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군비축소 2019-04-26   3513

[2019 GDAMS 연속기고 ③] 세월호와 천안함을 ‘비교’하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럴까

세월호와 천안함을 ‘비교’하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럴까

[2019 세계군축행동의 날 연속기고 ③] 군비축소는 평화의 길… ‘적색공포’를 깨야 한다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4월 22일부터 4월 29일까지, 약 일주일간 한국에서 진행되는 2019년 GDMAS 캠페인 슬로건은 ‘평화를 앞당기는 군축’이다. 강력한 군사력이 평화를 지키는 데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이념과 믿음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군비축소’는 이상적이거나 혹은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치부되어왔다. 이런 주류의 사고에 질문을 던지고 군축에 대한 필요성을 시민들과 나누기 위해 연속 기고를 진행한다 – 기자말

 

 

국방비 46조를 다른 곳에 쓴다면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무기를 사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평화단체들은 이와 관련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캠페인의 게시물에는 다양한 이들의 의견이 모이고 있는데, 그 의견과는 별개로 캠페인 자체에 대한 댓글도 활발히 달리고 있다. 댓글 중 일부를 발췌해 공유한다. 이 중 몇 문장은 표현을 순화했다.

 

“극히 이상적인, 지극히 당연하고도 당연한 평화를 이야기하는군요. 힘없는 평화는 말장난이란 걸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부터 경험하고도 또 그런 소리 하는 건, 그걸 원한다는 속내? 즉, 피 터지는 꼴 당하기.”

 

“평화는 군비를 축소하고, 평화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쯧쯧 한심하다 못해 역겹다. 남과 북은 대치 관계다. 당신들이 말하는 평화, 누굴 위한 평화일까. 남쪽에선 할 만큼 다해줬다. 그런데 뭐가 돌아왔는지 생각 좀 해봐라. 천안함 젊은 용사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었다. 또 연평해전에서 죽은 억울한 영혼들도 있다. 그러고도 평화 운운하냐. 세월호인지 그건 기억하면서 나라 지키다 죽은 장병들 생각은 해봤는가.”

 

“북폭만이 하늘의 뜻이다. 어리석은 빨갱이들아.” 

 

 

천암함과 세월호를 비교해서는 안되는 이유

 

군비축소를 이야기하면 언제나 돌아오는 반응이다. 전혀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오류를 범하고 있는 댓글들의 패턴은 일정하다. 박근혜 정권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패턴은 천안함과 세월호를 비교하는 것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만 기억하느냐’.

 

천안함 사건의 보상금과 세월호 참사 보상금을 비교하는 패턴의 기사들이 지면을 도배했던 때도 있었다. 이러한 패턴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비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의 오류를 통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빨갱이’라는 라벨을 붙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안함과 세월호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두 사건 모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며,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된 고통스럽고 아픈 사건이다. 그들의 희생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누구의 죽음이 더 고귀하냐’고 따지며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인가’ 토론해야 한다. 이 토론은 ‘빨갱이’라는 금기를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 이 과제는 한국 사회 전반의 문화적 폭력들과 연결되어 있다. 

 

남과 북은 분단의 과정,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서로의 체제를 비난하며 악마화(demonization)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체제를 정당화했다. 남한의 경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반공”이 한국 공교육의 핵심 주제이자 대주제가 되었다. 공산당을 때려잡고 간첩을 색출할 수 있는 시민,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공산당이 싫다’고 외칠 수 있는 정신 무장 상태가 전 사회적으로 추앙받았다.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들은 빨갱이로 의심받거나 불순분자로 비난받았다. 

 

▲  국방부가 초등학생에게 보여준 동영상 ⓒ 국방부

 

 

 

‘적색공포’가 작동하는 한국의 교육과정

 

교육학에는 “잠재적 교육과정” 또는 “‘0’ 교육과정(null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있다. “표면적 교육과정”이 의도된 교육계획, 교과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면 “잠재적 교육과정”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은연 중에 배우게 되는 것들을 의미한다. 즉, 배움이 일어나는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서 교과 내용이 아니라 그 교과내용이 교육되는 환경, 그 자체다. 어쩌면 교과 내용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적색공포(red complex)”는 분단 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강력한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작동해 왔다. 그리고 나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이 사회에 ‘논리’, ‘합리성’, ‘토론’이라고 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빨갱이는 모든 면에서 금기(taboo)였기 때문에 토론의 여지가 없었다.

 

북한을 타도하고 공산당을 파멸하겠다는 웅변이 넘쳤던 사회, 두 손을 들고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꼬마 연사들이 학교마다 가득했던 시절, 중학생이었던 한 아이는 학교대표로 참가한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 북한 괴뢰군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내용으로 극찬을 받았고 그에 고무된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와 손가락 끝을 잘라 혈서를 썼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곱씹을수록 너무나 공포스러웠던 기억이라고 회상한다. 그는 지금 평화학 연구자가 되었다. 

 

 

1950년 6월 25일에서 멈춘 사람들

 

합리적 토론의 경험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군비축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손쉽게 치환된다.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열려 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서로의 생각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경험 없이 “평화란 전쟁이 없는 것이며 전쟁이 없어지려면 누구보다도 강력한 군사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정답을 반복해 온 한국 사회에서 ‘군비축소’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넘어서는 상상력이다. 손에 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이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분단 이후, 냉전 해체와 신냉전, 대테러 전쟁과 내전의 증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무력분쟁의 양상과 변화의 흐름, 그 맥락과 상관없이 한국 사회의 기억은 여전히 1950년 6월 25일에 멈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멈추어 있는 기억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시민성을 유예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한국이 전 세계로 수출하는 무기의 양이 얼마인지, 어떤 돈이 무기 생산에 투자되는지, 그 무기들이 어디에서 사용되며 어떤 사람들이 그 무기로 인해 희생되는지, 내가 낸 세금이 정말 잘 사용되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독재의 망령, 유신의 그늘, 민주적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해도 괜찮다는 약육강식의 논리,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문화가 한국 사회의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공동체의 평화만 주제가 되는 교육은 이제 그만

 

4.27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앞두고 기념하는 세계군비축소행동의 날은 더욱더 무겁게 다가온다. 한반도를 넘어서는 평화에 대해 어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이쪽 아니면 저쪽, 군비축소는 무조건 빨갱이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며 조율하고 또 조정하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교육이 체제 유지를 위한 효율적 대민통제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던 현재 진행형의 과거, 또는 과거에 종속된 현재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평화교육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하나의 답만을 강요하는 부드러운 독재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언제나 나와 우리 공동체의 평화만이 그 주제가 되는 교육은 중단되어야 한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은 내가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두려움일 것이며, 내 손에 든 “확신”이라는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공포와 무력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손에 쥔 것을 때로는 내려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군비축소는 나의 목숨을 위협하고 우리 공동체의 안위를 흔드는 빨갱이의 메시지가 아니다. 지구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 존재로서, 한 시민으로서 서로에 대한 책임을 알아차리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몫만큼 폭력보다는 평화에 가까운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전쟁의 기억에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의 경험을 어떻게 현재화하며 그래서 어떤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지 서로에게 묻고 답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또, 정답이 주어져 있는 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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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세계군축행동의 날 연속기고] 

 

2019 GDAMS 연속기고 ① 평화를 위한 군축, 평화를 앞당기는 군축 / 최하늬 피스모모 연구기획팀장 

2019 GDAMS 연속기고 ② ‘평화’를 위한다는 전쟁, 결국 방산 기업만 웃는다 / 쭈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2019 GDAMS 연속기고 ③ 세월호와 천안함을 ‘비교’하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럴까 /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2019 GDAMS 연속기고 ④ 지뢰와 함께 사는 한반도…이젠 끝내야 한다 / 조재국 (사)평화나눔회 대표

2019 GDMAS 연속기고 ⑤ 아이들 밥값보다 전쟁 무기? 부끄러운 ‘세계 10위’ / 신미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2019 GDAMS 연속기고 ⑥ 남북 간 군축으로 한반도 평화 정세 이어가야 / 박석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

 

* 2019 세계군축행동의 날 <평화를 앞당기는 군축> 캠페인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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