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합의 이행에 대한 조심스런 낙관 (임원혁, 2007. 3. 2)

북핵 2.13합의가 이뤄진 지 두 주가 지났지만, 합의의 성사 배경과 향후 이행 전망과 관련해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성사 배경과 관련된 질문은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기초해 미국과 북한 간에 충분히 이뤄질 수 있었던 합의가 왜 이제서야 이뤄진 것일까? 6년 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예컨대 작년 2월 13일에 발표될 수 있었을 법한 내용을 가지고 왜 1년이나 시간을 끌어야 했을까?

2.13합의의 향후 이행 전망과 관련해서도 두 개의 질문을 할 수 있다. 2005년 9.19공동성명 발표로 극적인 진전을 이룬 듯 했던 6자회담이 다시 좌초됐던 것처럼 2.13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애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거돼야 하는가?

2.13합의, ‘정치인’ 부시의 선택

1993년 1차 북핵위기 이후의 북미관계를 바둑에 비유해 보자. 포석 단계에서는 판이 어지러웠지만 대국자가 서로 상대방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끝내기와 계가만 남은 대국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국자 중 한 명이 바뀌더니 바둑알을 쓸어버리면서 처음부터 바둑을 다시 두자고 했다. 새 대국자는 이전 대국자가 형편없이 판을 짰다고 비난하면서 정수 대신 초강수와 변칙수를 두며 계속 판을 흔들어 봤다. 하지만, 상대방도 초강수와 변칙수로 응하면서 판세는 오히려 전보다 나빠졌고, 새 대국자는 관전자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2.13합의가 이뤄지기 직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처한 신세가 바로 그랬다. 사실 대북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태도 변화와 그 이유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번 합의의 배경을 설명할 수가 없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 미국내 협상파의 영향력 강화가 이번 합의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인이다. 실제로 힐 차관보는 과거 보스니아 사태 수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협상가로서, 6자회담의 미국 측 대표로 임명된 직후 북핵문제 해결에 오만하다고 할 만큼 자신감을 보여 국무부 내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강경파를 무마하면서 북한과의 협상을 끈질기게 주창해 왔다. 바꿔 말하면 힐 차관보의 입장 변화 때문에 진전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일부 외신에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빅터 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의 태도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으나, 이 두 사람은 과거 전력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 외교문제에 대해 소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북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북한과의 협상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본인들의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부시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을 바꿨는가? 부시 대통령은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규정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혐오감을 바탕으로, 대북 강경파가 주창한 악의적 무시 정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악의적 무시 정책의 요체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을 무시하고 북한이 ‘진짜 어리석은 짓’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본은 물론 한국, 중국, 러시아와 공동으로 북한에 대해 국제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압박을 가해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거나 북한이 항복을 하면 좋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특별히 손해 볼 게 없다는 것이다. 2000년 북미공동코뮈니케가 백지화된 이유는 바로 이같은 정책 때문이었다.

2005년 북한의 2.10 핵 보유 선언과 폐연료봉 교체 이후 대북 협상파가 일시적으로 득세해 9.19공동성명을 이끌어 냈지만, 강경파는 오히려 그 합의를 깨고 북한에 압박을 가해 북한이 ‘진짜 어리석은 짓’을 하도록 하는 것이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유리하다고 봤다. 북한은 9.19공동성명 이행의 부진과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에 반발해 작년 7월 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10월에는 핵실험을 감행했지만, 강경파는 이와 같은 북한의 행동을 내심 반겼다. 대북정책에 관한 미국내 논란을 종식시킴은 물론 남한과 중국도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의 입장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이후의 상황은 대북 강경파의 기대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미국의 중간선거를 한 달 앞두고 감행된 북한의 핵 실험은 대북정책에 관한 미국내 논란을 종식시키기는커녕 부채질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대북정책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악의적 무시 정책으로 북핵문제가 더 심각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 이란, 북한에서 총체적인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한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직후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악의적 무시 정책이 북한의 벼랑끝 전술만큼이나 북핵사태 악화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같은 국내 여론을 바탕으로 정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것도 미국내 대북 강경파의 기대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한편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전후해 북한에 대해 노골적으로 경고를 주기도 했으나, 압박을 통한 북한의 정권교체보다는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기로 정책 방향을 정했다. 실제로 중국의 고위층은 미국의 잭 프리처드 전 대북특사 등에게 중국은 북한에 대한 석유나 식량공급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의 제재는 별로 실효성이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상황이 강경파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자 이들은 세 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째는 악의적 무시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는 것이고, 둘째는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며, 셋째는 북한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할 때까지 더 기다리는 것이다. 강경파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했고,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북한의 이판사판식 대응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과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도록 계속 압력을 가하면서 북한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하면 그만큼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이 줄어들 것이라고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강경파의 계산법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고, 부시 대통령의 이해와 일치하지도 않았다. 우선 북한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은 짓’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북한의 전술은 벼랑끝 전술이지 벼랑’밑’ 전술이 아니다. 작년 10월 3일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하면서 핵을 외부로 이전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 하나의 예다. 핵실험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의 탕자쉬안 국무위원을 평양에서 만나 상황을 수습한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미국의 강경파가 아무리 기다려도 북한이 핵무기를 국제테러조직에 이전하거나 이웃국가들과의 관계를 파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압박으로 한국과 중국이 제재에 적극 동참하자 경제제재를 견디다 못한 북한이 돈을 벌기 위해 핵무기를 국제테러조직에 팔고, 테러조직이 이 핵무기로 미국의 대도시를 공격하자 미국의 보복으로 북한이 초토화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보복으로 남한과 일본이 피해를 입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북한의 정권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과 남북한, 일본에서 수백만, 수천만명의 사상자가 나도록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또 대북 강경파가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과 핵무기 개발능력은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영변의 5MW 원자로를 통해 해마다 핵무기 1기 정도에 해당하는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고, 완공할 때까지는 수 년이 걸리겠지만 그보다 10배의 용량을 가진 50MW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그 순간에는 핵물질이 소요되겠지만, 그만큼 핵무기 기술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나 핵실험처럼 ‘계산된 도발행위’를 하면 미국내 여론은 북한을 비난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부시 행정부의 외교실패를 추궁할 가능성도 높다.

부시 대통령은 자기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전략을 짜는 강경파와 달리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이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직후 부시 대통령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물러나게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9.11 테러 이후 중동에 관심이 쏠려 있는 미국에서 북한은 평상시엔 별로 뉴스거리도 되지 않지만, 북한이 ‘계산된 도발행위’를 할 때마다 외교정책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이라크에서의 실패로 곤궁에 빠진 부시 대통령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또 부시 대통령 자신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일방적으로 문제를 만들어낸 이라크의 경우와 달리,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때부터의 문제를 물려받은 측면이 있고, 북한 역시 상황 악화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적당한 명분만 찾는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1994년 제네바합의 때와는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면서 북핵문제를 타결하면 부시 외교의 성공사례로 선전할 수도 있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아직도 김정일 위원장과 상대하고 싶지 않겠지만, 대북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는 이같은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태도 변화로 새롭게 힘을 얻은 힐 차관보는 지난 해 10월말 베이징에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만나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고, 북핵문제의 타결을 점치는 관측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산전수전 다 겪은 북한의 입장에서 그의 태도변화 조짐만 믿고 미국과 합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연말 재개된 6자회담에서 미국측 협상단의 희망 섞인 기대와는 달리 뻣뻣한 자세로 나왔다. BDA에 대한 금융제재 문제나 북미 관계정상화 등 주요 사안에 대해 개략적이나마 해결 방안과 일정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지난 1월 베를린에서 열린 양자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은 초기이행조치에 대한 잠정적인 합의를 하고, 2월 13일 합의를 통해 공식화하였다. 2000년 북미공동코뮈니케 발표 후 6년, 2005년 9.19공동성명 후 1년여만의 일이었다.

경수로는 당분간 미룰 듯…HEU 불씨는 여전

이처럼 2.13합의는 9.19공동성명과는 달리 미국의 악의적 무시 정책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갈 데까지 간 뒤에’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좌초될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미국과 북한 모두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 봤고, 상대방의 카드가 ‘뻥카’인지 서로 확인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많은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리고 있던 2005년 9월 15일 마카오의 BDA에 대해 취해진 미 재무부의 금융제재는 강경파의 자화자찬적 평가와는 달리 북한의 실물경제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BDA에 대한 제재가 있기 전인 2005년 상반기와 그 후인 2006년 상반기 중국과 한국에 대한 북한의 교역량을 비교하면 각각 4.7%와 2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BDA 제재가 없었다면 그보다 더 많이 증가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가능하겠지만 최소한 금융제재로 인해 북한의 실물경제가 위축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중국 등지에서 대리인의 차명계좌를 통해 금융거래를 하고 실물거래는 국경을 통해 하면 금융제재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BDA에 있는 2400만 달러의 북한 계좌 동결은 실질적인 경제효과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미국의 금융제재를 대북 적대시정책의 상징으로 간주하는 북한의 시각과 돈세탁 등 불법활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시각이 충돌하는, 원칙에 관한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선 북한이나 북한과 사업을 하는 기업이 합법적으로 획득한 자금을 마카오 당국이 동결해제하는 데 대해 미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나머지 자금에 대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미국이 설명하고 북한이 이에 대해 해명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물론 사법절차를 거칠 수도 있겠지만, 2.13합의가 원활히 이행되기 위해서는 미국, 북한, 마카오 당국과 BDA가 협의를 통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좋다. 힐 차관보도 6자회담 폐막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30일 내에 BDA 제재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한미경제연구소(KEI)와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이 공동 주최한 회의에서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했던 발언은 흥미롭다. 그는 BDA와 관련된 북한의 불법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히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데, BDA 문제의 핵심은 과거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BDA가 단호히 대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1996년 북한인이 60만 달러에 해당하는 위조지폐를 BDA에 입금하려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는데, BDA는 북한 관련 계좌 폐쇄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5년 9월 돈세탁 우려기관으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1996년 당시 혐의자 체포로 종결된 사건을 제외하고는 BDA 계좌와 관련된 북한의 불법활동으로 미국이 지목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얘기도 된다.

■ 고농축우라늄과 핵 사찰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제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지만 4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 실체는 불분명하다.

크게 나눠 두 개의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북한이 1990년대 말부터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협조를 얻어 대규모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고, ‘이르면 2000년대 중반경 공장을 완전가동시켜 해마다 2개 이상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2002년 11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이같은 내용을 미 의회에 배포한 바 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공정에 쓰이는 규격과 같은 2600여 개의 알루미늄 강관을 수입했고, 칸 박사로부터 원심분리기 20여 기를 확보했다는 사실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북한이 칸 박사로부터 확보한 원심분리기를 분해해 설계기술을 습득한 후 수천 기의 원심분리기를 제작하고 가동시킨다고 가정하면 해마다 2개 이상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또 하나의 설은 북한이 20여 기의 원심분리기를 확보했다고 해도 원심분리기 제작에 필요한 핵심 부품과 기술을 습득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알루미늄 강관은 원심분리기의 외피(outer casing)일 뿐 정밀모터 등 핵심부품과 기술 없이 원심분리기를 가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증거도 없이 HEU 프로그램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20여 기의 원심분리기를 2600여 기의 원심분리기로 부풀릴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와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의 최근 발언도 이와 같은 신중론과 맥을 같이 한다. (☞ 이와 관련한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및 노틸러스 연구소 논평문 바로가기)

2.13합의에서는 실체가 불분명한 HEU 프로그램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조심스런 접근법이 채택되었다. 합의문을 보면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바로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목록에 관해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하도록 되어 있다. 신고 목록에서 무엇인가가 누락되었을 경우 대북 강경파가 ‘역시 북한은 믿을 상대가 못 된다’며 반격할 가능성에 대비해 우선 6자회담에서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한 후 북한이 포괄적인 신고 목록을 제출하는 식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물론 북한이 포괄적인 신고 목록을 제출한다고 해도 무조건 이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확인 절차는 필요하다. 플루토늄 프로그램 관련 원자로는 사찰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미 개발을 완료한 핵무기나 무기급 핵물질이나 HEU 관련 장비는 적발이 쉽지 않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선 북한이 도입한 알루미늄 강관과 원심분리기의 소재가 파악되어야 하고, 그 밖의 의문점에 대해서도 해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있는 것을 있다’고 보여 주기는 쉬워도, ‘없는 것을 없다’고 증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사찰의 수위 설정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즉 6자회담의 여타 참여국이 북한의 주석궁과 군사시설 등 모든 곳을 사찰하겠다고 하면 북한이 과연 이에 응하겠냐는 것과, 북한이 전면적인 사찰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이미 한국 영내로 들어오는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전투기에 핵무기가 탑재되어 있는지 검증을 받겠는지를 묻는 등 맞불을 놓으려는 의도를 보인 바 있다. 결국 사찰 문제에 관해서는, 우선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된 부분에 대해 외부의 검증을 받고,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북미코뮈니케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상호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투명성도 제고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일 것으로 보인다.

■ 대북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

제네바합의와 마찬가지로 2.13합의도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60일 이내에 영변 원자로를 폐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를 수용하면 중유 5만 톤이 먼저 지원되고, 그 이후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95만 톤이 추가 지원된다는 것과, 경수로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물론 9.19공동성명에 향후 경수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고, 2.13합의가 9.19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수로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네바합의와 차별화 하고 싶어 하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경수로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는 것과 북한 핵시설의 조기 불능화는 양보하기 어려운 문제다. 부시 행정부는 경수로를 클린턴식 굴욕외교의 상징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에 그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다. 또 핵시설의 동결(freeze)과 해체(dismantlement)의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불능화(disablement)도 제네바합의에 비해 진전된 성과라고 선전하고 싶은 개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경수로가 일종의 전리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포에서 공사가 재개된다고 해도 완공까지 5년은 걸릴 경수로 문제를 놓고 임기가 2년도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와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또 핵심부품을 제거해 핵시설을 불능화한다고 해도 부품은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능화가 동결과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시설의 해체가 불능화보다 낫고, 불능화가 동결보다는 낫겠지만, 핵시설이 사라진다고 해서 핵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지식기반과 유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핵화 문제를 논함에 있어 핵시설의 해체도 중요하지만 핵개발을 부른 안보위협의 해소에 더욱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 북한의 이같은 입장을 감안하면 경수로 문제는 부시 행정부 이후로 미루고, 북한 핵시설의 해체 및 안보위협의 해소에 보조를 맞춰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는 타협안이 실현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지원 방안으로는 중유 공급이나 대북송전 이외에도 북한내 주요 산업거점에 화력발전소를 지어 북한의 경제개발 및 남북경협을 촉진하는 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 북미 및 북일 관계정상화

2.13합의는 미국과 북한이 ‘전면적 외교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대화를 개시한다’고 선언하면서, 특히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 및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 나갈 것을 규정하고 있다.

북한을 적성국교역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문제는 페리 프로세스가 종료된 1999년 9월 이미 다뤄진 바 있으므로 그리 어려운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테러지원국 지정 대상에서 해제하는 문제는 일본인 납치 문제 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예상된다. 일본의 강경파는 2.13합의 과정에서 일본이 소외된 데 대해 분노를 표하고 있는데 이들이 미국의 강경파와 손을 잡고 합의를 와해시키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일본인 납치 문제 덕분에 급부상한 아베 일본 총리의 입장에서는 비록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을 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기는 했지만 국내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베 총리의 입지가 납치 문제에 의존하는 바가 워낙 크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대한 이해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묘안을 찾기는 어렵지만, 과거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실종미군(MIA) 문제를 처리한 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즉, 실종미군 문제의 해결을 관계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으면서, 베트남과 미국 양국 정부가 실종미군 가족의 정당한 요구를 최대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방식을 일본인 납치 문제에 적용하면, 북한은 납치된 일본인의 소재와 관련해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일본은 일본인 납치와 관련해 근거없는 주장이 유포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임원혁/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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