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로 끝난 도쿄 6자회담 (이종원 한겨레 칼럼, 2006. 4. 16)

지난주 도쿄에서 시도된 비공식 6자 회담이 불발로 끝났다. 미국 대학의 두뇌집단이 주최하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라는 민간 학술회의를 계기로 각국이 6자 회담 수석대표들을 도쿄로 파견함으로써 교착상태의 회담 재개에 돌파구가 마련되는가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표들의 전체 회합은커녕,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김계관 북한 외교부상과의 만남조차 거부했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도쿄 회동에 맞춘 것처럼 한국인 납북자가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으로 추정된다는 유전자검사 결과를 공표했다. 북-미의 불신, 일본의 새로운 강경자세가 두드러지면서, 6자 회담 전망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북한 인권과 납치문제 대응을 포함한 한국 대북정책의 포괄적인 재편성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도쿄 회동 추진의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가장 큰 의문은 일본 정부의 의도다. 애초 도쿄 회의를 계기로 북-미 접촉 실현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일본 외무성인 것 같다. 힐 차관보가 출석하면 북한 쪽도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미국을 설득해 이를 성사시켰다. 한국도 이 과정에서 협조했고, 중국도 급거 대표 파견을 결정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힐 차관보의 참석이 확실해지자 북한도 막판에 출석자를 격상시켜 김계관 부상을 보냈다.

물론 북-미의 원칙론적 강경자세가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극적인 결실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각국이 대표급 파견을 결정한 배경에는 그 나름의 계산이 엿보인다. 도쿄를 무대로 6자회담 대표들의 회동이 벌어지는 것은 일본의 외교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기회가 된다. 미국으로서도 북-미 접촉 가능성을 미끼로 북한을 끌어내 흔드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6자회담의 모멘텀 유지에 부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다급한 모습을 보여왔다. 약한 처지에 몰릴수록 체제의 면목과 전략적 고려에서 강경노선을 견지해 온 종래 태도와는 다르다. 그 이유가 일반적으로 추측하듯이 금융제재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외적으로 “외교교섭에 의한 해결 노력”을 과시하고 불리한 조건 아래서의 6자회담 참가를 지연시키려는 일종의 ‘알리바이’ 전술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주목되는 것은 일본 정부의 분열된 모습이다. 외무성이 6자회담 대표의 비공식 회동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바로 그때, 아베 관방장관 주도로 납북자 유전자검사 결과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두 움직임이 서로 연계된 ‘계산된 분업’인 것 같지는 않다. 지난 11일 검사 결과가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되자 “외무성은 혼란에 빠졌다”(아사히신문)고 한다.

결과적으로 6자회담 대표들을 도쿄로 불러모아 놓고 직접적으로는 북한, 간접적으로는 한국에 납치문제를 들이댄 격이 됐다. 아베 관방장관은 “일본의 강한 의지를 과시하기에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회견에 응했다. ‘아베 정권’의 사실상 출범을 과시하며 대북정책의 주도권 접수를 선언한 것으로도 보인다. 고이즈미 노선과는 다른 접근법을 취하며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아베 체제’이지만, 북핵과 납치문제에 대해 어떠한 ‘출구전략’을 가지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갈파했듯이, ‘출구’(결과)를 마련하지 않은 강경책이라면 정치적으로는 무책임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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