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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3.12.01
  • 422
어제 밤(11월 30일), 이라크에서 근무하던 '오무 전기' 한국직원 4명이 티그리트 주변 고속도로 상에서 총격을 받아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속보가 날아들었다. 비보를 접한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리 속을 스쳐가더니, 여러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지러이 흩어지는 마음가닥을 종시 가눌 길이 없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유족들에게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터이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했지만 '설마'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라크에 군대가 가기도 전에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이다. 7-80년대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다녀갔던 이라크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이토록 위험한 땅이 되었는가?

우려하던 일이 너무도 빨리 현실로 다가왔다. 미몽 중에 이마 위로 얼음물이 쏟아진다면 이런 느낌일까? 언제나 '아차'하는 순간에 '예정되었던 불행의 전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듯이, 속보를 접한 순간 정부의 파병결정 이후 이라크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전해졌던 온갖 경고의 메시지들이 또렷이 떠올랐다.

이라크 내 저항세력들은 '미군을 돕는 자는 우리의 적'이라고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밝혔다. 무자헤딘의 어느 전사는 공영방송과의 비밀인터뷰에서 한국인을 좋아하지만 미군을 돕는다면 자신들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후 이라크 대사관 직원이 피납되어 이라크를 떠나라는 협박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회조사단이 묵는 호텔로 로켓포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어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주 이라크 한국 대사는 현지교민과 기업들에게 여러 차례 외부출입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죽음을 막지 못했다. 대사관은 고인들이 "대사관에 입국 사실도 알리지 않고",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써달라는 대사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출장을 다녔기 때문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어제의 공격은 누가 보아도 미국계 '텔타'사의 송전탑 공사를 수주한 한국 기업 직원들을 상대로 치밀하게 계획된 목적의식적인 공격이었다. 대사관이 골백번 경고를 했더라도, 현지 교민과 업체들이 아무리 대사관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해도, 저항세력들이 목적의식적으로 타겟을 정해 추적하고 공격하려고 마음먹은 한, 막을 수 없었던 참사였다. 일본 대사관 직원, 스페인 군인 등 미국에 적극 협조하여 군대를 보내기로 한 나라 국민들이 불과 이틀 사이에 연쇄적으로 공격받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왜 하필 민간기업체 직원에게 공격이 가해졌을까? 내겐 우리 정부와 보수언론이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았던 '국익론'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뜨끔거린다. 정부의 논법대로라면 그들은 경제적 실리와 국익을 위해 거기 가 있었다. 오늘 새벽 바그다드에서 타전된 UPI 통신에 의하면 그들은 일본 외교관들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재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한승주 주미대사의 말처럼 "까탈스럽게 조건을 따지느니 시원스럽게 무조건 파병을 선언해 줘야 챙길 실익도 크다"던 그 '실익'의 전진부대로서 미국계 회사의 송전탑 건설 수주를 위해 포성도 멎지 않은 전장에 달려갔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낯뜨거운 일이다. 도대체 한국 외의 어느 나라 정부가 파병의 근거로 국익을 내세웠던가? 전쟁을 일으킨 미국·영국 정부마저도 공식적으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국익'이니 '실리'니 하는 '약탈적 언어'를 우리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언론은 얼마나 자주 공개석상에서 내뱉었던가? 불과 며칠 전에도 국방부 국방연구원은 '이라크 파병과 국익 극대화 방안'이라는 공개토론회를 열었었다. 이 모든 벌거벗은 주장들이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도는 정보화 시대의 빠른 속도로 아랍세계에 전해졌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할 따름이다.



이라크 국민들의 눈에 국익을 위해 군대를 보내겠다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혹시 과거 침이 마르도록 찬탄해마지 않던 '근면한 한국인들'이 이제는 '흡혈귀들'로, 탐욕에 눈 먼 '속물들의 군상'으로 비춰지지는 않았을까? 테러리스트들은 바로 이 점을 공격한 것 아닐까? 과장된 추측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인과관계가 어떻든, '국익을 위한 파병론'의 벌거벗은 공허한 선동에 대한 자괴감과 환멸만큼은 떨쳐낼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국회의원들은 이제 국민에게 무언가 답해야 할 시간이 왔다. 간곡히 당부한다. 제발, 한국민의 안전을 위해 더 많은 전투부대를 보내야 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 우리 국민들이 죽었으니 우리도 '대테러 전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선동하지 말라. 테러가 시작되었으니 하루빨리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우기지 말라.

정작 무서운 것은 테러가 아니다. 정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라크에 저지르고자 하는 일에 대한 우리 모두의 불감증이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폭탄이나 총탄만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이라크와 한국 땅에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는 유가족의 대열을 이어지게 할 그릇된 선택을 막아야 한다.

어젯밤 참사를 통해 우리에게도 다가온 이른바 '테러'의 현실 앞에서, 2년전 같은 경험을 했던 9.11 희생자가족단체 'Peaceful Tomorrows'의 창립자인 데이빗 포토티씨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증언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놓은 것은 형의 죽음을 접한 어머니의 절규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 '짐'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통곡하다가 "다른 어느 누구도 내가 겪는 고통을 겪기를 원치 않는다"고 절규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희생자와 그 가족의 이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는 정부와 언론에 반대하는 가족들과 만나 '평화로운 내일'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는 말한다.

"미국인들은 9.11에 있었던 시민들의 죽음에 대해, 전에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예외적인 폭력이며, 그들에게만 가해진 공격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에 아프간과 이라크에 대한 침공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 테러에 대한 두려움, 이를 악용한 정부와 언론의 잘못 때문이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에 대한 그들의 폭력이 증가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친지들의 죽음을 내세워 다른 이들의 사랑하는 친지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그 결과 미국인들의 죽음은 더욱 늘어만 갔다. 폭탄이나 군대나 애국자법(테러방지법)으로는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공존의 길을 찾아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테러리즘은 문제의 징후일 뿐 진정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군사주의, 국가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보다 특수한 몇몇의 생명이 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그릇된 믿음이다."라고.

지금 시각이 새벽 5시. 아직까지 사망자 신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속보에 의하면 이라크 현지 시간이 야간이라 안전상의 문제로 고속도로에 방치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이 시간, 이라크의 티그리트 고속도로변에는 부서진 차량의 잔해 위에 한국인 두 명의 싸늘한 시신이 누워있다. 그들은 부도덕한 침략전쟁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정의와 이성'의 잔해 위에 누워있다. 정부와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벌거벗은 국익론의 폐허 위에 말없이 누워있다. 그 시신들 곁에는 자살을 선택한 평화번영정책과 대한민국 외교의 시체도 함께 뒹굴고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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