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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
  • 2003.07.02
  • 283

이라크전 당시 전쟁터에 남은 유일한 한국기자, 이진숙을 만나다



이진숙, 우리는 이라크전 내내 MBC 9시 뉴스에서 그녀를 만났다.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진숙 기자에게 비친 이라크전쟁은 무엇일까. 기사로 담아내지 못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보았다.

한국기자로는 유일하게 이라크전 내내 이라크에 머물렀다. 무엇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까지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기자로서 현장에서 진실을 전해야겠다는 의지로 전쟁의 공포까지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다가올 상황이 두렵지는 않았을까.



"사실 그런 질문 받으면 쑥스럽기도 해요. 마치 저만 못있을 곳을 찾아간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요. 그러나 저 말고도 외국기자들도 많았고, 평화운동가들도 많았죠. 국적만 달랐을 뿐이죠. 이번에 이라크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91년 걸프전때부터였죠. 당시 4명의 기자가 갔었는데, 취재장비나 경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쟁발발하고 19시간만에 나왔거든요. 그때도 현지에서 취재하고픈 마음은 있었죠. 만약 이라크에서 다시 전쟁이 나야한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현장은 지키겠다고 결심했죠. 그렇다고 전쟁을 바라거나 기다린 것은 아니고, 예견된 상황 아니겠어요? 해결 안된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이번은 예상했던 전쟁이었고, 그래서 현장에 있어야겠다는 결심, 현장에 있는 것은 저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했어요."

전쟁발발 4일째, 다시 이라크 국경을 넘어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폭격을 시작했다. 전쟁발발 당시에 이진숙 기자는 요르단 암만에 머물렀다.

"18일에 통화할 때, 이번에는 현장에 남아있겠다는 뜻을 피력했더니, "현장판단에 따라 하라, 너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대답했는데, 이날 저녁에 통화했더니 당장 철수하라고 하더라구요. "19일 오전8시까지 철수하지 않으면, 이진숙이 바그다드에서 보내오는 기사는 MBC뉴스에서는 쓰지않겠다"고 그러더라구요. 참... 그때 제가 방문 걸어놓고 좀 울었어요.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화도 나고, 이렇게 현장의 판단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외국의 경우에도 기자개인의 신변안전문제 때문에 철수를 종용한다고는 한다. 그러나 기자본인이 굳은 결심을 하면 존중해 주는 편이다. 이진숙 기자는 방송국의 뜻에 따라 요르단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오고 다음날 새벽에 전쟁은 시작되었다.

"저는 서울에 오고 싶었어요. 사건현장이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발생한 일을 일본에서 커버하는 상황인거죠. 회사에서는 암만에서 취재를 더 하라고 했는데... 너무나 답답한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가장 수치스러웠던 것은 전쟁은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호텔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외국기자들의 기사를 가공해서 보내는 것이었죠. 너무너무, 정말 견디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다행히 신청해놓은 이라크 입국비자가 발급되었다. 전쟁발발 4일째인 23일, 이진숙 기자는 다시 바그다드로 향했다.

"오히려 처음에 바그다드에서 나온 것이 잘못이었지, 다시 이라크 국경을 넘으면서 아, 정말 내가 갈 길은 이거다 싶었어요."

반전평화운동은 "나비효과"

이라크전이 임박하자 반전평화운동도 함께 거세졌다. 그러나 세계적인 반전운동과 여론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발발했다. 전쟁 현장에 있던 기자로서, 반전운동의 성과를 어떻게 볼까.

"나비효과 얘기를 하고싶네요. 사실 반전평화운동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일어났어요. 그러나 운동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봐요. 단적인 예가 인간방패라는 단체예요. 700여 명이 교대로 바그다드를 들락거렸고,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있었던 사람만도 70여 명이나 되요. 이들은 전쟁기간 내내 발전소나 정수장에 대해 자기 몸을 방패로 내놓았죠. 실제로 이들 덕분에 바그다드에서는 이런 민간시설들이 폭격을 안 맞았어요. 엄청난 국제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 미국은 바그다드를 공격하지 않았지만, 바스라나 남부지역의 시설들은 공격받았어요. 전쟁발발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미세한 부분에서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사용하는 무기와 작전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전쟁발발 시기에까지 말이죠."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이면서도 우리의 반전평화의 목소리는 아직 작다. 특히 미국에 대한 인식이 그렇다. 아직까지 미국은 우리를 한국전쟁에서 구해 준, 북한의 침략을 막아주는 혈맹국가다.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사망사건과 이라크전이 미국에 대한 인식과 반전평화의 목소리를 높이기는 했으나 지속적인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이라크를 비롯해 동티모르, 소말리아, 아프간 등 분쟁지역을 경험한 이진숙 기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정당하지 않은 권력과 정책은 영원할 수 없다고 봐요. 지금 현재는 힘의 차이가 아주 분명하게 보여도 불의와 부정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을 중동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죠. 이 예를 많이 드는데, 50년대 초 CIA가 주도한 쿠데타로 자주적인 석유정책을 꾀하던 이란의 오세데그 총리가 무너졌거든요. 그리고 미국이 앉힌 샤 왕정이 계속 됐죠. 영원할 줄 알았지만 20년이 채 못갔어요. 혁명이 나서 샤도 쫒겨나고 미국도 이란에서 물러나야 했었죠.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들도 예전에는 미국을 전쟁에서 구해준 혈맹국가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과거 그 일 때문에 영원할 것이라고 미국이 믿었다면 너무나 큰 착각이죠. 현재 힘의 균형이, 힘의 경중이 어디에 있느냐는 명확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과 조약이 절대로 계속 될 수 없죠. 이미 이전부터 미국에 대한 문제는 존재했어요. 미군부대에서 나온 오염물 사건도 있었고. 조금씩 드러나 터진 것이지, 없던 반미감정이 터진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이번 이라크전을 어떻게 볼까. 언론에 담기지 못한 이라크전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점을 생각해 보세요. 국제법이라는 국제사회가 정해놓은 약속과 기준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과연 복구가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즉 무너진 국제질서와 절차를 국제사회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취재라고 해도 전쟁터 한복판이다. 직접 본 소감은 어떨까. 모 주간지를 보니, 기자들이 취재하다말고 울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녀가 보낸 기사에는 담기지 않았던 전쟁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임종진『한겨레』사진기자는 정말 그랬어요. 취재하다가 현지 가이드를 부등켜 안고 울었죠. 분쟁지역에 처음 취재가서 더 그랬을거예요. 임기자는 이라크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유없이 죽어갔으니까 안타까움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죠. 저같은 경우는 비교적 냉정하게 보려고 했어요. 적어도 취재할 때만큼은 차가운 피로 취재하고 기사쓰고 송고한 다음에 느낌을 가지자라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있죠. 이념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죠. 설사 감정이 들어도 그 감정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그녀에게도 6살짜리 딸이 있다. 아이들까지 죽어가는 상황이 누구보다도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속에서 냉정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죠. 6살, 8살짜리 아이들이 팔이 잘리고 허벅지까지 잘리는 상황을 보면서, 아무리 자유로울려고 해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라크가 어땠느냐고 한다면, 너무나도 할 말이 많기 때문에 짧게 몇마디로 얘기할 수가 없지만, 글쎄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했고 저도 또 한마디 붙이지만, 어떤 말,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음을 또 한차레 절실히 느끼고 왔죠."

이라크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전쟁이 터져도 뛰어갈 것인지 물었다. 전쟁은 없어야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야죠. (웃음) 전쟁이 나고 회사의 재가가 난다면 기쁜 마음으로 갈 거예요. 그것이 제가 기자로서 월급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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