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0-07-23   1650

[기고] 한·미동맹의 역설


다음글은 경향신문 2010년 7월 8일자에 실린 ‘정동칼럼’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7071822355&code=990308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중국학

“민주주의는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통치권을 가진 이들에게 그들의 권위가 피통치자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주장하고 옹호하기 위해 자유롭게 집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함을 알고 있다. 이런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불법적 지배자의 두려움을, 그리고 시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부정하는 자들의 비겁함을 보여줄 뿐이다. 시민행동과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한국의 상황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3일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열린 ‘민주주의공동체(CD)’ 창설 1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에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80년대 이후 양국관계 기초 강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정치상황을 염두에 둔 언급으로 보인다. 정당할 뿐만 아니라 힐러리가 추구해온 정치적 가치에도 부합하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 연설이 시민사회에 대해 다양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미동맹 강화만을 강조하던 그녀의 모습과 대비가 돼서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 든다. 물론 미국 정부가 위의 기준을 갖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기를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은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외교 문제와 내정 문제를 혼동하는 것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반미 구호가 빠짐없이 등장한 적이 있다.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튼튼해지고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서 반미구호가 등장한 것은 역설적이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미국이 80년 광주학살과 신군부의 권력찬탈을 묵인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대외적으로 보다 자주적인 외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따라 한·미관계는 몇 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양국은 상대방을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당면 문제들을 이성적인 대화로 처리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켜왔다. 일부에서는 2008년 촛불시위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반미라고 규정짓는 경우도 있지만, 시위현장에서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를 반미로 연결시키려는 주장은 그다지 지지를 받지 못했다. 표면적인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의 기초는 더욱 강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한·미관계가 어떤 면에서 뒷걸음질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지난 5월 하순 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한국을 방문했던 힐러리의 발언이 한 예이다.

FTA문제 등 한국의 민심 주목을

당시 힐러리는 명백히 한국 정부가 주도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국제적이고 독립적인 조사(the international, independent investigation)”라고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며 전폭 지지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북풍 분위기 조성을 돕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다행히 지방선거에서는 민심이 북풍을 누르는 결과가 나타나 이 발언의 파장도 최소화될 수 있었다.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 한·미관계의 변화도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은 오랜 협상을 거쳐 결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일정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전작권 환수 연기가 결정된 이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이 새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만약 이 사안들이 한국 국민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처리된다면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의 민심도 개의치 않는다는 인식을 다시 한국 사회에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미동맹이 튼튼해 보이는 시기에 한·미관계의 기초는 약화되는 역설이 다시 나타날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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