반전집회에 참석하겠다는 요세프 핫산씨는 "이라크에 석유가 없었다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탐욕스런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이라크의 가장 큰 문제는 어쩌면 석유일지 모른다"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낯빛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전쟁과 독재로 진실과 정의를 배반 당한 사람들은 타인과 타국에 대해 좀체 믿음을 건네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라크출신 세 이주노동자는 "미국과 세계의 통치자들이 내심으로 원하는 건 이라크 민중의 해방이 아니라 석유 아니냐"고 거듭 반문하면서, 진정코 "국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전쟁을 막고 이라크에 민주주의와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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