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4-07-06   943

고 김선일 씨 관련 국정조사, ‘면피용’ 되나?

여야 “파병과는 무관” 한 목소리, ‘미국 관련 여부’도 제외

고 김선일 씨의 피랍과 피살에 얽힌 의혹을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가 7월 5일 ‘국정조사계획서’의 본회의 통과로 본격화됐다. 17대 국회의 첫 국정조사인 이번 국정조사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여야 정치권이 수용해서 이뤄졌고, 과반 여당과 최대 야당의 정치적 공방이 심하지 않다는 점 등 몇 가지 점에서 과거 국정조사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국정조사가 한 점 의혹 없는 진실규명을 통해 이라크 파병 재검토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시민사회의 기대와 달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라크 파병 방침 불변 입장을 가지고 임하고 있어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조차 이런 당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과거 국정조사는 거의 대부분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야당의 공세와 이에 대응하는 여당의 방어가 정치적으로 절충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 국정조사는 여론과 시민사회의 의혹 제기를 정부 여당이 전격 수용하는 모양새로 이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과거 국정조사에서 조사대상과 범위 등을 놓고 벌어졌던 여야의 정치 공방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라크 현지 조사단원 배정을 놓고 가벼운 공방이 있는 수준.

이번 국정조사특위의 한나라당 간사를 맡은 엄호성 의원 측은 “국정조사를 먼저 하자고 한 쪽이 열린우리당이기 때문에 증인 선정에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문제는 외교부의 문서 공개인데, 이번 사안은 주로 기밀문서로 취급되는 외국과의 협상이 아니라 국내 외교부서 내부의 보고체계와 관련된 문서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국정조사 초기부터 조사대상, 조사범위를 놓고 공방을 벌였던 전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셈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원만한 협의가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오히려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이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고 김선일 씨 피살에 얽힌 의혹의 진실규명을 넘어서 이번 국정조사가 한미동맹의 허구성과 파병 안정성에 대한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의 범위 자체부터 이런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파병 강행, 한미공조 강화라는 당론과 배치될 수 있는 국정조사의 수위를 원치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국정조사를 요구한 시민단체로서 이번 조사의 한계에 대해 선험적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파병결정 과정 전반에 대해 정부보고 체계의 문제점을 밝혀야 하는데, 이번 국정조사의 범위가 테러사건 자체로 한정된 것은 명백한 조사의 한계”라고 밝혔다.

이 실장은 “실체적 진실규명이 가능할까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진실규명에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줄 지에 대해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국정조사의 전초전 격이었던 열린우리당 자체조사에서 유선호 의원(국정조사특위 위원장) 등은 대사관과 김천호 사장의 진술을 단순중계하는데 그쳤다. 야당 또한 이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진상조사에 대한 적극적인 투지를 보인 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첫 원내진출한 민주노동당의 역할이 주목된다. 민주노동당은 여당과 한나라당과 달리 강력한 파병반대 당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교섭단체로서의 한계가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국정조사에관한법률은 조사계획이나 증인채택 등 운영에 있어 교섭단체간의 협의에 대부분을 맡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의혹인 미군 당국의 은폐의혹에 대한 조사의 한계도 이번 국정조사의 문제점이다. 미군 당국에 대한 조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정조사특위가 상당한 의지를 갖지 않고서는 김 씨 피랍 및 피살과 관련한 미군 당국과 우리 정보라인의 정보교류 및 미군 당국의 은폐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6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이 김 씨 피랍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이를 한국정부에 통보했는지,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정부와 공동대응 방안을 협의했는지 등을 답해달라”고 미군 당국에 공개 질의했다. 또한 “미리 알지 못했다면 김씨가 일한 가나무역의 원청업체인 AAFES는 어떤 업체이며, AAFES측이 현지 미국당국에 김씨 피랍 여부와 대응방침을 문의한 일이 있는 지” 등도 물었다.

결국 이번 국정조사는 과거 국정조사와 다른 조건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파병 당론이 의혹의 핵심을 파헤치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장흥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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