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4-07-28   979

<안국동 窓> 용산 미군기지 협상을 통해 본 참여정부의 무능

한국시간으로 2004년 7월 24일, 워싱턴에서 중요한 협상결과가 발표되었다. 안광찬 국방부 정책실장과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제10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를 통해 확정된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협상의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2011년까지 마무리될 계획이었던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2008년 안에 이뤄지게 된다. 이 계획이 마무리되면, 한국이 제공하는 공여지는 현재의 7320만평에서 2515만평으로 줄어들고, 주한미군 기지도 현재의 41개에서 17개로 줄어들게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산 춘천 파주 의정부 동두천 등 5개 도시에 자리잡고 있는 13개의 주한미군 기지를 2006년까지 돌려 받게 된다. 2010∼2011년 반환될 예정이던 부산의 캠프 하야리아, 춘천의 캠프 페이지, 의정부의 캠프 홀링워터 등 9개 기지는 2005년에, 의정부의 캠프 라과디아, 동두천의 캠프 캐슬 등 4개 기지는 2006년에 돌려 받는다.

또한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작업을 올해부터 시작해서 원래 계획보다 1년 늦은 2008년 말까지 끝내게 된다. 연합사와 유엔사는 2007년에, 나머지 부대는 2008년에 옮겨간다. 그러나 완전히 옮겨가는 것은 아니고 드래곤힐 호텔과 연락사무소 등으로 용산에서 2만5000평 규모의 땅을 사용하게 된다. 옮겨갈 곳은 그 동안 논의되었던 대로 평택이다.

전체적으로 5167만평의 땅을 돌려 받게 되며, 이 중에서 도시의 땅은 서울 부산 대구 춘천 인천 원주 의정부 등 7개 도시에서 모두 370만평이다. 대신에 평택의 349만평을 공여하기로 했다. 이 땅은 용산 미군기지 대체 터 52만평, 미2사단 대체 터 223만평, 다른 미군부대 이전 터 74만평으로 사용된다.

그냥 수치만으로 보면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룬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의 뒤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불평등한 한미동맹에서 비롯되는 심각한 문제들이 여전히 숨어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새로 이전하는 미군기지의 위치와 규모이다. 349만평이라는 규모는 미국이 360만평을 요구한 것에 대해 정부가 330만평을 제시해서 타협한 결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난 6차 협상에서 양국은 312만평에 이미 합의했었다. 더욱이 이러한 기지 재배치와 함께 1만2500명의 미군이 줄어들게 된다. 지금보다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주장한 과도한 요구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다.

또한 목숨을 걸고 이전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평택지역 주민들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하지 않고 있다. 마치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철저히 무시하고 미군기지의 위치와 규모에 관한 협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자면, 새로운 미군기지의 위치와 규모는 결국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다음에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비용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1990년에 용산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전액 한국 정부가 부담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노태우 정권이 은밀히 체결한 것으로 명백히 위헌이며, 그 내용은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극도로 불평등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해외주둔미군재배치전략(GPR) 구상의 일환으로 오래 전부터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한 주한미군 기지의 이전을 추진해왔다. 또한 이 재배치는 한반도 방위를 넘어서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군화’를 위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과 연합토지관리계획의 개정이 함께 논의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비용을 한국 정부가 모두 부담한다는 것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비용은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참여정부는 이렇듯 명백한 문제를 감추고 마치 큰 성과를 거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논평에서 지적했듯이, ‘정부 협상팀은 보수언론을 동원한 미국 측의 압박에 굴복’했다. 대단히 유감스럽고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협상결과를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참여정부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이 잘못된 협상결과는 사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7월 27일 녹색연합은 국무조정실 산하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이 서울대 공학연구소에 의뢰해서 만들어진 ‘용산기지 반환부지 활용과 재원조달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의 골자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에 드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반환되는 90만평 정도의 땅 중에서 15만-20만평을 고밀도 빌딩단지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용산을 난개발해서 죽이겠다는 방안이다.

용산 미군기지 터는 신성한 땅이다. 난개발로 엉망진창이 된 서울의 마지막 희망이 잠자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북악에서 종묘와 남산을 거쳐 한강과 관악으로 이어질 서울의 남북녹지생태축의 허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 땅은 서울의 자연을 되살릴 ‘생명의 숲’으로 온전히 되살아나야 한다. 그런데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존중하겠다는 뜻에서 ‘참여정부’를 표방한 이 정부에서 그 땅을 완전히 죽여 없앨 계획을 공공연히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한 한미관계 때문에 결국 서울의 마지막 희망마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기막힌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참여정부는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굴종을 통한 안정’을 최선의 대미정책으로 추구하고 있다. 부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동맹을 ‘최상의 동맹’이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부시라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파병하라면 파병하고, 땅 달라면 땅 주고, 돈 달라면 돈 주고, 이 얼마나 착하고 귀여운 정부인가?

참여정부에 대한 커다란 기대는 이미 크나큰 실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다. 평택 주민들을 죽이고, 서울의 마지막 희망을 죽이는 참여정부의 무능과 구태 때문이다. 수도 이전을 추구하면서 용산 미군기지 터에 대규모 고밀도 빌딩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낡은 한미관계와 개발주의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행태야말로 참여정부의 가장 큰 적이다. 국민은 더 이상 그 적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상지대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