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3-12-19   938

<안국동 窓> 잘못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벗어나라

국정쇄신을 위한 특별제언 [5] 통일외교안보 분야

사이버참여연대는 연말까지 총 9회에 걸쳐 경제, 정치, 사법 등 각 분야의 구체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하는 ‘국정쇄신을 위한 특별제언’ 시리즈를 <안국동窓>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노무현 정부 통일·외교·안보정책의 실패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 있다. 영원한 동맹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실리추구만이 유일한 행위원리가 되는 국제사회에서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그것도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란 말인가? 첫째,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올바로 추구하라. 둘째, 이상과 원칙으로 상황논리를 견제하라.

한미동맹은 현실과 실리를 판단하는 절대기준이 아니다. 진정한 현실주의는 변화하는 현실을 쉬지 않고 따라잡고,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외교는 낡은 계산법을 끊임없이 조정해 나간다. 냉전질서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을 지향하려는 정권에게 과거에 사로잡힌 현실주의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실용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50 년 동안 한국 사회를 규정한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시대적 변화 앞에서 도전받고 있으며, 참여정부는 그러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현실주의적 판단은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적 판단을 요구한다. 평화·통일과 관련한 남북의 갈등을 이해한다면, 한미동맹을 둘러싼 한·미간의 긴장도 받아들여야 한다. 동맹의 비용과 이익을 놓고 한국은 미국과 좀더 치밀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분단국과 세계유일패권국 사이에 존재하는 한미동맹도 분명 ‘동맹’이다. 현실주의나 실용주의를 가장한 약소국의식이나 패배주의는 벗어나야 한다.

이미 진부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다시 말한다면, 초심으로 되돌아가라, 아니 초심 이전으로 되돌아가라.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당당한 한국을 요구하던 2002년 12월로 되돌아가라. 이상과 원칙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현실의 상황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상황이 좋아지면 우리의 이상과 원칙을 되살리겠다는 말은 가장 초라한 변명이다. 현실정치에서 정치가는 정책과 결과로 평가를 받는다. 정권을 잡은 정치가는 정책으로 표현되지 않은 꿈을 말할 권리가 없다. 이미 선택되었기 때문에, 이상과 원칙으로 상황을 견제하고 돌파해 나가야 한다.

개인으로서 평화를 애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침략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백이나 나의 과거를 믿고 현재 나의 행동을 이해해 달라는 호소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뻔뻔스럽다. 후보 시절 내세웠던 이상과 원칙 때문에 대통령이 된 후 더 많은 압력을 안팎으로부터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1 년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직 4 년이나 남았다. 지금까지보다 더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압력을 받고 그것에 굴복할 것인지, 아니면 어렵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문제를 조금씩 풀어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상과 원칙을 다시 꺼내어, 현실과 실리의 맞은편에 세워 놓아야 한다.

평화번영정책의 틀을 다시 짜고 통일·외교·안보팀을 개편하라

통일·외교·안보분야 국정목표인 평화번영정책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평화번영정책은 크게 두 개의 국정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이다.

경제중심 건설은 경제부처에서 주관하고 있지만, 통일·외교·안보분야의 정책과 분리할 수 없는 과제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개념에 담겨 있는 20세기적 세계관(힘에 기초한 위계적 국제질서)에 대해서는 비판한 적이 있지만, 문제는 최근 정부가 펴고 있는 외교·안보정책이 기묘하게도 이러한 세계관을 우리 자신에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적용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교·안보분야 정책관료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한국은 여전히 한미동맹 내에서뿐만 아니라 동북아 국제질서에서도 절대적 약소국이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때로는 미국의 패권전략에 맞추어, 때로는 미국과 중국 간의 지역차원 경쟁에 대응하여 수동적인 안보전략으로 축소되고 만다.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된 화해협력정책의 성격과 성과에 대한 현 정부의 평가는 피상적이고 소극적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통일과 관련한 한국의 주도적 노력이라는 개념은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단계론적 접근방식(북핵문제 해결, 남북협력 심화,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 단계 실행전략)에 사로잡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안보와 관련해서는 절대안보 개념에 집착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자주국방을 위해 국방부가 2003년도에 제시한 계획은 모순 그 자체였다. 국방비 증액에 따른 국방력 증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안보는 오히려 미국에 더욱더 의존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의 실질적인 평화와 번영의 추진을 위해 새로운 전망에 기초한 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통일·외교·안보팀을 구성해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은 21세기 한반도와 동북아를 위한 정책패러다임으로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화해협력정책의 계승·발전된 형태로서 제시된 평화번영정책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한 사회 내부에서 나타난 의식의 변화, 1990년대 초반부터 경제위기에 직면한 북한의 최근 개혁·개방 노력,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른 동북아 세력균형 변화, 북한핵개발 가능성과 미국의 대북압박에 따른 지역안보불안의 해소 필요성 등은 평화번영정책의 시대적 적실성을 잘 보여준다.

더욱이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단일패권이 현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계질서의 대두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9.11테러와 그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략은 미국의 절대패권과 함께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갖는 한계를, 나아가 미국이 지배하는 단일패권질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세계질서의 미묘한 변화 가능성을 바라보면서 한국은 평화번영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실제적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 이것이 진정한 현실주의이자 실용주의이다.

이제 이를 위해 노무현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책적 오류를 범하고 상호협력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통일·외교·안보팀을 개편해야만 한다. 중대한 시점을 앞두고 협력이 되지 않는 팀으로는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끝으로 평화와 당당한 한국이라는 이상과 원칙이,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어려운 시기에 직면한 노무현 정부에게 정치적 부담이 아니라 힘과 용기로 작용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박순성(평화군축센터 소장,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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