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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20.09.21
  • 789

9월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주간을 맞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서재정 교수가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에 대한 칼럼을 한겨레 신문에 기고하였습니다. 

 

"황군으로, 군속으로 전쟁에 동원됐기 때문에 전범이 됐는데, 이제는 전범으로서 또 전쟁에 동원된 것이다. ‘이제 우리를 또 다른 쇠창살에 가두려는 것인가?’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전범을 처형한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다시 전쟁을 한다면 전쟁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서재정 칼럼] 토마토야, 미안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토마토는 혼란의 주인공이다. 토마토가 과일인가 채소인가? 과일같이 생기기도 했고 일상에서 과일같이 먹기도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채소다. 엄연히 가지와 같은 과에 속해 있다. 과일이냐 채소냐는 논쟁은 법정에 서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그 결과 법적으로도 공인된 채소가 됐다. 하지만 ‘정답’을 외우지 않은 사람에겐 여전히 혼란스러운 존재다. 물론 토마토 책임이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혼란이다. 토마토야, 미안.

 

이 토마토가 1950년 한여름 도쿄 인근에서 수난을 당했다. 수경재배로 곱게 자라서 먹음직스럽게 된 놈들이었다. 상자에 잘 담겨 한국으로 배송될 참이었다. 이 토마토에 대못이 박힌 것이다. 토마토를 포장하던 문태복이 저지른 일이었다. 도대체 그는 무슨 심사로 토마토에 못을 박았을까?

 

문태복은 ‘스가모 프리즌’에 수감된 죄수였다. 1895년 일본 경시청이 설치했던 스가모 교도소는 2차대전 중 구치소가 되어 사상범이나 반전운동가들을 가두었다. 전후 미군정에 접수되면서 ‘프리즌’이 됐다. 이 프리즌에는 전범들이 수감됐다. 문태복도 전범이었다. 강점기 타이와 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 공사 현장에서 연합군 포로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당시 식료품 부족과 학대로 많은 포로들이 사망했던 책임을 물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도조 히데키 등 에이(A)급 전범 7명은 스가모 프리즌에서 사형이 집행됐지만 비시(BC)급 전범이었던 문태복은 감형되어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

 

스가모 프리즌에 수감된 전범들에게 한국전쟁은 여러 물음을 불러일으켰다. 전쟁은 누가 하는 것인가? 전쟁에서 한 개인은 자유로울 수 있는가? 각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양조장을 하던 아버지한테 군수와 경찰서장이 찾아와 ‘자원’을 강요당했던 문태복의 경우 그의 책임은 어디까지였을까? 추상적 질문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에서 ‘황군’으로 또 그 군속으로 임무를 수행하다 전범이 된 이들이었기에 이 질문들은 바로 이들의 가슴에 꽂히는 비수였다. 이 질문은 감옥 창살로 답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는가.

 

한국전쟁이 터지자 스가모 프리즌의 전범들은 또 전쟁에 동원됐다. 군수품 수송에 사용되는 팔레트를 만들었다. 한반도 전선의 군인들에게 보낼 채소를 기르기도 했다. 황군으로, 군속으로 전쟁에 동원됐기 때문에 전범이 됐는데, 이제는 전범으로서 또 전쟁에 동원된 것이다. ‘이제 우리를 또 다른 쇠창살에 가두려는 것인가?’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전범을 처형한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다시 전쟁을 한다면 전쟁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 전범 사이에 자성이 퍼지고 전쟁 반대의 행동이 시작됐다. 전선으로 보내는 채소를 상자에 담는 작업을 했던 문태복은 최소한의 저항으로 토마토에 못을 박았다. 자신의 가슴에 신세한탄의 못을 박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박으려던 원망의 못은 아니었을까. 영문도 모른 채 못이 박힌 토마토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의 피눈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추미애 장관의 아들을 둘러싼 논란은 두렵다. 그 핵심이 평등이기 때문이다. ‘엄마 찬스’가 있는 아들이건, 흙수저의 아들이건 대한민국의 남성은 모두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평등은 ‘손해의 평등’이다. 내가 군대에 가서 젊음과 인생을 희생한 만큼 당신도 희생하라는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보는 만큼, 꼭 그만큼은 너도 손해를 보라는 요구다. 나보다 며칠이라도 휴가를 더 받았는지, 병가를 명분으로 특혜를 받았는지 눈에 핏발이 서는 이유다.

 

그렇다. 이 논란이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직 우리 모두의 눈에 서려 있는 핏발이다. 70년 전, 얼마 전까지도 잘 알던 이를 ‘원수’라며 그 가슴에 죽창을 꽂았던 눈의 핏발이 가시지 않은 채, 서로를 죽음의 판, 죽임의 판에 죽어라고 밀어 넣고 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 평등에 조금이라도 어긋났다 싶으면 당장 눈에 핏발을 세우는 우리다. 전쟁을 끝내어 다 같이 평화를 누릴 평등은 그 핏발 앞에 숨을 쉴 여지도 없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싸우려는, 싸우라는 핏발만이 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만하자는, 눈에서 핏발을 거두자는 마음이 커질 때에야 전쟁은 끝날 수 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가슴에 대못질을 당해 70년간 피를 흘리고 있는 토마토에게, 이제 한마디 건네는 것은 어떤가. “토마토야, 미안….” 그리고 이런 누리집에라도 들러보면 어떤가.

endthekoreanwa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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