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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6.06.13
  • 450
서울방송(SBS)에서 월드컵의 상업화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실수를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몇몇의 스포츠 관련 초국적기업들이 월드컵을 지배하고 있다는 심각한 보도였는데, 그 중의 한 기업인 ‘푸마’를 그만 ‘파마’로 소개하는 웃기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문제의 장면을 갈무리한 사진을 보면 아나운서 옆으로 ‘PAMA’라고 써 놓은 로고가 보인다. 한때 ‘푸마’를 패러디한 ‘파마’라는 상표가 인터넷에서 유행했었다. 파마를 한 푸마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그 로고는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했었다. 물론 이번의 실수에서 푸마는 파마를 하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웃기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런 즐거운 실수라도 있어서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위를 돌아보면 즐거운 일이라곤 찾아보기 어렵고, 어쩌면 이렇게도 형세가 험란하고 각박한지. 친일독재 수구세력은 비틀거리는 듯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고, 반면에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은 죽 쒀서 개 주느라 바쁜 것 같다. ‘민주화의 민주화’라는 과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역사의 수레바퀴가 결국 뒤로 밀려갈 것 같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잘 알다시피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민주화의 민주화’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과제이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이 과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한낱 착시현상일 뿐이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친일독재 수구세력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미국에 착 붙어서 종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등한 교류가 아닌 일방적 종속은 나라와 민족을 없애는 것과 같다. 일제 식민지의 역사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 경우에 소수는 온갖 호사를 다 누릴 수 있으나 다수는 살아 있으되 죽은 것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일찍이 염상섭은 <만세전>에서 이런 상황을 가리켜 조선 전체가 하나의 관 속 같다고 했다. 맹목적인 친미나 숭미는 결국 이 나라를 다시금 하나의 관 속과 같은 상태로 만들자는 것일 뿐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전쟁과 독재를 거치며 구조화된 한국과 미국의 불평등관계를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동맹이니 혈맹이니 하는 말로 포장된 불평등관계를 바로잡지 않는 한,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계속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친미파로 변신한 친일독재 수구세력의 일방적 주장만을 듣고 한국의 반미주의가 소수 불만세력의 주장일 뿐이라고 판단하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부당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미국 정부의 잘못된 태도와 그에 빌붙어 안정을 꾀하려는 한국 정부의 잘못된 접근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반미주의는 갈수록 국민적 현상이 되고 있다. 미국의 지배는 반미주의를 낳는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먼저 평택의 대추리에서 벌어진 충돌을 보자. 일부에서 이 충돌을 가리켜 ‘제2의 광주’라고 부를 정도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자비했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주민들과 잘못된 협상을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에게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전경의 폭력이 가해졌다. 국방부장관은 대추리의 강제집행에 반대해서 저항하는 사람들을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애초에 잘못된 주한미군 제2사단과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협상 때문에 대추리 일대의 땅 350만평을 주한미군에게 새로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기는커녕 잘못을 바로잡으라고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주한미군은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뒤로 물러나서 빨리 약속대로 땅을 내놓으라고 한국 정부를 을러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한국 정부 뒤에 숨는다고 주한미군의 야비한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가?

비슷한 시기에 한미 FTA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6월항쟁 19주년 기념일인 2006년 6월 10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1차 본협상이 끝났다. <한겨레신문>은 이에 대해 ‘미국에 선물 주고 빈 손으로 귀국’했다고 평했다. 반면에 김종훈 수석대표는 ‘첫 단추가 성공적으로 끼워졌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다 주고, 한국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받지 못한 협상이 어떻게 성공적이라는 것인가? 김종훈 수석대표는 자신의 주장이 옳다면 <한겨레신문>을 고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미 FTA가 갑작스럽게 추진되는 배경에는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정치적 담합’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마치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한미 FTA가 진행될수록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반미주의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지배라는 현상은 며칠 전에 일어난 또 다른 비극에서도 확인된다. 한미 FTA 제1차 본협상이 끝나기 사흘 전인 2006년 6월 7일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F-15K가 추락하는 일이 일어났다. 1대에 무려 1000억원이나 하는 엄청난 고가의 비행기가 하늘에서 산산조각났고, 두 사람의 뛰어난 조종사가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영원히 사라졌다. 미국에서 들여온 전투기가 추락하는 일은 사실 아주 흔한 일이다. 매년 수천억원의 세금이 그냥 하늘에서 사라진다. 미국의 동맹만이 구입할 수 있는 비행기라며 자랑하던 F-15K도 아마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분명히 확인된 여러 추락사고에도 불구하고 F-15K의 추락에 대비한 협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F-15K의 구입은 그 시작부터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오죽하면 이와 관련해서 시민사회에서 <종이비행기>라는 제목의 책까지 냈겠는가? 이미 알려진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미국의 지배를 강화하고자 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서 우리는 미국의 지배와 그로 말미암은 반미주의의 강화라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의 무능과 타성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부당한 태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반미주의는 정치적인 것이기보다는 일상적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경제적 차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나아가 문화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반미주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의 지배가 강행되는 한 갈수록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의 오만불손한 태도가 잘 보여주듯이 미국의 보수적 지배층은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자신들이 강자라는 깡패같은 생각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 결과 한국의 반미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데도.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한 공부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드러머 이미지 따위에 속는 멍청이가 아니다.

미국의 보수적 지배층이 이렇게 무도한 착각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데에는 한국의 보수층이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한국의 지배층이다. 한국의 정계는 물론이고 관계와 재계와 문화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보수층이다. 최근에 국방부 출신 인사들로 이루어진 진상조사반이 노근리 양민학살의 진실과 관련해서 미국 정부를 적극 두둔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반민족적 행태를 보인 자들이 민족을 외치며 여전히 지배층으로 행세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지배가 쉽사리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고약하게도 참여정부는 이런 상황에 편승하면서 미국 정부와 한국의 보수층에게 커다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참여정부는 호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민주화의 민주화’는 조금씩 이루어질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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