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과 의의-북핵문제를 중심으로

올해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지 5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인적 왕래가 활발히 이뤄졌고, 남북교류는 이제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4년 한 해 동안만 해도 방북증 발급 승인 기준으로는 26,000명, 연인원 기준으로는 53,000명을 넘는 인원이 북한을 방문했다.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잇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개성에는 산업공단이 건설되고 있다. 교류·협력이 진전됨에 따라 남북간 긴장도 완화되고 있다. 대내적으로 보아도 근거 없는 색깔론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게 되었고, 일부 남남갈등이 표출되고는 있지만 남북간 대결보다 화해·협력을 지지하는 입장이 대세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북한도 북한대로 개방을 확대하고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수용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물론 정상회담 이후 일어난 이와 같은 변화가 모두 정상회담 덕분만은 아니다.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금강산 관광도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상징성과 파급효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과 의의

현 시점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남북 최고지도자가 만나 여러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고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해서는 민간 차원에서 꾸준히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들은 남북 양쪽의 최고지도자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문제 해법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남북 당국간 대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정상회담에 지나치게 매달릴 경우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 상황은 이처럼 현실성이나 협상력을 따지고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고, 2002년 10월 이후 다시 불거진 북핵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아직까지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협상을 통해 풀어야 할 ‘정치적 문제’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만약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고 이에 미국이 강경책으로 대응할 경우 심각한 ‘군사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폭풍전야와 같은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북핵문제가 해결되어야 비로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 사고는 지나치게 수동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북핵문제 해결 과정의 일환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와 특사 교환, 미국 및 주변국과의 사전 조율을 거쳐 남북정상회담을 열 수 있다면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이 2000년에 한 번 열리고 끝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남북간의 현안을 다루는 장으로서 정례화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다. 지난 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 얼마나 이행되었는지 점검하고 새로운 현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사실상 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남북한이 동북아 냉전구도의 발전적 해체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다. 이 효과는 이미 지난 2000년 정상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달성되었지만, 그 후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남북한이 외교적으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함에 따라 상당 부분 희석된 감이 있다. 만약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남북한은 동북아 냉전구도를 종식시키는 데 있어 다시 한 번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문제의 구도

북핵문제의 해결이 동북아 냉전구도 해체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인식하에 북핵문제를 분석해 보면 그 구도가 상당히 단순함을 알 수 있다. 1994년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합의된 북핵문제 해결의 기본틀을 보자.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를 받는 조건으로 흑연감속로 및 관련시설을 동결 후 폐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사용 및 위협을 하지 않는 한편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약속하는 구도로 되어 있다. 상대방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유일한 압박방식은 북한의 경우 핵프로그램을 재개하는 것이고 미국의 경우에는 북한에 대한 에너지 제공을 중단하고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각각 상대방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IAEA 감시요원을 추방하고 원자로를 재가동할 수는 있지만, 핵실험을 하거나 무기급 핵물질을 외부로 이전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북한정권 스스로도 위험부담이 있다. 미국도 중유 공급과 경수로 건설을 중단할 수는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협조가 없는 한 경제제재나 군사적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과 미국 양쪽 다 상대방에 대한 위협이 먹혀들어 가지 않는 상황에서 북핵문제는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교착상태가 지속될 경우 북한은 대외 경제교류 및 관계정상화에 차질이 생기므로 경제를 재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이와 같은 교착상태를 깨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 무시’ 정책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도록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 「2.10 성명」을 통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하는 한편 협상을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북핵위기가 비등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미국이 \’적대적 무시\’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고, 미국이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협상안을 제시할 것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동시에 어차피 6자회담이 별로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수순을 밟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위기가 비등점까지 도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은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적인 조치는 구두선언에 그치지 않고 미사일 발사실험 재개 등 실질적인 내용이 있는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1994년 북핵위기 때에도 북한이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추출한 후에야 비로소 미국과 협상다운 협상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해의 길로 나서기 위해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목적과 수단의 부조화성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고, 미국내 강경론자들의 입지를 강화해 준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북한은 이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위기가 비등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미 1994년에 경험한 바와 같이 한반도 상황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1994년과 마찬가지로 전쟁 일보 직전에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만약 북한이 무기급 핵물질을 외부로 이전하여 미국이 직접 위협을 받는 상황이 온다면, 9.11 사태를 경험한 미국은 단독으로라도 군사적 조치를 취해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무기를 반출하지는 않지만 핵무기 보유를 입증하기 위해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미국은 한국과 중국을 설득하여 대북제재 조치를 취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북한이 무기급 핵물질의 양을 늘려나간다고 해도 미국은 ‘배고픈데 플루토늄을 먹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기다리면서 북한정권이 붕괴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것이나 미사일 발사실험을 재개하는 것 정도로는 현재의 교착상태를 깨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점들을 고려해 보면 위기가 비등점까지 치닫도록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 의문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하고, 북한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해 줘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북한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미래보다 핵을 보유하지 않은 미래가 더 밝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비록 우리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안보 우려를 직접 해소해 줄 수는 없지만, 미국과 북한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하도록 하는 데에는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에 대해서는 남북화해 및 동북아 통합을 통해 미국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크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동북아에 다자간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어 미국이 지금부터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 향후 이 지역에서 미국이 배제될 가능성을 최소화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동북아에 새로운 냉전구도를 형성하는 것보다는 중국의 점진적 변화를 지원하여 동북아 지역에 평화와 번영의 구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세계화라는 가치를 받아들였고 다국적 기업에 문호를 개방하며 정치·경제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소련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미국이 일본, 대만, 인도와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국 내 일부 강경론자의 구상은 지도상으로는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한 오히려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라고 해도 ‘긴장의 장기화’와 북핵문제의 해결 지연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비생산적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핵문제의 해결이 지연될 경우 MD 등 무기프로그램을 정당화하기 쉽고 한국과 일본을 기존의 동맹관계 틀 안에 묶어두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장점이 있지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미국의 강경정책이 남북화해와 동북아 평화의 걸림돌로 인식되면서 한국의 동맹전환(“Korea shift”)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오히려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전략목표에 부합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우선 올해 비료 지원을 기점으로 하여 당국간 접촉을 재개하고 남북 직접 채널을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후 대북특사 파견 등을 통해 6자회담이 5 대 1 인민재판식으로 북한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가는 구도는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9.11 이후 미국을 상대로 위기가 비등점으로 치닫도록 하는 벼랑끝 전술은 오히려 강경대응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6자회담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실질적인 협상에 임하도록 나머지 참석자들이 독촉하는 구도로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지난 3차 6자회담 전에 역할을 한 바와 같이 6자회담에서 실질적인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할 것임을 북한에 알릴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적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국제적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정부는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병행하여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동북아 냉전구도를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임원혁(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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