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반도평화에 대한 전략부재 확인한 첫 한미정상회담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2003. 5. 17)

한반도평화에 대한 전략부재 확인한 첫 한미정상회담

– 참여정부, 대미저자세로 첫 방미외교 시작

– 대북포용정책의 심각한 후퇴 우려, 친미만 남고 자주평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어

노무현 대통령의 첫 방미외교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어제(5월 15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은 첫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공동성명으로 발표하였다. 급박한 한반도 정세를 배경으로 열리는 만큼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이번 정상회담은 남한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왔던 대북포용정책기조를 대폭 후퇴시키는 한편 미국의 일방적 대한반도 정책을 추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참여정부는 이번 방미의 목적을 ‘북핵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한반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볼 때 과연 참여정부의 북핵에 대한 평화적 해결원칙이 관철되고 한반도 위기를 해소시킬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다.

한미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 핵보유를 용인하지 않으며 국제적 협력과 평화적 수단으로 북한의 핵을 제거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 추가적 조치를 검토할 것을 합의함으로써 ‘모든 선택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사실상 수용하고 말았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봉쇄나 무력사용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밝혔던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책기조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적 행동 자제를 요구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라는 옵션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또한 이번 회담에서는 지난 3자회담에서 북한이 밝힌 협상의지에 대해 미국 측이 취해야 할 최소한의 구체적인 조치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북핵문제와 남북교류사업을 연계하겠다는 발언도 지금껏 참여정부가 국민들에게 밝혀온 대북포용정책의 계승이라는 대북정책 기조와도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그 동안 북핵문제와 남북교류사업을 병행해온 남한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북미간 경색국면에서도 남북간에는 주요한 협의채널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를 효과적으로 예방해 온 측면이 크다. 더군다나 그 동안 참여정부가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대북제재 조치나 남북교류협력 사업과의 연계 입장을 밝힌 적이 없고 심지어 이를 연계해야 한다는 ‘상호주의’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분명히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매우 당혹스럽다.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양 정상은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동맹의 현대화’와 주한미군의 지속가능한 주둔으로의 전환을 천명하고 주한미군의 재배치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정치, 경제, 안보 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추진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주한미군 한강이남 재배치를 막은 것은 성과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직후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북핵 위기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일부 철수를 포함한 재배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터이다. 또한 작년 대선 전후 온 국민이 요구했던 SOFA 개정 등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개선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조차 하지 못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이 대두되는 위협에 대한 동맹의 현대화’, ‘지속가능한 주둔’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오히려 MD 등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 추종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방미기간동안 보였던 외교적 행보와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면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및 한미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전략의 부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시기 때부터 남북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번영정책과 상호호혜적인 한미관계를 강력히 주장해왔다. 그러나 출범 3개월만에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주는 이번 방미외교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황당한 외교적 변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민족우선외교”를 천명하고서 실제로는 아무런 구체적 비전과 전략도 구사하지 못한 채 종속적 한미동맹 체제에 안주하여 93-4년 북미 갈등과정에서 아무런 적극적 역할도 수행하지 못했던 뼈아픈 전례를 상기시킨다. 노무현 정부는 방미기간 내내 대미저자세 행보로 일관하면서 남북관계의 경색을 유발할 수 있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았다. ‘북한의 장기개발계획에 대해서 미국과 사전에 조율할 것’, ‘북한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만약 53년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지 모른다’ 등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다. 이는 김영삼 정부의 전례에서도 확인되었듯이 한반도 위기해소를 위해 미국과 북한 모두 설득해야하는 중재자적 위치를 포기하고 미국의 전략에 종속적으로 편승함으로써 중재자로서나 당사자로서나 한국정부의 발언권을 스스로 제약하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평화번영정책, 동북아중심국가 등 몇 가지 추상적인 문구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대신 정작 한반도 평화와 교류협력,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요구해온 한미관계 개선과 관련하여 지난 수년간 한국정부가 추진해온 대북포용정책과 한미관계 개선의 기본전제들을 대폭 양보하고 미국의 선택의 폭만 넓혀주고 말았다. 또한 자주외교와 햇볕정책계승을 주창하며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을 비롯한 미국방문 과정에서 보여준 노골적인 대미저자세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 부재는 ‘과거와는 다른 외교’를 기대했던 많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를 위해 그토록 서둘러 미국방문을 추진했어야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5월 17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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