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군을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광화문현장]촛불시위를 빛내주는 이 땅의 장삼이사들

강원도 태백에서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이교성, 도방주 씨(30세)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지난 12월 7일 미선 양 과 효순 양 추모식에 이어 매일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 현장, 그곳에서 한 손에 촛불을 든 그들이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이들은 “이게 얼마 만이냐,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반갑게 서로를 얼싸안으면서 끝까지 시위현장을 지켰다.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미국(大韓美國)

▲ 허욱 씨가 손수 제작해 가지고 나온 대한미국(大韓美國) 포스터
갑작스레 떨어진 기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0여명의 시민들은 9일 오후 6시가 되자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사회를 맡은 여중생범대위 이승환 씨는 “미선이 효순이가 우리를 불렀다. 오늘 날씨가 매우 추워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은데 더 힘을 내자”며 시민들을 독려했다.

시민들은 각자 준비해온 촛불이나 여중생범대위가 제공한 촛불을 받아들고 “효순이와 미선이를 살려내라” “한미SOFA 개정하라” “부시 대통령은 사과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직장인 신남호 씨(32세)는 “오늘은 날씨가 유독 추워서 사람들이 적게 올 것 같았다. 그래서 퇴근하고 일부러 이 곳으로 바로 달려왔다”며 “대학 때 운동권 중심으로 퍼져가던 반미감정과는 또 다른 대중적인 형태의 반미감정이 참 각별하게 느껴진다”고 참석한 소감을 밝혔다.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 씨의 아프가니스탄의 위선을 노래한 <카나리아를 보았는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와 민중가수 윤미진 씨의 <민들레처럼> 공연이 진행되자 집회 분위기가 한껏 고양됐다.

공연이 끝나고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시민은 대일외고 2학년 조유진 씨. 그는 “그동안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참가를 권유하시는 선생님 말을 들으니 내가 너무 애국심을 가지고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참가를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미선이 효순이와 꼭 함께 하고 싶었고 지금은 후회가 없다”며 당차게 참석동기를 밝혔다.

이어 자신을 ‘역사학도’라고 소개하는 한 청년은 “우리가 끝까지 달성해야 하는 문제는 미군철수”라고 주장했으며, 우형욱 씨(29세)는 “월드컵 이후 우리 국민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좋은 방향으로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촛불추모제는 시민들의 참여로 계속되고 있다.

촛불시위에 처음으로 참석했다는 홍형선 씨(20세)는 “교보문고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촛불시위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죄판결을 보고 한마디로 어이가 없고 답답했다. 이런 문제들에 소위 운동권이 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반감이 든 게 사실이었으나 대중이 스스로 이렇게 움직이는 걸 보니 감동”이라고 말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운동방식’이 새로운 집회문화로 자리잡기 바란다고 피력했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시민은 강남대학교 디자인과 허욱 씨(38세)다. 그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이 아닌 ‘대한미국(大韓美國)’이라고 적힌 대형포스터를 목에 걸고 촛불시위에 참가했다. 허 욱 씨는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다. 디자인의 사회참여 문제를 고민해 왔고 이번 사건을 보며 나도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대한민국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大韓民國을 大韓美國으로 고친 포스터를 손수 제작해 왔다”고 말하며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그가 제작한 포스터를 나눠줬다.

이날 참석한 시민들은 교보문고 앞에서 1시간 동안 촛불시위를 진행 한 후 미대사관 앞까지 행진을 하다 단식 농성에 들어간 불교인권위원회를 방문한 후 집회를 마무리했다.

촛불시위 참가자들의 말말말

“여러분들 내일 다시 나오실거죠? 옆사람 얼굴 꼭 기억하세요. 내일부터는 출석부 만들어야겠네요.”(사회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손녀 딸같은 아이들이 벌건 대낮에 차에 깔려 죽는다니,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다니 자존심이 상할 뿐이다.”- 안학섭(73세)

“친구들이 미국만 생각하면 짜증난다고 해요. 화를 낼 때도 있죠.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변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렇게 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대일외고 2학년 이영주

“내가 미국에서 장갑차를 몰다가 미국인을 죽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미국은 너무 보수적입니다. 있는 것들이 더해요.” – 이문동에서 온 국중권 씨(57세)

“집에 멍하니 있으니 추운 데서 떨고 있을 여중생들이 생각났습니다. 따뜻한 방에 앉아있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내일 해외로 가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 부산에서 온 한 여성

황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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