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10-04-21   1423

[칼럼] ‘북한 연루설’ 예단의 유혹



<다음 글은 4월 20일자 경향신문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김종대‘D&D Focus’ 편집장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모든 공포영화의 시작은 ‘알 수 없는 위험’이다. 그래야 공포는 더 치명적이고 불안은 배가 된다. 이럴 때 사건의 의미와 맥락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알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체적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마침내 사람들은 안도와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백령도 인근의 어두운 바닷속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두 동강 난 천안함을 바라보는 우리 군, 특히 해군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 고통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성은 심증만으로 이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예단하려는 유혹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보수언론의 ‘북한 연루설’은 현실 탈출의 동아줄이다. 물론 북한이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려마저도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

9·11 테러 후 조지 부시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로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예단한 것은 비과학적 태도였다. 미국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목하고 전쟁에서 그 탈출구를 찾았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난 9년간 1조달러가 넘는 전비와 4000명이 넘는 희생을 치르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불행이 초래되었다. 지난 20세기에 전쟁으로 사망한 인류가 1억8000만명에 달한다. 그 이전의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숫자를 다 합쳐야 이 숫자가 나온다. 대량살육과 대량생산이 공존한 ‘폭력의 시대’다. 이 시기의 모든 잘못된 전쟁의 기원은 바로 잘못된 현실인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인간 이성이 본능에 굴복한 결과다.

지금껏 천안함 침몰사건에 북한이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최근 북한이 호전적이며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신형 어뢰가 장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전부다. 그러나 잠수함 작전에 결정적인 걸림돌인 서해의 짙은 염분과 빠른 물살, 얕은 수심을 돌파하고 야간에 단 한 방으로 우리 초계함을 정확히 두 동강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여기에다 한·미연합 정보자산의 감시와 초계함의 음파탐지 장비, 지상의 해안감시 레이더까지 따돌리고 ‘완전 작전’을 수행했다는 점, 우리 영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 더해진다면 그 복잡성은 제곱 단위로 증가하여 설명조차 쉽지 않다. 또한 어뢰나 기뢰 공격이라면 그 엄청난 폭발에 생존자들의 고막과 장기는 심하게 손상되었을 것이고, 해안 초병은 이를 관측했어야 하며, 백령도 주민들도 그 충격음을 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달빛이 반짝이는 물결밖에 본 것이 없다는 거다. 전직 한 해군 총장은 필자에게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한탄한다.

이 복잡성을 회피하고 “북한이 아니라면 누구 소행이겠느냐”는 식의 단순화 과정, 여타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감정적 탈출구의 모색은 일견 혼란에서 벗어나는 방편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20세기식 야만으로 통한다. 그 다음 순서는 전쟁불사 강경책이고,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자는 애국주의로 연결될 것이 명확하다. 과거의 모든 전쟁은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은 “제3의 가능성은 없는가”를 아직도 묻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 고통과 불안을 견뎌낼 정도로 훈련되고 성숙되어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런 성찰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과거 폭력의 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4191809215&code=9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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