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7-08-27   1143

아프간 피랍사태가 한국 평화운동에 던지는 질문

[토론회 후기] 아프간 전쟁과 한국인 피랍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다. 석방 합의가 있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쉴 틈 없이 속보를 내기 바빴던 언론들도 이제는 한 풀 꺾이는 듯한 추세이고 동분서주하는 피랍 가족들의 모습도 더 이상 사회적 관심을 크게 끌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한국 반전평화운동 진영에서는 사태 해결에 대해 점점 첨예한 관점과 입장의 차이를 두고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무관심하면서도 취약한 인식을 가진 한국사회의 오늘을 환기시키고 평화운동의 진단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피랍자들의 생사여부가 달린 사안의 무게감만큼이나 많은 평화활동가들이 자리에 함께 했고, 모두들 사뭇 진지한 태도로 토론에 참여했다.

먼저 초청된 인사들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한국외대 이란어과 유달승 교수는 ‘분쟁과 점령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 분쟁의 역사’라는 주제 아래 먼저 아프가니스탄 분쟁의 두 요인으로서 외부적 요인인 외세의 침략과 내부적 요인인 다양한 종족 구조를 들었다. 유 교수는 탈레반의 본질을 아프가니스탄의 침략과 점령의 역사를 통해 설명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을 일으킨 의도 중에 하나로써 천연 가스와 석유에 대한 송유관 사업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했다. 현 아프간 카르자이 대통령 역시 미국의 석유회사 유노칼(UNOCAL)의 자문을 역임한 적 있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미국의 전쟁과 점령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늘날 부흥하고 있는 신탈레반(Neo-Taliban)은 하나의 조직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반미’라는 하나의 사회적 운동임을 잘 알 수 있었다.

국제분쟁전문기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김재명 기자는 테러의 주체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전달했다. 현재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대테러전이 국가 테러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 정부와 미 테러 연구자들이 규정하는 테러의 개념이 얼마나 편향적이며 모순적인지를 지적했다.

반면에 테러가 일종의 ‘저항의 무기’가 되고 있는 지점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예를 들면 자살폭탄테러는 가공할만한 군사력에 맞선 불가피한 폭력인가? 김재명 기자는 여기서 발생하는 희생자들은 결국 미국이 저지르는 국가테러와 마찬가지로 가여운 민초들이 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켰다. 이번 사태에서의 한국인 인질들 역시 이러한 희생자들의 일부이다.

다음으로 오랫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NGO활동을 활발히 펼쳐 온 굿네이버스 이병희 과장의 발표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굿네이버스의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타 기관들과의 네트워크을 통한 업무진행, 현지인 직원중심의 운영, 종교적 중립성 등을 꼽았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 정부가 수많은 구호 활동 단체들을 철수시키는 것은 여러 의미깊은 인도적 활동들이 중단되거나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이것은 아프간의 심각한 인도적 위기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아프간인들에 대한 민간차원의 즉각적인 구호활동을 금하면서 파병부대는 주둔시키는 것이 진정 아프간 평화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발표자인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정대연 기획단장은 이번 피랍 사태를 둘러싸고 파병반대국민행동 회의에서 벌어졌던 논쟁들을 간략히 짚었다. 주로 반전평화운동 진영이 탈레반측에게 인질들의 석방을 호소하는 문제와 그들이 주장하는 포로 맞교환 요구의 대변 문제 등이었다.

이러한 쟁점들은 참여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토론되었다. 참여자들 중에서는 미국의 점령 종식과 한국군 파병에 대한 정치적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탈레반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아 이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따라서 인질과 포로들을 맞교환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미국의 점령정책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나을 것이며 시민들이 참여하는 평화운동 방식들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한국군 즉각 철군이 피랍자들을 석방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 사태에 직면하여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손쉬운 방안이라는 주장에 대해 많은 공감이 있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느꼈던 점은 전쟁을 통해 나타나는 폭력의 유형들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이상 확인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미국의 야만적 군사주의와 대테러전, 한국 정부의 무분별한 파병 정책과 국민들을 호도해 온 행위들은 그 어떤 정치적 명분으로도 가릴 수 없는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무고한 민간인 납치와 살해를 저지르는 탈레반의 저항이 옹호될 수 없다는 점 또한 명확하다. 미국의 국가 테러가 아무리 엄청난 범죄라 하더라도 탈레반의 이러한 행동이 옹호될 수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을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이 평화를 위한 연대라 말할 수 없다. 마틴 쇼가 서구 사회를 향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전쟁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라고 했듯이 나는 탈레반의 미 점령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이 택한 (민간인을 위협하는 방식의) 저항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군과 동맹군, 나토군의 가공할만한 전쟁 시스템과 인프라로 인해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탈레반이 저지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는 점은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두 번째로 나는 탈레반이 서구 사회가 주장하는 대로 그들이 정말 악마냐 아니냐, 혹은 과거 지독한 여성 억압 정책들을 펼친 독재 세력이냐 와 같은 가치 이데올로기 적용을 제쳐두고서라도 단순히 현재적 관점에서 외세의 점령에 저항하는 그들의 방식을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의 무고한 죽음을 원치 않으며 한국인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나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즉 탈레반이 외국인들을 납치·살해하는 방식의 테러행위는 전혀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적 지지가 없는 지배권의 확립은 또 다른 억압적 지배 세력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식의 승리는 아프가니스탄 사회가 군사주의의 재구조화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미군과 나토군 대 탈레반군의 대결을 중심으로 전체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 사이에서 숨져간 인간 개인들의 고통과 비참한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은 모두 전쟁과 점령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비극과 좌절을 겪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과연 이들에게 ‘정당한 폭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이지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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