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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04.06.28
  • 428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김선일이 죽었다고?

온 국민이 고 김선일의 참담한 죽음에 당혹하고, 분노하고 또한 부끄러워 하고 있는 사이 정치권에서는 '테러방지법' 재추진 소식이 들린다. 어이가 없다. 정말 한심하다 못해 측은하기까지 하다.

김선일이 왜 죽었는가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김선일이 죽었는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건 넌센스다. 비겁한 책임회피다.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잔꾀에 불과하다.

정말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외교부직원들은 김선일의 피랍확인전화를 묵살하였는가.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20일 넘게 억류되어 있는 국민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것인가. 진정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이라크에 파견되어 있는 국정원 직원들은 김선일의 납치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단 말인가.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미국과의 정보협조가 원활치 못했고 무장단체의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단 말인가. 모두 어불성설이다.

김선일의 비극적 죽음은 테러방지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참여정부의 알량한 국익론과,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수구보수세력의 상황인식, 국민위에 군림할 뿐 봉사하지 않는 관료들의 무사안일, 현실론에 사로잡혀 소신을 꺾는 정치권에 의해 저질러진 참사에 다름 아니다. 또 한가지 있다. 은폐했는지 무능했는지 아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소위 '정보라인'의 무책임과 무능력이 그것이다. 테러방지법은 바로 그 '정보라인'에 테러방지라는 미명하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고,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과 '핫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것에 다름아니다. 테러방지법은 부시와 네오콘이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주문품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의 주문품에 불과한 테러방지법

필자는 개인적으로 김선일 피랍에 대해 미 정보당국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믿는다. 한 방송국의 27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 80% 이상이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군 추가파병결정, 북핵 6자회담 등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고려하여 미국이 의도적으로 '정보관리'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은 여러군데에서 발견된다. 진실이 밝혀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미국이 정보를 최종적으로 통제할 것이므로), 테러방지법과 관련하여 다음 두가지중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미국이 CNN보도를 통해서 김선일 피랍을 처음 알았다면 9.11테러 이후 '국토안보부'를 설치하고 '애국법'을 제정하는 등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결국 테러방지에 무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미국의 정보력과 테러대응력이 그 정도라면 하물며 미국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한국의 테러방지법이 무슨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반대의 경우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 미국이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서도 우리 정부에 알려주지 않았다면, 결국 우리 정보당국의 능력과 권한은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고, 언제든지 미국의 입맛에 맞게 정보는 왜곡되고 은폐, 조작될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테러방지법을 제정하고 대테러기구를 만들어 본들 미국의 하수인 노릇밖에 더하겠는가. 그것은 우리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테러로부터 지키는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테러방지법 재추진은 여론호도책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테러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2004년 6월 현재 그 답은 명확하다. 부시와 네오콘의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미국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분없는 한국군의 추가파병에 대해 재검토하고 파병철회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해야 할 일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테러방지법 재추진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실망을 넘어 한탄스럽다. 그것은 여론호도책일 뿐이다.

제아무리 내용을 손질해도 테러방지법은 미국의 입맛에 맞게 정보기관을 재편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정책의 하부구조를 만드는 작업에 불과하다. 테러방지법은 김선일을 통해 그 실체가 명백히 드러난 국정원에 '제2의 국가보안법'을 쥐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시스템을 탓하는 진부함을 그대로 반복할 것인가. 그것은 국민들을 또다시 기만하는 것이다.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마라

혹시나 해서 사족을 붙인다. 우리(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인권단체들)는 국정원의 '해외정보기능 강화'를 한번도 반대해 본적이 없다. 노대통령의 대선공약대로 '해외정보처'로 개편하는 것에도 찬성한다. 물론 국정원의 수사기능을 제거하고 국내정치개입을 차단하는 것이 전제된다. 왜 정부는 공약을 실천하지 않는가.

국정원이 해외유학생들을 상대로 간첩사건을 조작하거나, 유력 정치인을 납치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 국민들은 고대한다. 국가의 최고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가 국익을 위해 사용되기를... 오늘 국민들은 원한다. 국정원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여 주기를... 재외 교민이 600만이고, 한해 여행객만도 700만이라고 한다. 부디 국정원이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라.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못하겠는가. 아니다. 당신들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맹목적 대미종속 그리고 무사안일과 직무유기가 원인이다.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고, 보호에 나서라. 제발....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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