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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6.04.13
  • 480

한반도 브리핑〈2〉 북핵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



무소불위의 대제국에서 국가전략을 짜는 전략가와 상상력에 의존해서 세계적 차원의 음모를 풀어내는 소설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메시아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 유일 초강대국의 최고지도자와 순교자적 피해의식을 생존의 무기로 만든 파산국가의 절대권력자는 얼마나 다른가?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보통국가의 합리적인 국가경영자들과 정책전문가들은 이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가?

9·11테러,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략과 내전, 새로운 테러·전쟁의 위협,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 모든 것들이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비교들이 수사적 말장난에 불과하며 합리적 추론에 의지해야 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실사구시의 정신에 기초해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한반도 브리핑〉을 이런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작금의 사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인가, 아니면 분석적 무능을 감추려는 안이함인가? 그런데, 사실,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현실에서 종종 불가능과 가능을 구분할 기준은 모호했으며, 과대망상과 합리성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반도 브리핑〉의 첫 번째 글(2006. 3. 29.)에서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미국의 '대북 체제전환용 압박 전면화'와 북한의 '대미 대결용 3년 버티기'가 맞부딪치면서 '북한의 장래'가 주요 변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말했다. "북한의 장래 모습 여하에 따라 미래 한반도 전략지도의 변화가 그려지며 그에 기초해서 각국은 자신의 국가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이해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북한의 장래 모습'은 한국, 미국, 중국 모두에게 '고민거리'이며 또한 '복잡한 계산'을 요구한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있도록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정확한 정세분석에 기초한 주체적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식 주체의 '냉정함'과 분석 대상에 대한 '정확성'이 타인들의 행위를 우리 식의 합리성에 기초하여 분석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국 부시 정부의 '전면적 압박을 통한 체제전환 전략'이나 북한 김정일 정권의 '상대편 정권 교체기까지 버텨내기 전략'이 각각 나름대로 실현 가능성과 효과에 대한 계산을 깔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두 전략의 성패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아야 하며, 상황 전개에 대한, 면밀하지만 조심스러운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장래'와 관련해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가 범했던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이는 냉정함과 정확성에 기초한 주체적 대응이 가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현 정부의 '반미 표방'과 '북핵 우선해결 정책' 결과는 대미 완전종속

'북한 지도부의 핵포기와 개혁개방의 전략적 선택과 관련 당사국들의 경제지원·관계개선·평화체제 구축'(하영선, 〈중앙일보〉 2006. 4. 3.)이라는 이상적 해결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이 타협하지 못하는 이유를 상호 불신에 따른 딜레마적 상황이나 제한적 합리성의 한계만으로 설명하려는 태도는 충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북한과 미국에게는 불확실한 타협보다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거나 아니면 타협 자체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근 각각 심화되고 있는 한·미관계와 북·중관계는 해석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북한 핵문제'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생존과 안전을 건 갈등이라고 한다면, 양국은 갈등의 해결과정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고 갈등을 벗어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갈등의 대가를 치를 제3국이 존재하거나, 현재의 갈등이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문제가 되고 있는 갈등은 종종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서 다른 의미를 띠게 되고 예상보다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도 이러한 안보갈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1차 북핵위기와 2차 북핵위기의 전체 과정을 분석할 수는 없다. 이는 필자의 역량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아직도 밝혀져야 할 많은 사실들도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상상력 발휘와 관점 이동―아니 이미 상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관점―을 통해 미국과 북한이 최근 몇 년간 북핵위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미국 부시 정부는 노무현 정부 등장 이후 북핵위기를 한·미관계의 '심화'와 자국의 이익 확보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반미적 자기규정성'과 '북핵위기 해결 우선 정책'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북한 핵문제 활용 정책에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한국군의 이라크파병, 주한미군의 감축과 기지이전, 용산기지 이전비용 부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은 북한 핵문제가 없었다면 미국에게 매우 어려운 협상과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성격을 재규정하게 될 이 복잡한 현안들이 미국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고 쉽게 해결됐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협상능력 부족과 외교·국방 부문 관료조직의 한계, 그리고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김대중 정부의 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만, 북한핵 문제라는 '위기 요인' 또는 '태풍'의 존재를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의 협상과정에서 잘 활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할 수도 있다던 대통령과, 미국보다 중국을 중시한다던 여당 국회의원들은 이제 한미동맹의 강화를 외교안보정책의 첫째 과제로 꼽고 있으며, 이미 정책적 성과를 내어놓고 있다.'평화번영정책', '동북아 균형자론', '협력적 자주국방'은 한미동맹의 강화론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내년 초까지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한미동맹은 명실상부한 '포괄적 동맹'이 될 것이다.

한미동맹의 강화뿐만 아니라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대중국 압박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 잘 활용하고 있다.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은 '중국위협론'만으로는 설득력이 없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로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유지·강화한 상태에서 북한 핵문제를 6자회담에 넘기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문제까지 의제에 올림으로써, 미국은 당분간 동북아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계속 잡고 있을 기반도 만들었다.

비록 작년 9월의 합의(9.19 공동성명)가 중국과 한국의 설득과 압력의 성과물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잠정타협 하에서 여전히 자신들의 정책과 전략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북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그리고 부분적으로 한국도, 6자회담의 개최와 진행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계속해서 중재 역할을 맡으면서, 미국과 북한 양쪽 모두로부터 일종의 '시험'을 받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2006년 4월 현재 결과적으로 6자회담의 중간 성과와 진행과정은 대제국의 전략가가 만든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태풍의 진로에 우리를 밀어 넣고 있지 아니한가

대제국은 자신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만큼 성과를 가져가지만, 위기에 빠진 작은 국가는 자신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 그래도 북한 역시 자신들이 만든 위기로부터 나름대로 무언가를 얻는다. 남한과 중국은 북한에게 완충지대이자 후방이다. 북한이 획득하는 경제적 지원은 단순히 지리적 조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욱이 점점 확대·심화될 양국, 특히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장차 북한의 협상력을 올려줄 수도 있다. (물론 당연히 반대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른 무엇보다도 북핵 위기 자체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발된 한반도의 긴장 고조와 동북아 군비경쟁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강화를 야기함으로써 중국-러시아-북한의 관계를 정치·군사·경제적으로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북아 냉전질서의 재형성 가능성은 정당성의 위기에 빠진 북한 지도부에게는 (자신이 상황 자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체제와 정권의 보장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개혁개방이 늦추어진다고 하더라도, 북한 지도부에게는 잃는 만큼 얻는 것도 있는 것이다.

성급하지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려보자. 미국과 북한이 자신들 사이의 안보갈등으로부터 일정한 '즐거움'을 맛보고 있을 때, 과연 한국은 어떤가? 혹시 우리는 스스로가 만든 합리성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도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갈등은 진정 한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가? 북미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하다면, 우리 역시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혹시 '우리 스스로 태풍의 진로에 우리를 밀어넣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라고 자문도 해 보아야 한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발상의 전환이 현실적 분석보다 더 요구된다. 때로 우리는 '그들'과 소통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소통만을 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내부의 소통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정부·여당이나 야당, 진보나 보수, 모두를 막론하고 우리들 사이의 소통을 통해 우리 자신의 힘을 찾아야 한다.

* 본문 기사는 <프레시안>에 실린 기고문 입니다.
박순성(동국대 교수, 평화군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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