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6-02-20   589

<안국동窓> ‘전략적 유연성’의 배경과 문제점

코리아연구원-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공동기획하여 공동으로 게재합니다.

(이 글은「전환기 한미관계의 새판짜기」에 수록된 필자의 논문 “탈냉전기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에 상당 부분 의존했음을 밝힌다.)

지난 1월 19일 한미 양국은 워싱턴에서 제1차 ‘한미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대화’를 개최, 한미동맹을 새로운 공통적 가치를 지향하는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한국전쟁과 냉전을 그 존재이유로 하던 한미동맹을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은 남북관계의 발전과 탈냉전 시기의 요구에 걸 맞는 움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 대화 출범에 관한 공동성명’의 내용이 남북화해에 역행하고 동북아에 새로운 단층선을 만드는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여러 가지 문제점 중 ‘전략적 유연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나 이에 앞서 이번 공동성명의 중요한 문제점을 몇 가지만 간략히 지적한다.

우선 장관급 전략대화의 명칭을 ‘동반자 관계를 위한’ 대화라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전시작전 지휘권 문제는 오랫동안 한미간 불평등 관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지적되어 왔고, 노무현 대통령도 이의 환수에 상당한 의욕을 보인 것으로 언론에 알려져 있으나 공동성명에는 한미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은 언급조차 없다. “한미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는데 ‘상호존중과 호혜, 평등’이라는 원칙을 존중한다”는 정도의 표현도 없다는 것은 앞으로의 ‘대화’에서 한국이 아예 한 수 접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인정해준 것과 다름없다.

앞으로의 한미 ‘동반자 관계’가 미국의 주도에 끌려가는 것이 될 것이라는 점은 다른 내용들에서도 나타난다. 반기문 외교장관과 라이스 국무장관은 전략대화에서 앞으로 논의할 핵심조치들을 설정했는바 그 첫 번째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 보여준 것과 같이, 전세계에 개방되고 민주적인 제도 및 인권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있어서의 협력과 조정”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비민주국가를 민주주의로 ‘변형’시키는 것을 미 외교의 핵심과제로 삼는 ‘변형외교’를 추진하고 있고, 미 국방부는 적국의 정권을 군사력으로 전복시켜 “시민사회에 이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했던 것과 같이 이란, 시리아, 심지어는 북한을 민주화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한다면 한국은 “협력과 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조치의 두 번째는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고 “대량 살상무기와 그 운반수단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것으로 역시 미국 국가안보 정책의 핵심사안이다.

이에 비해 참여정부가 가장 중요한 외교과제로 삼았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이 확인되지 않은 것은 ‘동반자 관계’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 준다. 베이징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명확히 선언하고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한 것에 비해서, 전략대화의 공동성명은 ‘평화’가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고 굳이 못을 박고 있다. 즉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며 궁극적으로 지역 다자안보협력체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강력한 한미 동맹관계 유지”를 선언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조항들의 문제점은 한 가지 가정을 해 보는 것만으로 확실히 드러난다. 만약에 북한과 중국이 ‘전략대화’를 갖고 “조선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조중동맹을 근간으로 한다”고 선언했다면 한국과 미국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강력한 조중동맹을 유지하여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선언했다면? 한반도는 엄연히 한국과 미국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을 일방으로 하는 전쟁상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일방을 ‘근간’으로 하는 평화는 그 상대측의 종속이나 배제, 패배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논리적인 추론이 아닌가. “한미 양국은 상호존중과 평화공존의 원칙 아래 핵문제를 비롯한 역내 안보문제의 해결을 추구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는 정도의 원칙 표명도 하지 못한 채 9-19 공동성명보다도 후퇴한 내용을 담은 전략대화 공동성명은 앞으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어렵게 할 것이다. 한미 전략대화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략적 유연성’도 이러한 문제점들의 연속선 위에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전략변화와 군사변환, 세계적 미군 재배치라는 미국의 21세기형 ‘군사적 신자유주의’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한국의 합의는 엄청난 지정학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의 평화)를 이루려는 구상의 일환으로 이행되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냉전적 분단을 탈냉전적 단층선으로 악화시킬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냉전시기에 채택했던 봉쇄전략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중동과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분쟁에 촛점을 둔 양대전쟁전략으로 수정되었다가, 9.11사태이후 보다 공세적으로 전세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는 1-4-2-1전략으로 확대되었다. (2006년 「4개년 국방검토」 보고서는 ‘1-4-2-1전략’의 틀은 유지한 채로 이전에 미미하게 취급했던 게릴라 소탕전을 ‘장기전’으로 중요하게 격상시켜 추가, 군사력을 대 테러전, 본토방위 및 통상전의 셋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이전부터 추구해 오던 ‘전방위 우위’ (게릴라 전, 지역전, 핵전쟁 등 모든 종류의 분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릴 수 있는 군사력)는 더욱 탄력을 받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대 테러전의 중요성이 격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전진배치 및 신속한 승리와 결정적 승리라는 내용은 유지되고 있어, 기존 ‘1-4-2-1’에는 큰 변화가 없다.)

2001년에 채택되어 2002년 공식화된 1-4-2-1 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 미국은 현재의 군사력을 21세기형 미래군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전세계에 걸친 군사력 재배치를 하고 있다. ‘군사변환’과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은 미국의 신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양대축인 셈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첨단 과학 기동군으로 ‘변환’된 미군을 세계에 재배치하여 미국의 전략을 유연하게 이행하겠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미군의 구조조정은 주한미군 재조정과 미군기지 재배치를 규정하는 전략적 지침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 특히 한국과 일본의 21세기 전략과 외교방향을 압박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여 한반도 안보 상황을 불안하게 만들고 한반도 분단과 남남갈등을 고착화 내지 심화시키는 외적 요소로 기능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아시아 태평양 일대에 대한 미군의 개입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 (그리고 미국의 동맹국)과 아시아 사이의 군사력 불균형을 가속화하고 군비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전략적 유연성’과 대북공세

우선 주한미군을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이 대만해협과 같은 바다 건너의 목표만을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 당국은 용산에 있는 한미 연합군 사령부를 비롯해 최전선에 있는 대부분의 주한미군을 오산-평택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계획에 합의, 이를 이행하고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감축은 똑같은 군대를 단순 이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군사변환’ 및 전술변화라는 질적인 군사력 혁신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북 군사력을 공세적으로 강화시킨다는 결과가 나타난다. 미군을 후방에 배치하는 것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북한에 대한 공격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가?

우선, 미군의 후방 배치는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1994년 북핵 위기가 최고조였을 때, 미국은 군사력을 동원하는 방법을 고려했으나 대량 사상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이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휴전선 근처에 전방 배치되어 있는 미군은 1994년 당시 1만여 문의 북한의 장거리 포에 노출되어 있어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오히려 제약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군을 북한의 장거리포 사정거리 밖으로 빼내어 후방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만약 주한미군이 이렇게 남쪽으로 배치된다면 이것은 더글라스 페이스 국방차관보가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이 ‘막대한 투자’를 퍼부은 장거리포 사정거리 밖으로 주한미군을 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에서 50마일 이남 지역의 오산, 평택은 미국 제 2사단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주목받는 것이다. 핵전략에서 적의 보복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이 있으면 적의 보복을 걱정하지 않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한반도에서 미군이 북한의 보복공격 사정거리 밖에 있게 되면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을 사전봉쇄한 채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 독트린이 실행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북한이 2005년 2월에 ‘핵 억제력’ 보유를 선언한 이후 이 논리는 일정하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이제 미군은 북한의 장거리 포격 뿐만 아니라 핵 공격 가능성으로부터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미사일 방어 체제가 이미 배치되어 있고 이를 더욱 강화한다고 해도, 북의 핵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전쟁 계획이 더욱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의 선제 공격 전략에 대응하여 북한이 ‘핵 억제력’ 보유를 선언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보다 공세적인 전략과 전술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시 행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적을 선제공격하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고, 적의 정권을 교체하는 것도 2001년과 2006년 4개년 국방검토에서 선언한 정책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공격적 전략은 전술마저도 보다 공세적으로 변환시키고 있어서, 미군은 전쟁 초기 우선적으로 적의 고위 정부 리더십을 공격하고 중앙 통신망을 파괴해 적군을 무력화시킨다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광범위한 전선을 형성하여 적과 대치하기 보다는, 우월한 기동성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핵심 전략적 위치를 선점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작전개념은 전투기와 군함을 동원하여 투사할 수 있는 기동 네트워크 군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한 기동 네트워크 군이 육ㆍ해ㆍ공군력을 통합한 합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기지를 요구한다. 이렇게 볼 때 오산 공군기지와 평택 항에 인접한 오산-평택 지역은 ‘전략적 유연성’을 갖춘 신 군사력을 바다와 공중으로 투사하여 북한의 전후방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최적의 기지인 셈이다.

물론 밑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이 미국은 한미동맹의 역할을 한반도 지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세계적으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략적 유연성’을 한미동맹 역할의 세계적 확장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미국 군사 전략의 다른 부분들을 놓칠 위험이 있다. 군은 미래의 위협에 대해 준비해야 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최 우선과제는 현 전략의 실행이다. 즉 북한을 ‘주적’의 하나로 상정하고 적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현 군사전략 아래에서 미군의 최대 임무는 그러한 전략 실행에 필요한 준비태세와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며, 따라서 주한미군의 재조정도 ‘1-4-2-1 전략’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반적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은 2기 부시 행정부 ‘변형 외교’의 목표이고, ‘1-4-2-1 전략’이 타겟으로 잡고 있는 2개의 전장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미국 핵전략과 반확산 정책의 주요 목표이기도 하다. 미국의 양대 전쟁 전략과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에 북한이 있다는 이러한 사실은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의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다. 2002년 초 발간된「핵태세검토 보고서」는 북한에 핵 무기를 사용할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 등 북한 핵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명백히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2002년 12월 발표된「대량살상무기 격퇴를 위한 국가전략」과 2002년 5월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국가 안보에 관한 대통령 명령 제17호’는 장거리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 확보에 “근접한” 국가와 테러리스트 조직에 대해 선제공격을 승인하고 있다.(Michael Allen and Barton Gellman. “Preemptive Strikes Part of U.S. Strategic Doctrine:’All Options’ Open for Countering Unconventional Arms.”The Washington Post 12/11/02 참조)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중요한 안보 문제로 보고 있고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정책에서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에 미국은 6자회담 뿐만 아니라 외교적 압력, 경제적 제재, 군사적 봉쇄, 비핵 선제공격, 핵무기 사용을 포괄하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북한 위협’을 다루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과 탈냉전 동북아시아의 신 단층선

미국이 일방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이의 이행을 위해 군사변환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것을 동맹국들에 대한 배척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방주의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군사변환과 전략을 매끄럽게 적용시키기 위해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합참본부가 작성한「합참비전 2020」이 이전 「합참비전 2010」과 차별화되는 주요 부분은 동맹국과의 다자주의적인 운영과 군사 동맹들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합참비전 2020」은 동맹국과의 연합 작전에서 상호 운영성을 확대하여, 무기 체계 뿐만 아니라 군대 조직과 운영 방식, 구체적 작전 영역까지 상호 운영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General Henry H. Shelton,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Joint Vision 2020.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2000. Pp.6, 16‐1 참조)

2006년「4개년 국방검토」도 “유사시 작전에는 동맹국과 우방국의 기여가 보다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아예 상정한 위에 미군 적정 군사력 규모를 규정하고 있다.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t, The Secretary of Defense, February 6, 2006, p. 38.

이는 이미 2003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한국 군대가 미군과 공동 작전을 할 수 있는 고도 첨단군으로 ‘군사변환’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낳고 있고, 최신 무기체계를 구입하라는 압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즉, 미군의 군사변환과 재조정은 미국의 동맹국에게는 그들의 군을 ‘변환’하라는 압력이 되고 있고, 미국의 적들에게는 이런 변화들에 대한 대응수단을 모색하도록 강요, 21세기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주요 기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의 역할이 확대되어 미군과 연합작전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도 동맹국이 미국의 군사변화에 보조를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군은 최첨단무기로 무장된 21세기 과학군으로 변했는데 동맹군이 20세기형 구식군으로 남아 있으면 상호운영성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미군과 상호운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토 회원국에게 군사비를 증액하고 군사변환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고, 나토 국가들은 이러한 미국의 압력에 불편함을 표시하며 부분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도 같은 주문을 하고 있고, 한국은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구호 밑에 군사비 증액과 군사변환을 ‘자주적’으로 추진하여 미국의 군사변환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 국방부는 군사변환을 주한미군에 적용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3년 동안 110억 달러를 투자, 주한미군 전투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는데, 이러한 군사변환은 주한미군에 적용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군의 군사변환을 요구하는 압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미 한미 국방장관은 2002년 “연합 방어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과학 발전과 군사기술의 사용이 요구”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국군을 첨단 과학군으로 변환시킨다는 데 합의했고, 이어 2003년 조영길 국방 장관은 “한미 연합군 사령부의 연합작전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한국군은 미국의 군사변환을 참조하여 한국군 군사력을 발전, 변환시킬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협력적 자주 국방’ 정책은 한국군 변환, 국방비 증액 등 사실상 미국의 군사변환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한편 미국은 동맹국들이 미국의 전략을 지지하고 미국의 군사 변환을 따라 오도록 견인하는 동시에 그들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도록 종용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기존 동맹 조약이 명기하고 있지 않은 작전 지역일지라도 미국 전략의 관철에 필요하다면 그 지역 작전에 동맹국이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아미티지 보고서가 일본에게 ‘아시아의 영국’ 역할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미일 동맹의 활동은「신 방위 가이드라인」과 같은 선언들을 통해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NATO도 대서양조약에 명기되어 있는 작전 영역을 넘어 소위 “지역 밖의” 군사작전이 정례화되는 등 활동범위가 조약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나토와 미일동맹의 군사작전 반경이 이렇게 조약의 범위를 넘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미동맹도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 사실 한미동맹은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북한을 ‘주적’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는 미국 전략의 필요성 때문에 그 활동범위를 한반도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늦게 이행된 감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92년부터 시작되어, 1995년에는 랜드연구소와 한국국방연구원이 공동보고서에서 한미동맹은 장차 ‘지역방어’의 목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어 1996년 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는 북 위협이 소멸하는 단계에서 한반도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며, 지역방위는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지원해야 한다는 권고를 확인하고, 2002년 제32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양국은 “한반도 내 안정에 대한 당면한 위협이 감소된 후에도 이러한 양국 동맹관계는 동북아 및 아태 지역 전체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기여할 것”이라며, 한미동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2003년 연례 한미 안보협의회에서도 미국과 한국 국방부는 “한미동맹은 동북아와 아시아 태평양 전반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한미동맹의 지역동맹적 역할을 확인했고, 2006년 ‘한미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 대화’에서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이러한 합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NATO가 활동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유럽 인근 지역을 안정화시켜 유럽의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고, 일본이 군사적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은 미국의 ‘외압’에 편승하여 ‘보통국가’화라는 장기적 숙원사업을 도모한다는 측면이 있다. 양측 모두 미국의 전략변화와 군사변환에 끌려가는 척하며 실속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러한 변화들은 미군 체제에의 편입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 새로운 단층선의 한가운데에 한반도를 밀어 넣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중국을 미래의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중국이 경제적 강국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2006년 4개년 국방검토는 이를 ‘전략적 교차로에 있는 국가들의 선택을 형성’이라는 항목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관련해서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는 한편으로 어떠한 외국 권력도 지역 또는 세계 안보를 좌지우지 할 수 없도록 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나 우방국에 대해서 지역적 헤게모니나 적대적 행위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 자체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Quadrennial Defense Review Repor, The Secretary of Defense, February 6, 2006, pp. 27-32.) ‘1-4-2-1 전략’ 하에 미군이 전진배치되어 있는 4개 지역이 중국을 반원형으로 포위하는 모습이라는 점도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이다.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와 군사변환 및 미군 재배치와 맞물려 진행되는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의 이러한 역할 확대가 지역 불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최근 진행되는 일련의 사태가 반증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04년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벌이는 군사훈련과 거의 동시에 중국과 대만이 상대방을 염두에 둔 군사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여름의 맥박 04’라는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키티호크와 스테니스호 등 항공모함 두 척을 태평양에 동원했다. 이렇게 항공모함 두 척이 동시에 태평양에서 훈련을 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여름의 맥박’ 훈련 직전에 ‘환태평양 훈련’을 일본 및 한국과 함께 실시하고 이 기간 중 중국의 대만 침공에 대비한 가상훈련인 ‘용의 천둥’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미국의 움직임에 대응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대규모 상륙작전 훈련을 실시하는 등 동아시아 긴장이 한껏 고조됐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대만을 둔 전쟁이나 중국과 일본 간 댜오위다오/센카쿠 분쟁에 한국이 끌려 들어갈 위험성을 혹자는 “미사일을 든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가 부엌칼 들고 나서는 꼴”이라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 ‘고래 싸움’에 굳이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김영희,“한국이 중국을 공격한다?” 중앙일보, 2004년 5월 28일)

미국의 전략 변화, 군사변환 그리고 군 재조정이라는 ‘삼위일체’는 재래식과 핵 전략이 교차되는 지점에 북한을 상정함으로써, 동맹국들을 그에 상응하게 재편하고 투사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잠재적인 단층선(fault line)을 심화시킴으로써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한국이 내부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삼위일체’를 따라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변화의 흐름을 타고 군사능력을 증진시키고 작전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변화에 경계하며, 6자 회담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 ‘핵 억지력’을 강화, 실질적인 대응능력을 보강하고 있다. 중국은 비록 침묵하며 다차원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지역에 단층선이 형성될 가능성에 대비하여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

특정지역이나 특정위협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기 보다는 ‘능력에 기반한’ 안보정책을 추구하는 부시 행정부 하에서 ‘지역안보’라는 내용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부시행정부의 ‘1-4-2-1전략’과 ‘군사변환’이 맞물리면서 한미동맹의 목적 자체가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재배치와 기지 재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군이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파견되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일부가 한국기지에서 이라크전쟁 훈련을 받은 후 2004년 8월 이라크 전쟁에 바로 투입됐다는 사실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미국의 「디펜스뉴스」도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보도하며 “한국을 다른 임무를 위해 병력을 발진시키는 중심축으로 이용하는 것은 전세계에 미군이 임무수행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장소들을 구축한다는 새 목표의 전조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변화는 “소련의 위협을 다루기 위해 취했던 정적인 자세에서 새롭고 역동적인 위협을 다룰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로 전세계 미군을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디펜스뉴스>, 한국 신속배치 중심축 사용,” 연합뉴스, 2004년 6월 2일.)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고 한미동맹을 전세계적인 군사소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이미 2004년2월24일 ‘한미상호군수지원협정’을 개정하여 한반도와 북미지역에 한정되어 있던 상호 군수지원 대상지역이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확대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역할을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명백하게 위배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대한민국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경우에만 조약당사국이 행동하도록 되어있다. 또 1954년 1월 19일 미 상원이 한미방위조약을 비준하면서 추가한 양해사항도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조건을 엄격히 제한한 바 있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한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아닌 다른 사안으로 작전을 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동조건을 위배하는 것이다.

또 동 조약 제3조는그 적용범위를 “각 당사국은 타당사국의 행정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당사국의 행정지배하에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 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군이나 주한미군이 조약당사국, 즉 한국이나 미국의 영토이외의 지역에서 작전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여 한국의 방위를 위해 주둔하는 주한미군이 그 작전범위를 한국 이외의 동북아시아나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범위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현재 양국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역할변화와 활동범위 확대가 한미동맹의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배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국군을 이라크 전쟁에 파견하고, 주한미군을 역시 이라크 전쟁에 차출했다는 것은 양국군이 이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대로 두되 실질적 내용은 변화시키는 불법적 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상호군수지원협정의 적용범위를 전세계로 확대한 것도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대로 둔 채 하위법을 수정하여 상위법이 규정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성격과 적용범위를 변경시키는 불법적 방식이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재정 (코넬대학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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