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5-12-21   1522

핵협상의 열쇠 쥔 미국 (셀리그 해리슨, 2005. 12. 14)

출처: 한겨레

이란과 북한의 선언됐거나 혹은 의심스러운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협상이 최근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이슈가 공통으로 깔려 있다. 두 경우 모두,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체제 전환을 추구하는 선택을 포기하고, 정치·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며, 테헤란과 평양이 위협적인 군사적 배치로 받아들이는 요소를 배제하고 지역동맹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는가이다.

두 경우에서 똑같이 중요한 것은, 최근 테헤란과 평양에서 현저히 비슷한 정치적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이들이 왜 협상에서 그토록 강경한 노선을 취하는가를 설명한다. 강경파들이 지금 테헤란과 평양에서 득세하고 있다.

테헤란에선 지난 9월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깜짝 놀랄만한 당선이 핵 프로그램의 미래를 치열한 국내 정치적 이슈로 만들었다. 이는 유럽연합과의 핵 협상을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평양에선 5년에 걸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핵 협상의 조건에 대한 비타협적인 태도가 지난 2월 강온파 간의 정책적 대결을 초래했다. 당시 온건파인 강석주 제1부상과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의 대립에서 강경파가 승리를 거뒀다.

내가 <한겨레>(4월30일치)와 <워싱턴포스트>(6월10일치)에 썼듯이, 강경노선의 부활은 평양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함으로써 핵 협상의 골대를 옮긴 이유를 설명한다. 당시 평양은 워싱턴의 구상과 달리, 북-미관계 정상화가 자신의 핵 능력을 폐기하는 것보다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발성을 더해가는 이란과의 핵 협상에 대한 대부분의 외신 보도에서 테헤란은 피고로 묘사됐다. 핵심적인 이슈는 테헤란이 민수용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작동함으로써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비밀스런 준비에 들어갔느냐는 것이었다. 테헤란이 1년 전 유럽 세 나라(프랑스, 독일, 영국)와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해결의 본질적인 요소로 고려했던 안전 보장을 미국이 제공하도록 유럽연합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거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지난해 9월12일 온건파인 모하마드 하타미가 이끌던 이란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구적인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10개항의 일괄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은 어떤 대량살상무기 개발도 검증가능하게 금지할 수 있는 조처와 함께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과도적으로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실질적으로 이행됐다. 그는 또한 이란에 억류돼 있는 알카에다 테러용의자에 대한 협상과, 인권 문제에 대한 토론도 제안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유럽연합과 미국은 무역과 투자관계를 자유화하고, “페르시아만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동을 포함하는 지역의 안전 보장”에 대한 모호한 양보를 하도록 돼 있었다.

협상이 곧 뒤따랐다. 11월15일의 공동선언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전적으로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객관적 보장”뿐만 아니라, 그 대가로 “안전 보장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정치와 안전 보장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그룹이 3개월 이내에 보고서를 제출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안전 보장 문제와 관련해 테헤란에 양보를 하려는 유럽연합과 협력할 뜻이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란이 미국의 군사적 포위를 제한하고 종식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워싱턴은 중동과 페르시아만의 기존 군사기지에 더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중앙아시아에 영구적인 군사기지를 두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만8천여명의 미군이 이미 아프간에 주둔해 있고, 또 다른 1만명의 병력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대규모 기지를 헤라트에 건설하려 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카라치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병참 허브를 건설하고, 발루치스탄에 있는 쿠즈다르의 공군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파키스탄을 압박하고 있다. 이 공군기지는 이란의 동쪽 국경 바로 건너편에 있다.

미국의 저명한 이란 전문가인 레이 타케이(그는 현재 외교관계 자문위원회의 수석연구원이고, 미국 내셔널 와 컬리지에서 일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미국이 이란을 포위하려 하고, 이란과 이라크의 관계가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핵무기가 전략적 유용성을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란을 끌어안아 유럽안보협력기구와 유사한 지역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감스럽게도, 부시 행정부는 평양과 마찬가지로 테헤란에 대해서도 여전히 체제 전환의 희망에 매달려 있다. 이란에서 군사적 모험의 위험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동북아에선 중국과 한국이 미국의 평양에 대한 군사행동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워싱턴은 페르시아만에선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갖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의 협상이 붕괴한다면, 미국의 후원을 받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논의가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의 핵 원자로를 공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저명한 프랑스의 중동 전문가 왈리드 차라라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쓴 글에서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이라크를 공격했던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문제는 이란이 핵시설들을 분산시켰다는 것”이라며 “이는 그것들이 한꺼번에 완전히 파괴될 가능성을 줄인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분명히 이스라엘 혹은 미국의 공격에 반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자국 영토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이스라엘을 향해 직접 발사하거나, 동맹인 헤즈볼라를 부추겨 레바논 남부에서 미사일 공격을 하도록 할 것이다. 이는 적어도 레바논과 시리아를 분쟁에 끌어들여 분쟁이 지역화할 것임을 의미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심을 어떻게 정당화했는가?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란 핵프로그램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 하나는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농축도를 감춘 것으로 여겨지는 37t의 우라늄 ‘옐로 케이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또한 일부 장비에서 무기급 우라늄의 흔적과 핵폭발을 일으킬 때 사용할 수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인 ‘폴로늄210’을 생산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아래서도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면서도 농축을 중단함으로써 협상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는 이란이 실제로 농축 활동을 시작하는 결정을 내릴 때 고조될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 얼마나 심각하게 핵무기에 대한 선택을 열어두고 있고, 그 길에서 얼마나 멀리 갔느냐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의 정보능력을 검토하도록 구성된 대통령 자문위원회는 지난 3월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서 알카에다의 내부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정보기관들은 자주 ‘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보고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평양이 플루토늄을 재처리할 수 있다는 게 명백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이 재처리됐으며, 실제 군사적으로 작동하는 무기가 만들어졌는가는, 북한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다. 우라늄의 경우, 중앙정보국(CIA)은 “평양이 2005년 무렵까지 한 개 내지 두 개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농축시설을 짓고 있다”는 2002년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아직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도 포터 고스 중앙정보국장은 “평양이 우라늄 농축을 추구하고 있다”고만 말했을 뿐이다.

셀리그 해리슨/미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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