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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9.09.23
  • 2137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라는 일괄타결안을 내놓았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대북안전보장과 국제적 대북지원을 본격화하자는 것이다.

내용은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이미 2005년 9.19 공동성명에는 이러한 제안들을 다 담고 있다. 그리고 그랜드 바겐을 포함해 포괄적(comprehensive) 접근, 담대한(bold) 접근, 패키지 딜 (package deal)등 포괄적 사항을 일괄타결하자는 논의는 줄곧 있어왔다. 굳이 따지자면 대북 안전보장이나 국제적 대북지원은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사항도 아니다. 결국 문제는 우여곡절을 거듭하고 있는 합의사항 이행을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북한과 미국이 극도로 불신하고 있던 상황에서 9.19 성명은 서로간의 약속이행을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방식으로 하자고 결론 내렸고, 이후 구체적인 이행조치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졌다. 물론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북한은 두 차례나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나 약속 불이행을 북한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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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공동성명처럼 북한 핵프로그램의 폐기와 대북 안전보장 그리고 대북지원이라는 문제해결의 방향에는 합의를 이루었으나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이행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북핵 폐기의 종착점’이라고 표현한 ‘북한의 핵물질이나 핵무기의 해외 반출 또는 폐기’조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에게 이러한 조치는 상대방의 합의이행을 강제할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겨둘 카드라는 점에서 중간단계의 조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동결 조치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중간단계를 뛰어 넘어 최종적인 조치를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다. ‘그랜드 바겐’이 현실 적용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기존의 북한의 선핵폐기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러한 제안이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면 북한을 제외한 5자간 논의를 강조하는 것은 주변국들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이 대통령은 "북핵 폐기의 종착점에 대해 확실하게 합의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행동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5자 간의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6자회담을 9.19 합의에 따른 이행조치를 협의하는 틀이 아닌 대북포위의 틀로 바꾸자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파견하는 보스워스 특사의 북한 방문이 조만간 예정되어 있고, 최근 중국이 다이빙궈 특사를 파견한 데 이어 곧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도 앞두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양자, 다자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실현가능성 없다고 확인된 5자회담 혹은 5자간 협의를 되풀이하고 있다.

핵포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우려하던 대통령이 포장만 그럴듯한 ‘그랜드 바겐’을 제시했다면 정부 외교안보라인 부처 장관들은 연일 강경한 대북발언들을 쏟아냈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북한의 핵공격 징후가 있을 때 선제타격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남북대화에서 북핵문제를 우선 의제로 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중 단연 으뜸은 유명환 장관의 최근 발언이다. 유 장관은 북한의 목표는 여전히 적화통일이며, 북한의 핵무기는 남한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의중에 대한 올바른 해석인지 여부를 떠나 이러한 발언들이 지나치게 갈등유발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적인 발언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측에 일련의 유화조치를 취하고 있고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려는 움직임이 확연해진 상황에서 이 같은 발언이 나온 것은 정부가 최근의 정세변화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은 뜬금없어 보인다. 북핵 논의가 진전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한국만 배제될 수 없으니 선제적으로 입장을 발표한 것뿐이라는 분석도 있고, 핵실험 이후 기존 입장을 전환한 북한과 미국이 직접대화에 나서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리 견제구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어떤 입장에서건 한국 정부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북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주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하지도 않는다는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남북관계가 북핵문제 해결 여부에 종속될 것이라는 입장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핵개방3000’에 이어 ‘그랜드 바겐’도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와 냉소를 보내는 이유이다.



박정은 (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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