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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5.09.27
  • 729


2003년 7월 1일에 광교쪽 청계고가도로의 출입부를 철거하는 것으로 시작된 청계천개발공사가 며칠 뒤에 공식적으로 끝난다. 철거공사를 시작한지 2년 2개월만인 2005년 9월 30일에 복원공사를 끝내고 10월 1일에 완공식을 거행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청계천의 복원을 주장해왔고,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던 필자로서도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복원공사는 결코 청계천복원공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명박 시장은 복원을 내걸고 개발을 했으며, 나아가 심각한 파괴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공사를 청계천복원공사가 아니라 청계천개발사업 또는 청계천파괴사업으로 기억해야 옳다. 청계천복원공사가 이른바 ‘신개발주의’의 전형으로 꼽히는 것은 역사를 내걸고 역사를 파괴한 대표적 사업이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16일에 시민단체의 대표를 포함한 많은 시민위원들이 이명박 시장과 양윤재 부시장의 전횡에 항의하며 시민위원직을 사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잘 알다시피 일제의 침략과 함께 서울은 줄곧 파괴의 길을 걸어왔다.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빠른 시간 안에 서울을 거대한 시멘트와 자동차의 도시로 만들면서 일제의 서울 파괴를 일단락지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를 대표하던 개발업자가 그 폐해를 바로잡겠노라고 나섰던 것은 분명 역사의 역설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복원사업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아무래도 이명박 시장이 복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우려가 올바른 것이었음을 이명박 시장은 확인해 주었다.

청계천은 본래 자연하천이었으나 태조부터 영조에 이르는 무려 360년의 긴 시간 동안 서울의 배수구로서 계속 개축되었다. 그 결과 청계천은 서울을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토목 역사유적이 되었다. 영조는 1차 준설 및 개축사업에서 둑 위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이후 우거진 버들숲이 서울의 명물이 되었다고 유득공은 전한다. 영조 말년에 2차 준설 및 개축사업을 벌이는데, 이때 비로소 청계천에 석축이 들어서게 되었다. 청계천의 복원은 어떠해야 했는가? 다시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일제와 박정희에 의해 망실된 청계천의 옛모습, 곧 영조가 석축을 쌓아 완공한 청계천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어야 했다. 영조의 개축사업 이래 청계천은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유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경복궁을 복원하겠다며 근정전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현대식 문화센터나 놀이동산을 짓는 것이 잘못이라면, 청계천을 복원하겠다며 어렵사리 남아 있던 석축과 둑을 모두 밀어버리고 시멘트 옹벽을 쌓아 현대식 하천공원을 만드는 것도 잘못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명박 시장은 스스로 여러 차례 공언하길 수표교와 광통교는 원래 그 자리에 복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뒤에는 말을 바꿔서 결국 수표교와 광통교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심지어 광통교는 600년간 자리잡고 있던 곳을 떠날 가련한 처지가 되었고, 형태도 완전히 망가져서 해괴한 모습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복원인가? 일제가 저지른 문화재 파괴와 이명박 시장의 문화재 파괴가 얼마나 다른가? 박정희가 저지른 역사의 파괴와 이명박 시장이 저지른 역사의 파괴가 얼마나 다른가?

얼마 전에 강력한 경쟁자 사이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계천에 관해 좋은 얘기들을 주고받던 중에 이명박 시장은, 우리 도시들이 자기만의 볼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잘 아는 시장이 어떻게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서울만의 유일무이한 역사를 그렇듯 매몰차고 단호하게 밀어 없앨 수 있는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서울만의 귀중한 역사유적을 없애놓고는 저렇게 천연덕스럽다니, 도대체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명박 시장은 석축의 돌은 잘 보관해 두고 있으며, 석축을 복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를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의 대표들은 2004년 3월 5일에 이명박 시장과 구속된 양윤재 부시장(당시 복원추진본부장)을 문화재 파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고발의 수사는 석축의 돌을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유예되었다. 이제 공사의 완공에 따라 수사를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석축의 돌을 모두 청계천의 시멘트 옹벽에 박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사건의 수사를 철저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장의 대대적인 문화재 파괴 혐의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어떻게 문화재 보호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이와 관련된 자신의 책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개발사업이 파괴한 것은 청계천의 역사만이 아니다. 그는 청계천가에서 열심히 살던 사람들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이 목숨을 버리고 말았다. 2002년 9월 6일에 노점상 박봉규 씨가 죽었고, 2004년 4월 28일에 공구상 김모씨가 죽었다. 두 사람 모두 이명박 시장에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한맺힌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은 이런 목숨을 던진 항거에는 어떤 관심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공공연히 청계천가에서 내몰아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다. 2003년 11월의 대작전을 통해 노점상들을 대거 동대문운동장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 생생한 증거이다.

가난한 상인들과 주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단한 삶을 한탄할 때, 축배를 들며 신나는 인생을 노래하는 무리들도 나타났다. 이명박 시장의 대대적인 개발사업계획으로 대박의 꿈을 실현하게 된 일부 지주와 개발업자들이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개발사업으로 죽은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요, 신난 것은 일부 지주와 개발업자들인 것이다. 여기서 부패와 비리의 먹이사슬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청계천개발사업은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돈이 오가게 될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의 부분이었을 뿐이었다. 청계천개발사업의 지휘자였던 양윤재 부시장이 바로 이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의 먹이사슬 때문에 구속된 데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양윤재 부시장은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 시절에 시민위원회의 지적을 묵살하고 잘못된 청계천개발사업을 강행한 장본인이며, 2000년에 분당 파크뷰 용도변경사건과 관련해서 검찰의 조사를 받았던 찝찝한 경력을 가진 자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양윤재 추진본부장의 부시장 취임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은 이런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2004년 7월에 그를 부시장에 앉혔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은 자동적으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이 된다. 도시계획위원회는 도시의 (재)개발계획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법적 기구이다. 이 막강한 기구가 양윤재 추진본부장의 손아귀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명박 시장이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시장에 앉혔던 것은 결국 그와 함께 추진해왔던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구속되자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개발사업과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은 무관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청계천개발사업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명박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대대적인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청계천개발사업은 사실상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을 위한 여건조성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개발업자라는 자신의 명성에 스스로 먹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양윤재 부시장은 2003년 9월에 몇몇 시민위원들과 주변상인들에게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시장의 주장대로 청계천개발사업과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사업이 무관하다면, 어떻게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계획의 물리적 및 재정적 구상을 발표할 수 있는가? 당시 양윤재 추진본부장은 세운상가 주변에 25층 높이의 건물 여덟동을 짓는 가상도를 앞에 두고 자기가 청계천주변지역재개발계획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재정계획을 해결할 길을 찾았다며 상인들에게 자랑했다. 이명박 시장은 거대한 비리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월권’을 저지른 사람을 어떻게 막강한 권한을 갖는 행정부시장에 임명할 수 있었는가?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복원사업은 좋게 봐줘야 청계천개발사업이다. 그는 청계천의 600년 역사를 마침내 완전히 없앴으며, 많은 전력을 써서 한강의 물을 거꾸로 끌어올려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이것이 어떻게 역사복원이고 생태복원일 수 있는가? 현대식 인공하천공원으로 개발된 청계천은 이명박 시장이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대한 증거물일 뿐이다. 그가 청계천복원을 내걸고 시장에 당선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이명박 시장은 스스로 입증해주었다. 그나마 다행인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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