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03-02-04   1710

[성명] 대북송금 사건, 실체적 진실 규명 촉구

국회는 국정조사권 발동하여 진상 규명하고 정당성 검증해야

1. 현대상선 4000억 대출금 사용처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과정에서 이 중 2235억원이 북한에 변칙적으로 송금된 사실이 확인되고 이에 대해 대통령이 묵인 또는 지원했음을 사실상 인정함에 따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의혹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현대가 지원한 개성공단 사업 등 7대 사업은 민간경제협력이기는 하나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일환”이며, “통치권 차원의 결단으로서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못박고, 이어 검찰 역시 ‘수사보류’를 선언한 대목은 뜨거운 사법적·정치적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2.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상선의 송금에 대통령과 정부가 개입했음을 스스로 인정함과 동시에 검찰에 대한 인사권자로서 검찰수사를 원천적으로 막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낡은 권위주의 시대의 용어인 ‘통치권’을 들어 변칙적인 불법 송금사실을 정당화하려 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또한 검찰 수사 여부를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왈가왈부한 것에 대해서도 개탄한다.

검찰 수사의 당부를 떠나서 이를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사정기구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구시대적 권력행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의 발언에 뒤이은 검찰의 수사유보 선언 역시 정치적 판단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우리는 법 위에 존재하는 통치권이 있을 수 없고, 남북간의 경제협력 역시 회계부정과 변칙지원을 통해서는 온전히 추진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3.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경제협력을 위한 대북송금의 불가피성을 진정으로 설득하려 했다면, 본질적으로 검찰과 사법부의 판단영역인 사법처리의 당부를 논하기에 앞 서 대북송금의 실체적 진실을 좀 더 소상하게 국민 앞에 밝혀야 했다.

사건의 진상이 당사자에 의해 명확히 밝혀진 전제 위에서 국민 여론과 평화통일 실현의 헌법정신에 기초해서 사법처리의 당부를 논한다면 몰라도, ‘통치권 차원의 결단’이라는 모호하고 권위주의적 수사로 이미 제기된 의혹을 유야무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우리는 대북경제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고, 정부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독일 등 유사한 나라의 경험은 이른바 ‘평화를 사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대북지원의 문제가 지나치게 정략적 쟁점화 되어 왔고 이에 따라 이미 조성된 남북교류협력기금등의 탄력적 운용 역시 제한 받아 온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2002년말 현재 3조 이상 조성되어 있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합법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정당한 노력을 대통령과 정부가 기울였는지, 부실경영에 의해 재정난을 겪고 있는 한 재벌기업이 대출금을 전용하여 북한에 송금하고 이를 정부가 묵인 방조한 것이 과연 남북경제협력을 위해 불가피한 유일한 길이었는지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 과정에서 특정 기업의 독점적 이해관계나 정파적 고려가 작동했는지 여부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북한에 송금된 자금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만약 이 자금이 개발독점권에 대한 기업차원의 비용지불이 아닌 정부 차원의 변칙적 자금지원이라면 이로 인한 개별기업의 손실은 또 다른 문제로 될 것이다.

5.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 급선무라고 본다. 대통령과 현대 측은 즉각 사건의 진상을 소상하게 공개해야 한다. 누가 어떤 경로로 어떤 용도로 송금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또한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이를 검증하여야 한다.

조사 결과 납득하기 힘든 불법적 사실이 밝혀질 경우, 누가 어떻게 책임질 지는 수사기관과 사법부, 그리고 국민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우리는 이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밝히는 과정을 통해 향후 남북 경제협력의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 기반을 높이는 동시에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정략적 논쟁풍토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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