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인권에도 포용정책을(John Feffer, 2004. 4. 20)

北인권’에도 포용정책을 (문화일보 출처, 2004. 4. 20)

1980년대에 소련과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반정부인사들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가져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경찰이 가방과 노트를 수색할 것을 우려해 이들에 관한 정보를 암호화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반정부인사들에 관한 아무런 자료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들에 관한 정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북한에 반정부인사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내가 아는 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에는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체제 시절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적인 반정부인사였던 바츨라프 하벨같은 인물은 물론이고 동독의 뉴포럼이나 폴란드의 자유노조같은 조직도 북한에는 없다. 과거 러시아에서처럼 보리스 옐친같은 당내 반대론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북한과 구소련권 국가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석가들은 과거 모스크바나 바르샤바, 동베를린의 경험에 비춰 평양을 이해하려 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북한에서 추방된 독일 의사 겸 인권운동가인 노베르트 폴러첸은 98년 동독공산체제와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초래했던 동독인들의 대규모 서독 탈출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길 기대하면서, 지난 2002년부터 북한탈북자들의 중국 베이징주재 대사관 진입을 주도해오고 있다. 그러나 폴러첸의 전략에는 오류가 있다. 만약 그가 동독대신 베트남을 자세히 연구했다면, 대규모 국외탈출이 강력한 반정부주의자 존재까지 없어지게 함으로써 오히려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인권에 관한 오류는 더욱 중대한 문제다. 북한인권이 극악한 상황이란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북한정부는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북한정부가 잠재적인 반대파를 억압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힘을 휘두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접근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 유럽국가들은 북한 정부당국자들에게 인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조사허용 촉구 등의 방식으로 북한인권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훨씬 더 정면대결적인 방식을 선호해왔다. 지난해 상원에 상정된 북한 자유법(North Korea Freedom Act)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법은 북핵문제를 북한 인권상황 개선과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북핵과 북한인권을 연계하는 방식은 북한 주민생활의 점진적인 개선과는 무관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 법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89년 동유럽에서 인권운동은 평화적 혁명을 촉발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디펜스 포럼 재단(Defence Forum Foundation), 미국을 걱정하는 여성들(Concerned Women of America) 등 보수적인 인권단체들은 북한에서도 이같은 패턴이 재연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구 동구권에서처럼 북한내에 저명한 반정부 지식인이나 인권운동가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구 동구권의 경험을 재생산하려는 전략은 동일한 성과를 얻어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자유법은 과연 성공할까. 북한의 현정권이 붕괴된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까. 반드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첫째, 체제붕괴는 엄청난 인도적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수백만명의 북한주민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정권의 붕괴는 주민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다.

둘째, 만약 현정권이 붕괴된다 해도 민주적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은 많지 않다. 민주주의 전통, 그리고 정권을 인수할 반정부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욱 강경한 세력이 평양을 장악할 것이다.

세째, 북한군은 다량의 무기, 특히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체제가 붕괴된다면 이 무기들이 어떻게 쓰이겠는가. 내란은 북한 인권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인권 실태에 침묵해서는 결코 안된다 . 북한인권문제와 대북포용정책은 반드시 나란히 가야한다. 두가지는 상호 배타적인 정책이 아니다. 중국 인권의 점진적인 개선에서 보듯, 인권문제는 포용정책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북한정권교체를 지지하는 호전적인 미국 정책 당국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1989년 유럽에서 눈을 돌려, 2004년 지금 한국을 더욱 꼼꼼히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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