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6-05-09   935

<안국동窓> 5월 평택과 노무현 정부의 ‘대실패’

5월 평택 대추리는 고립된 섬이다. 국토방위를 존재 이유로 하는 한국군이 미군기지 예정지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고 2000여명의 경찰들도 미군기지 예정지를 수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대추분교를 초토화시킨 정부는 기지이전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초토화시키려 하고 있다. 뚜렷한 증거 없이 무더기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가 하면 군인들에게 진압봉을 지급하고, 군과 충돌한 격앙된 시위대들 군형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인가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이번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운동을 ‘반미세력들이 주도하는 공안사건’으로 몰아가고 있다. 평택 주민들 의사와 관계없이 외부 불순세력이 미군철수를 위해 기지이전 반대운동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이 한미 간의 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평택 지역 강제집행에 온 몸으로 저항하는 이들이 모두 미군철수를 노리고 기지이전에 반대하고 있는가? 또 정부가 ‘백만장자’라고 호도한 주민들은 이들한테 ‘세뇌’당해 기지수용에 따른 공탁금도 거부하고 있는 걸까?

사실 미군 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평택 지역처럼 미군기지 확장 용도로 소중한 땅을 내놓으라는 정부에 주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더군다나 전 세계를 그 활동범위로 하는 주한미군이 손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기지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들도 반대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이러한 정당한 권리 행사에 대해 정부가 성실히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물리력을 동원해 억압한다면 그것은 ‘국가폭력’이다.

그러나 정부와 보수 언론들은 기지이전 반대운동에 색깔을 덧칠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과거 국가의 요구에 따라 두 번씩이나 살던 곳에서 강제로 떠밀려 나온 이들에게 정부는 또 다시 평생을 일구어 온 땅에서 나갈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 정부는 ‘백만장자가 생존권 운운한다’며 그들의 강제수용 반대의사를 보상문제로 깎아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폭력적인 공권력을 사용하기에 앞서 최소한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니다. 미국과의 협상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평생을 살던 곳에서 나가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주민들이 이러한 정부를 ‘자신들을 보호할 최후의 보루’로 볼 리 만무하다. 그 누구보다 정부의 강제집행에 분노하고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곳 주민들이다.

더군다나 정부가 ‘국책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 확장이전은 아직까지 서두를 이유가 없는 사안이다. 반환기지 환경복구 책임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지반환이 한참 지연되고 있고,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비용을 담은 시설종합계획(MP) 발표도 9월로 연기되었다. 그런데도 군, 경찰, 사설 경비업체를 동원하면서까지 국방부가 강제집행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숨기고 있는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운동의 본질은 기지이전에 관한 잘못된 협상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다.

지난 2003년에 시작된 주한미군 기지이전협상에서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이르는 그 과정은 한미동맹의 중대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처음으로 협상다운 협상을 했다’던 정부는 지난 3년간의 대미협상을 통해 사실상 미국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였다. 그 결과 용산과 미 2사단 등의 평택 확장 이전은 단순한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공간이동의 의미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역할변경과 전략적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이는 과거 용산기지이전사업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004년 주한미군기지이전협정 상의 목적도 중대한 변경이 생겼다.

이러한 주한미군 기지이전과 전략적 유연성은 평택주민들만의 문제일 수 없다. 왜냐하면 한반도 평화와 국민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엄청난 재정 부담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택기지의 용도나 비용부담 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정부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펴 왔다. 정부는 주한미군 기지이전이 마치 한국 측 요구에 의한 것으로 호도하였고, 사회적 합의와 비용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처럼 강변하였다. 경우에 따라서 정부가 협상결과에 대한 자의적인 평가와 기대를 협상의 성과로 부풀리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축소, 왜곡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주한미군 기지의 평택 확장이전에 관한 정부의 주장 vs 진실 10가지’ 참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사업이 ‘국책사업’이기 전에 청문회에 회부되어야 할 사안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회가 무책임하게 비준 동의한 2004년 기지이전협정이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강행에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부의 밀어붙이식의 강제집행을 중단하고, 잘못된 협상을 바로 잡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미군이 점유하게 될 평택기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발휘를 위한 것이며, 이로 인해 한반도가 분쟁과 갈등의 불씨를 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정부가 이 모든 것을 숨기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잘못된 협상 결과를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보호해야 할 현존 군사시설이 없는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을 설정하기 위해 계엄 상황을 방불케 하는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한국군이 미군기지 예정지에 철조망을 치게 하고 민간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서게 하는 등 미군기지 확보를 위해 한국군을 동원하였다. 이에 따라 민간인과 군의 충돌 우려도 더욱 높아졌다.

이 모든 사회적 갈등과 충돌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국회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고, 오로지 선거만 쳐다보고 있는 국회는 최소한의 책임도 방기하고 있다.

과연 역사는 5월 4일 평택과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기록할까? 평택 대추리 김지태 이장이 일갈한 것처럼 정부가 주민들을 말살하면서까지 그 어느 때보다 한미동맹을 공고히 했던 날로 기록할까? 아니면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를 제공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보장했던, 되돌릴 수 없는 정부의 패착으로 기록할까? 그 어느 면을 보더라도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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