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4-01-10   1954

[기고] 한 장의 사진, 인도주의 그리고 미국의 이중잣대

미군 병사에게는 인권이 있고, 후세인에게는 없는가

최근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체포 당시 사진이 추가로 공개되었다. 미군에 의해 공개된 이 사진에는 후세인 대통령을 끌어낸 미군 병사의 얼굴이 ‘신변안전’을 이유로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다. 후세인 체포 직후 적나라하게 공개된 추레한 몰골의 후세인 사진과는 사뭇 비교되는 것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호받아야할 인권이 미군 병사에게는 있고, 후세인에게는 없는가.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홍콩대학에서 국제인권법을 공부하며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박원석 씨가 이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한 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매매 이른바 원조교제를 한 범죄자의 신상은 물론, 사진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과 그에 따른 반론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지난 2001년 10월 청소년보호위원회와 국정홍보처가 주관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우리 국민의 66.2%는 신상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동의했으며, 사진공개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압도적인 87.6%가 찬성 의사를 밝혔다. 물론, 다소는 충격적이었던 신상공개 직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의 결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분히 카타르시스적인 정서가 개입되었을 수 있는 조사결과라는 반론도 있었고 범죄자 일 망정 사진공개는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반론도 당연히 터져 나왔다. 결국 논란은 그저 논란의 꼬리를 물며 사그러들었다.

새삼스레 다 지난 얘기를 엉뚱하게 꺼낸 이유는 최근 세계언론 지면을 장식했던 한 유명한 인물의 사진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사진 속의 인물이 물론 세계적인 성범죄자는 아니다. 체포된 뒤 의사 앞에 입을 쩍 벌리고 검진을 받고있는 늙고 볼품없는 사담 후세인이다. 그 사진을 봤을 때의 순간적인 첫 느낌은 동정심이었다. 단 몇 달 사이에 사람이 그토록 비참하게 늙고 추레해 질 수 있는가? 물론 익숙했던 화면과 사진 속의 사담 후세인은 대부분의 그의 이미지가 군복차림으로 기억되듯 내외에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상징과 이미지가 연출한 형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20년 넘게 한나라를 철권통치 했던 희대의 독재자이자, 미국과 두 번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슬람세계 일각의 영웅이었던 사람의 불쌍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습에 든 적지않은 실망감은 두 번째의 느낌이었다.

▲ copyright 연합뉴스

그리고 조금은 더 이성적으로 곰곰히 생각해 봤다. 누구에 의해 그 사진이 찍혔는지, 어떻게 언론지면에 공개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특급 중에도 초특급의 전쟁범죄자로 머지 않아 기소될 운명의, 아마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보안을 철저히 요하는 인물 중에 하나일 그가 포토라인에 앉아서 플래쉬 세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 사진은 아마도 현재 그를 감금 중에 있는 미군에 의해 촬영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몇 장을 찍었을 지는 알 길이 없지만, 몇 장의 사진 중에서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아마도 미국의 내지는 서방의 언론에 먼저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그 사진을 공개한 의도가 단순히 언론과 세계인의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공개 차원의 서비스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해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 동안 이라크 전쟁에 쏟아졌던 비판과 비난을 상쇄하고 향후 이라크 통치에 대한 내외의 지지를 겨냥해 이빨 빠진 후세인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준 일종의 언론플레이 라고 한다면, 사진 한 장을 두고 오버하는 걸까? 하지만, 추수감사절 이브에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이라크 공군기지에서 무늬만 칠면조를 들고 쇼한 것을 생각해 보면 과민반응이라고만 할 수도 없지 않나. 아무래도 좋다 본론은 그게 아니니까. 그리고 얼마 뒤 공개된 또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벙커인지 땅굴인지 아무튼 한 무리의 미군들에 의해 뭐 끌 듯 끌려 나와 누워있는 것으로 보이는 후세인의 모습이 실은 이 객적은 얘기를 끄적거리게 만들었다.

이쯤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해야겠다. 지난 걸프 전 당시 이라크군에 생포된 미군들의 겁먹은 모습이 몇 차례 세계 전파 망에 중계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이라크군의 의도도 아마 미군의 사기도 꺾고 공포심도 불러일으키는 그런류 였을 것이다. 당시 미국정부는 이를 두고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약 위반이라는 점을 국제무대에서 강력히 비판했다. 비판의 초점은 두 가지로서 전쟁포로에 대한 적대행위와 그런 행위를 공개한 것이었다. 미국의 이런 주장은 정당했다. 1949년에 채택된 ‘전쟁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네바 제3 협약’(Geneva Convention Relative to the Treatment of Prisoners of War of August 12,1949)은 국가간의 적대행위 중에 일방의 수중에 사로잡힌 타방의 전투원에 대해 전쟁포로(일명 POW, Prisoner of War)의 지위를 부여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는 또한 오랜 국가간의 관행으로 굳어진 국제관습법의 일부이며, 전쟁포로에 관한 1949년의 제네바 제3 협약은 이를 성문화하고 세부화 한 것이다.

몇 가지만 간추려 보면, 첫째, 조약은 “당사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조약을 준수해야 한다”(제 1조)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 모두 이 조약에 서명하고 국내적 승인절차까지 걸프전 이전에 마쳤으므로 그 당시 이미 당사국이었다. 또한 조약은 “전쟁포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주의적인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구금중의 전쟁포로를 죽게 하거나 심각한 건강의 위험을 초래하는 어떠한 불법적인 행동도 금지되며, 이런 행동은 이 협약의 심각한 위반행위로 간주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포로도 신체의 절단이나 어떠한 종류의 의학적 과학적 실험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오늘의 객적은 얘기와 관련하여, “전쟁포로는 언제나 폭력과 협박, 모욕 그리고 대중적 호기심으로부터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이상 13조)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더 이상 조약의 여타 조항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미군 전쟁포로에 대한 폭력과 협박 그리고 이를 공공연히 공개한 이라크측의 행위는 분명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조항을 상당수 위반했음에 틀림없으며, 심각한 인권침해 였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다시 후세인 얘기로 돌아가 보자. 모두에 언급했던 검진 받는 후세인의 사진에서 도 일단을 볼 수 있듯 미국은 현재 그를 전쟁포로로 대우하고 있으며-협약 31조는 전쟁포로에 대한 최소한 한달 한번 이상의 건강검진을 의무화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후세인을 전쟁포로로 대우할 것이라는 점도 럼스펠드가 어느 기자회견 석상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힌바 있다. 문제는 이 얘기가 스스로 제네바협약을 위반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제네바 협약의 13조는 전쟁포로를 “폭력과 협박 모욕 그리고 대중적 호기심으로부터 특별히 보호할 것”을 명시한다. 현재 후세인이 일반대중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단 1%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체포 후 공개된 후세인의 볼성 사나운 사진들은 위 조약이 금지하고 있는 ‘대중적 호기심에의 노출’이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체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체포당시의 사진은(미군측의 의도인지 언론사의 자체 편집인지 모르겠으나, 미군병사의 얼굴은 가려지고 후세인의 처참한 얼굴은 공개되어있는) 당시의 상황이 그다지 나이스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느낌 또한 전달한다. 이렇듯 불유쾌한 사진의 공개는 과연 제네바 협약의 원칙으로 볼 때 그 적법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그가 미국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한나라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전장에서 체포된 미군들의 겁먹은 얼굴이 중계된 것이 제네바 협정의 위반이었을 진대, 단지 일개 전투원도 아닌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였던 사람이 비참하고 추레한 모습으로 입을 벌린 채 건강검진을 받는 모습, 총을 겨눈 군사들에 둘러 쌓여 거의 반죽음 비슷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의 공개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다는 말인가.

▲ copyright 연합뉴스

물론 국제인도주의법의 전쟁포로에 관한 조항 어디에도 한나라의 최고통치자가 전쟁포로가 되었을 경우 특별하게 보호하는 규정은 없다. 오히려 전쟁포로로서의 처우는 인종과 국적, 종교, 정치적 견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는 비차별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제네바 제 3협약 제 16조). 바로 그 비차별 규정에 입각할 때도 전쟁포로가 된 성스러운 미합중국의 병사는 어떤 경우에도 모욕당하거나 그 장면이 공개될 경우 제네바 협약의 위반이 되고 비록 한나라의 대통령 이었을 망정 이슬람 괴뢰국가의 독재자였던 이상 사진공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식의 논리나 현실이 통용된다면, 이는 인도주의 원칙에 대한 어의 없는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

인도주의에 관한 미국의 이중잣대가 이것만은 아니다. 현재 쿠바의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내의 수용소에는 아프간전쟁에서 잡혀온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투원들 그리고 전세계에서 잡혀온 알카에다 용의자들 640여명이 아무런 재판도 없이 감금되어 있다. 이중에는 여성은 물론 미성년자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슬람국가가 아닌 유럽국적의 테러 용의자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Amnesty International, Human Rights Watch와 같은 비정부기구들 국제적십자위원회(Committee of International Red Cross)를 비롯한 국제 기구들은 지속적으로 이들에 대해 국제인도주의법이 정하고 있는 전쟁포로의 지위를 부여할 것을 촉구해 왔으나, 미국은 이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이들을 미국법의 관할이 미치지 않는 쿠바의 관타나모에 구금한 의도 자체가 외부 시각으로부터 이들을 차단함은 물론 수감자들이 미국법에 따라 자신들의 구금의 정당성을 다툴 여지를 원초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미국연방항소법원은 일부 수용자가 제기한 소송에 대해 미합중국 법률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으므로 재판의 관할권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도 있다. 이런 가운데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각종 비인도적 행위가 발생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외부와의 일체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으며, 하루 20여분의 운동시간을 제외하곤 좁은 수용공간에 갇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일부 서방 언론을 통해 수용소 내에서도 수갑과 포승에 묶여 이동하는 장면 등이 보도된 바도 있다. 후세인을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쟁포로로 인정했다면, 관타나모 수용자들에 대해서도 그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이들이 전쟁포로인지 아닌지 의문이 있다고 치자. 제네바 제3협약 5조는 전쟁포로의 지위에 대한 의문이 있을 경우 관할권이 있는 재판을 통해 그 지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그때까지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의 지위를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이 의문의 여지없이 전쟁포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인권 단체들 그리고 국제기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전세계의 많은 양심적 개인들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이는 의문이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 후세인에 대한 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 조사의 적법성, 전쟁포로로서의 지위와 전쟁범죄자로서 기소될 수 있는 지위 사이의 복잡한 이슈들, 후세인에 대한 전쟁범죄 적용 및 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측의 책임을 둘러싼 숱한 논쟁의 사안들,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중인 탈레반과 알카에다 전투원들에 대한 무법적, 불법적 감금, 그리고 무엇보다 전세계를 휘감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에서의 죄 없는 사람들의 비인도적 희생 등에 비추어 보면 후세인의 사진 한 장 따위는 그저 에피소드 일뿐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세계인이 한 날 한시에 주목했던 그 한 장의 사진에서 또 한번 읽혀지는,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미국의 막가파식 철면피와 그리고 그 폭력성 앞에 무력하기만 한 국제사회의 왜소한 정의와 인권 앞에서 깊어지는 회의와 상념을 주체할 수 없어 객적은 얘기를 몇자 끄적거릴 뿐이다.

박원석(홍콩대학 국제인권법 석사과정)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